캐리어 끌고 지하철 타고 공항가기

교통약자의 이동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by 서영

유채꽃 피는 너른 들판을 보기 위해 과감히 제주도행 표를 끊었다. 들뜬 마음을 안고 김포공항으로 갈 때 9호선 급행을 타고갈까 고민해본다. 비록 지하철 역사에서 많이 걸어가지만, 플랫폼에서부터 커다란 엘레베이터와 공항까지 연결된 평지 에스컬레이터가 있기에 천천히 편하게 서서 가겠다 하면 캐리어를 끌고 갈만하다. 차비는 리무진버스의 절반 가격이고, 집에서부터 공항까지 걸리는 시간도 비슷하다.


여행을 위해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나는 짐의 노예가 된다.

노트북을 넣은 백팩과 더불어 캐리어를 끌고 나온다. 1주일치 옷가지와 숙소에서 편히 신을 슬리퍼, 선크림, 각종 충전기와 케이블, 세면도구 등을 차곡차곡 테트리스 쌓듯 빈틈없이 넣어(여행지와 일정에 따라 햇반과 컵라면을 넣은 보조가방이 추가될 때도 있다.) 차가 없는 뚜벅이기에 공항까지 어떻게 갈지 고민한다. 우선 버스를 타고 리무진 정류장이던 지하철역이던 가야한다. 저상 버스가 아닌 일반 버스는 입구가 좁아 기내용 캐리어를 들고도 타기 힘들어 양해를 구하고 뒷문으로 승차한 적도 있었다. 평소에 이용하던 지하철 역 출구 앞에서부터 플랫폼으로 내려갈 때까지 엘레베이터가 어디 있나 두리번 거린다. 다행히 개찰구는 캐리어를 끌고 들어가 좋은 최신형이다.

지하철 개찰구.PNG 나를 안도케한 개찰구, 캐리어를 쉽게 끌고 나올 수 있다. (출처 - 국토교통부 블로그)


지하철을 타고 인천공항으로 가던 어느 날, 평소 지하철을 타는 내 모습과 다른 낯설다는 느낌이 들었다. 홍대입구 역에서 공항철도로 갈아타기 위해 한 층 올라가려 할 때 에스컬레이터를 찾고, 긴 환승통로를 걷다 끝에 나온 계단 앞에서 바로 옆에 설치된 엘레베이터를 보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나는 두 다리가 튼튼해서 계단을 오르내리는데 크게 문제가 없었기에 출퇴근길에 에스컬레이터에 사람이 많으면 그냥 운동삼아 계단을 이용할 수도 있는 선택권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무게가 10kg이 넘는 바퀴 달린 캐리어와 함께 하니 조금 다른 동선이 보였다. 역내에서 두 세개 밖에 없는 얕은 계단을 올라가야 할 때도 경사로가 있는지 찾고 있었고, 역 밖으로 나갈 때는 횡단보도를 건너야 해도 에스컬레이터나 엘레베이터가 있는 출구로 나간다. 평소보다 확실히 돌아가고 있었다.


처음 지하철 역에서 에스컬레이터나 엘레베이터를 설치하는 목적은 장애인의 이동을 위해서였다. 아주 소수의 사람들이겠지만, 이 정도의 배려는 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플랫폼을 내려가는 엘레베이터 앞에서 기다리던 수많은 할머니, 할아버지, 유모차를 끄는 엄마를 보면서 오묘한 미소가 지어졌다. 나의 생각은 오만이었다. 내가 건강하기에 배려해줘야 한다가 아니라 이용하는 어느 한 순간, 나도 그 호의를 받을 수 있기에 배려해야 하는 것이다. 내가 여행을 가려고 짐을 끌고 공항으로 향하는 도중에 살폈듯이.


세상에는 아주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

체격이 큰 자, 머리카락이 하얀 자, 어린이, 눈이 안 보이는 자, 글씨를 읽기 어려운 자 등등 다양한 조건의 사람들이 어우려 살고 있으나 이 사실을 머리로만 알고 있을 뿐, 삶에서 이 다양함에 대해 피부로 와닿는 인지를 하기는 쉽지 않은 거 같다. 세면대의 높이는 어린이가 손 씻기에는 너무 높다. 지하철 플랫폼의 노란 선은 맹인이 인지할 수 없다. 기차 위 선반은 키가 작은 사람에게는 닿지 않는다. 나는 세면대 높이가 편하고, 노란 선이 잘 보이며, 선반에 손이 닿는 세상의 규격에 맞는 어른이기에 이것을 할 수 없음이 얼마나 다른 불편을 야기하는지 쉽게 인지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타인의 의견에 귀를 기울어야 한다. 극장에서 빠르게 지나는 자막이 읽기 어려운 할머니,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 키가 작은 어린이와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엄마의 의견에 듣고 그들의 어려움을 알아야 한다.


이렇게 알아감으로 시작하여 배려가 되고 약자들의 편의를 위해 사회에 건의를 하며 인생을 살아가다보면, 어느 날 이동약자가 되어 엘레베이터를 찾고 있는 내가 서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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