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반려동물은 누구인가요?

길냥이 밍코와 함께 한 짧은 시간들

by 서영

누구나 삶에서 가져보지 못한 것이 있다. 나에게는 전혀 해당되지 않은 별나라 세상같은 것.


반려동물.


나는 이 단어가 아주 낯설다. 청소를 힘들어하시는 어머니와 동물은 밖에서 키우는 거라는 아버지에게서 독립하지 않고 살아왔기에 동물과 함께 하는 삶이 어떤지 단편적으로 겪었을 뿐이다. 가끔 키우던 강아지가 고양이가 집을 나갔다고 걱정이 되어서 우는 이가 많이 슬픈 건 알고 있지만, 공감하지 못 했다. 그냥 10년 넘게 반려견을 키운 친구는 무지개다리를 건넌지 몇 년이 된 강아지의 사진을 지금도 핸드폰 배경으로 저장하고, 여행 중 반려묘의 죽음을 알지 못 한채 집으로 돌아갔던 친구는 소리 없는 오열을 했다. 드라마 도깨비에서 저승사자가 인도한 사자들 중 사람들 입에 가장 많이 회자되는 이는 시각장애자와 맹인견 해피이다. 흔히 동화 속 이야기 같이 사람이 죽으면 생전에 키웠던 반려동물들이 마중나온다는 설을 화면에 보여주어 많은 반려인들을 눈물짓게 하였다.

그냥 강아지가 아니야. 나한테는 이 세상에서 유일한 강아지야.


어느 날, 궁금함에 친구에게 질문을 던졌더니 돌아온 대답이었다. 어린 왕자 속의 여우와 같은 존재. 책 속의 간접경험밖에 이해할 수 없었던 나는 항상 그 유일한 존재를 기다리고 있었다.



먼 남국에서 두 달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왔던 8월의 어느 날. 낮의 무더움을 씻겨주는 소나기가 내리는 새벽녘, 내가 사는 아파트 현관에 못 보던 고양이가 어슬렁 거리고 있었다. 너무 놀라 동그래진 눈으로 서로를 마주보다 후다닥 편의점으로 달려가 고양이 캔을 하나 사 왔지만, 이미 고양이는 사라져 있었다. 밍코와의 첫 만남이었다.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오후, 억센 경상도 사투리를 쓰시는 할머니 한 분께서 크게 부르는 이름에 사라졌던 이 고양이가 나타나 애교를 부리는 모습을 봤다. 내가 집을 떠나있던 동안 1층에 새로운 이웃이 이사왔고, 3마리 고양이의 집사였던 노부부는 어느 날 흘러들어온 이 고양이가 안쓰러워 사료와 물을 나누어 주었다. 허겁지겁 사료 한 공기를 뚝딱 해치운 고양이는 이들을 주인처럼 따랐으며, 그들이 구해준 허름한 박스에서 지내기 시작했다. 노부부는 고양이에게 밍코라는 이름을 지어주셨고, 예방접종과 중성화를 위해 잡으려 했으나 날랜 고양이의 저항과 도망으로 결국 아파트 1층 화단에서 살게 되었다.

캔을 먹고 난 후에도 앞발에 남은 맛을 음미하는 꼬질꼬질 밍코.

편의점에서 산 고양이 캔을 한 두번 주자 밍코는 나를 인지했다. 다가와 다리 사이를 스윽스윽 몇 번을 스치면서 내가 주는 캔과 간식을 좋아했다. 새벽에 주차장에서 영역 싸움을 하는 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뛰쳐 나가기도 했다. (주민들에게 민원이 들어와 쫓겨날까 걱정이 되어서...) 나 이외에도 고양이 비타민을 주는 또 다른 집사와 매일 사료와 물을 채워주시는 할머니로 인해 마법의 가을을 겪듯 밍코는 하루가 다르게 덩치가 커져갔고, 날카로와지는 발톱으로 자기의 영역을 침범하는 다른 길냥이와 싸워 이길 수 있는 늠름한 수컷 고양이가 되었다.

내가 이 구역의 XXX이다~!!! 야옹~!!!

아침 저녁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자 밍코는 식사 시간에만 박스에 누워 있었다. 쌀쌀한 아침 저녁에는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어졌다. 11월 말에 일본으로 여행을 가기 전, 1층 할머니께서 이번 달에 들어와서 밍코를 한 번도 보지 못 했다며 걱정어린 말씀을 남기셨다. 1주일의 여행을 마치고 오니 밍코의 박스가 사라져 있었다. 뿐만 아니라 밥그릇과 깔아놓은 담요까지 모든 흔적이 사라졌다. 그렇게 해가 떠 있을 때도 차디찬 칼바람이 싸늘하게 부는 겨울이 되었다. 시베리아보다 추워 롱패딩이 유행하는 역대급으로 추운 겨울이었다. 3개월동안 밍코뿐만 아니라 1층 할머니도 볼 수 없었다. 습관적으로 1층 베란다를 봤으나 아무도 안 계신지 불도 꺼져있었다. 사실 1층 벨을 누르고 물어보면 간단히 해소될 수 있는 문제였으나, 차마 물어볼 수 없었다.


왜 물어볼 수 없었을까?


10년도 더 된 기억이 밀려왔다. 당시 온라인에서 알게된 동갑내기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중증 장애인이라서 신체적으로 아주 불편해서 하루종일 집 안에서만 생활을 했다. 어학연수를 가게 되면서 연락이 끊겼는데, 돌아와서 연락을 할 수 없었다. 내가 한국을 떠날 때쯤 그 친구가 건강이 많이 안 좋아져서 통원치료를 받고 있었는데, 다시 연락했을 때 그 친구가 이미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까봐 무서웠기에 용기가 나지 않았다.

아마 밍코도 그랬을까봐 무서웠다. 마음을 준 존재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진실을 아는 것이 무서워서 그냥 1층 할머니가 밍코를 데리고 이사가셔서 잘 살고 있으리라 여기고 싶었다. 상자를 열기 전의 슈뢰딩거 고양이처럼 확정이 아닌 가능성만으로 남겨놓고 싶었다.


서릿발같이 차가웠던 바람이 따뜻한 봄기운이 담겨 불기 시작하는 3월 초가 되었다. 피곤에 찌들고 일이 안 풀려 속상한 마음으로 아파트 1층 현관으로 걸어가고 있을 때, 1층 할머니께서 나를 부르셨다. 밍코를 보라고... 갑작스러운 할머니의 초대로 집에 들어가 그 집 베란다를 돌아다니고 있는 밍코를 보았다. 살은 더 오동통하게 쪄서 뱃살이 바닥에 닿을랑말랑 했다. 한 계절동안 보지 못 해서인지 나를 몰라봤다.

넌 누구냥? 뭐래냥? 왜 그렇게 쳐다보느냥?

할머니와 간단히 근황을 나누고 나서 밍코의 사연을 여쭈어 보았다.


11월 25일엔가 그 달 내내 보지 못 했는데, 얘가 나타났어. 으디서 쫄쫄 굶었는지 사료를 두 공기나 먹더라카이. 집에 캐리어가 있어서 바로 담아다 병원에 가서 예방접종하고 중성화까지 다 했으. 그 때부터 우리집에서 살았카이. 깔아준 담요도 가져와서 지금도 잘 쓰고 있어.


추운 겨울 밖에서 얼어죽었을까 걱정했는데, 그 전에 이미 할머니네 막둥이로 들어갔다니... 그래서 상자며 담요며 싹다 사라졌구나~ 비록 같이 살게 된 3마리의 고양이와 관계를 만들어가는데 스트레스를 받았겠지만, 맘씨 좋은 노부부와 함께 살게 된 밍코를 보며, 마음 한 편이 뭉클해졌다. 이제는 나의 고양이에서 멀어졌지만, 짧게나마 나의 고양이가 되어준 너의 행복을 빌어본다. 안녕, 나의 고양이.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