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에서 스마트폰만 뚫어져라 보면 벌어지는 일

지하철에서 시각 장애인에게 자리 양보하기

by 서영

스마트폰은 참 재미있다. 그 자그마한 기계 안에 인터넷이라는 무형의 통신으로 엄청난 세계가 열린다. 물건도 살 수 있고, 동영상도 볼 수 있고, 게임도 할 수 있고, 기사도 읽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 웹툰과 웹소설을 제일 자주 보는데, 덕분에 볼 수 있는 만화의 종류가 다양해졌을 뿐만 아니라 아주 빠르게 신간을 볼 수 있다. 한참 바쁘게 일에 쫓겨 살던 직장인 시절에는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생필품을 쇼핑했었다. 너무 바빠서 외근가는 고속도로 위에서도 메일을 확인하고 일처리를 하던 시절이었다. 출퇴근 시간만이 개인적으로 쉴 수 있었던 유일한 잉여시간이었기에 하루에 30분씩 달리는 지하철 안에서 쇼핑도 하고, 웹소설도 보고, 신문기사도 보았다. 가끔 너무 스마트폰에 집중한 나머지 내려야 할 역을 지나치기도 했다.


삶에 시간적 여유라는 것이 생기면서 지하철을 타면 귀에 이어폰을 끼고 그냥 사람들을 봤다. 어떤 옷을 입는지, 어떤 가방을 매고 다니는지, 어떤 신발을 신는지, 어떤 잡지보다도 지하철 안의 사람들을 보는 게 더 다양하고 재미있었다. (잘 입고 못 입고를 판단하기에는 내 안목이 너무 없어 공부하는 마음으로 본다.) 그런데 지하철 안의 대다수의 사람들은 무표정으로 귀에 이어폰을 끼고 스마트폰 그 작은 화면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같은 칸 안에 있지만 마치 각자 자신만의 공간에 있는듯이.


어느 날, 사람 많은 강남역에서 집으로 가는 지하철을 탔다. 서울 지하철에서 가장 혼잡한 강남-신도림 구간이라 그나마 인파에 떠밀리지 않고 여유있게 서서 갈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안도의 숨이 나왔다. 사당역에 도착하자 운좋게 앞에 앉아 계시는 분이 내렸다. 동시에 좋아하는 구석자리가 비어 후다닥 앉았다. 하~ 생활 속 꿀에 달달하게 절여져 노곤함에 저절로 내려가는 눈꼬리와 함께 스르르 눈이 감기려 하지만 몇 정거장만 가면 나도 내려야 하니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문이 쩍 열렸네. 드디어 다음 정거장이면 내린다아. 응?! 이 따닥따닥 소리는 뭐지? 아... 시각 장애인이네~ 노란 블록보도를 찾는 구나. 지금 지하철 문이 열려 있는데, 저 사람 탈 수 있을까? 그전에 지하철 문 닫힐 거 같은데... 같은... 데... 휴~ 다행이다. 타셨네~


내가 내리려 일어나니 내 앞에 서 계시던 어머님께서 후딱 앉으신다. 내릴 문 앞에서 서서 있다 지하철 안을 그냥 한 번 휙 둘러봤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어폰을 끼고 스마트폰에 코를 박고 화면만 뚫어지게 보고 있다. 그러다 어느 여자분이 방금 탄 시각 장애인 남자분에게 뭐라 말을 거는 모습이 보인다. 내가 서 있는 곳 바로 옆 자리가 비었다. 거기로 안내해 드릴테니 가서 앉자는 말인가보다. 천천히 남자분이 몸을 돌리시며 조심스레 밋밋한 전철 바닥을 한 발자국씩 내딛는다. 그런데 갑자기 어린 아가씨가 후다다닥 달려와 자리에 앉는다. 순간 낭패한 듯한 표정의 여자분 얼굴이 보인다.


자리에 앉아 이어폰 끼고 스마트폰에 집중하고 있는 아가씨를 톡톡 두드렸다. 후닥 이어폰을 빼는 그에게만 들리게 조용히 말했다.

저기 시각 장애인 분이 계시는데, 이 자리에 앉으시려는 거 같아요.


아가씨는 깜짝 놀라는 표정과 함께 후다닥 자리에 일어나 아까 본인이 서 있던 곳으로 갔다. 두 분은 다시 조금씩 자리로 다가온다. 어느덧 지하철은 역에 도착했고 문이 열리자 나는 내렸다. 문 너머로 그 남자분은 무사히 자리에 앉으시는 게 보였다. 고개를 돌려 서둘러 계단을 올라갔다.


아마 어린 아가씨는 스마트폰에 집중하느라 시각 장애인 분이 앉으려고 움직이는 것을 못 봤을 것이다. 열심히 그 작은 화면에 집중하다 힐긋 고개를 들어보니 빈 자리가 눈에 딱 들어왔을 것이고 바로 후다닥 달려가서 앉으셨을 것이다. 몰라서 자리에 앉았고, 내가 양보 받아야 할 분이 그 자리에 앉으려 한다고 알려주자 매우 놀라하는 그 표정은 분명 미안함이었으리라. 텅텅 비어 대부분이 빈 자리였던 지하철 칸에서 임산부 석에 앉아 있던 남학생이 임산부가 쓰윽 자신의 앞을 지나가자 스스로 창피해 하며 일어나던 그 때처럼 작은 화면에 집중하여 시야가 좁아진 탓에 주위를 돌아보지 못했으리라.


요즘 사람들은 이기적이라 말하지만, 그래도 예의와 배려를 장착한 사람들이 더 많다고 지하철을 탈 때 보고 느낀다. 작은 화면에 집중하느라 보지 못 해서, 듣지 못 해서, 그래서 알지 못 해서 저지르는 실수일 것이다. 한 쪽 귀의 이어폰을 빼고, 나만의 온라인 세계에 들어가 있기보다 현실을 관찰해 보는 건 어떨까? 지하철을 탈 때마다 습관적으로 손에 들던 스마트폰은 주머니에, 가방에 슬그머니 넣어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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