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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 Jan 13. 2019

도덕성의 환상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은 인격적으로도 훌륭한 사람일까?

요즘 가장 광고에 많이 등장하는 남자 배우를 보면 출연하는 드라마에서 한 여자를 위해 헌신적으로 사랑을 하고 있다. 그 드라마가 끝나는 시간에 여자 회원이 많은 인터넷 커뮤니티에 접속을 하면 다들 그 드라마에 빠져 있다. 마치 연기하는 남자 배우가 실제 그 등장인물인 듯 감정을 이입하여 매우 호감을 갖게  그가 등장하는 광고에 눈길이 간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도 포털 사이트의 동영상 재생 전에 그 배우가 등장하는 광고를 중간에 스킵하지 않고 끝까지 보면서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사실 우리는 그 배우가 어떤 사람인지 모른다. 하지만 그가 연기하는 인물처럼 그도 사랑하는 상대에게 매우 깊고 숭고한 사랑을 할 것이며 훌륭한 인성에 곧은 가치관을 가진 이라 믿고 광고 속에서 짓는 미소에 볼이 빨개진다. 연예인은 이렇게 대중에게 환상을 보여준다.


문인 같은 경우에는 약간 다르다. 고매한 인격과 깊이 있는 식견을 가지고 세속에 연연하지 않는 정신적 가치를 소중히 가진 존재로 우러러본다. 일단 작가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으면 시대를 대변하는 지성인이라 보고 대하는 자세부터 달라진다. 어렸을 때부터 어른들이 귀에 딱지가 앉도록 말씀하신, "책 많이 읽어라."에서 그 "책"을 쓰신 분이 작가님이다. 교양 프로 패널로, 사람들에게 모티베이션을 던져주는 강연자로도 많이 활동하니, 무의식 중에 작가는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는 훌륭한 분이라는 동경 어린 자세가 자리 잡는다.


살랑살랑 시원한 바람이 부는 가을날의 부산영화제에서 보았던 영화 '잘 알지도 못 하면서'가 참 우스웠다. 극 중 남주는 영화감독이며 작가처럼 영화를 업으로 하는 이들에게 추앙을 받는 자로 묘사되지만, 영화 속에서 보이는 그의 행동은 맘에 드는 여자를 꼬셔서 하룻밤을 보내기 위해 온갖 이빨을 까고 수작을 부리는 것뿐이다. 그러나 몇몇 인물을 제외하고는 모두 그를 '위대한 영화감독'으로 대하며 추대하는 것이 찌질하게 살아가는 모습과 대비되어 아주 우스음을 일으켰다.  


'나는 왜 쓰는가'라는 문장은 참 철학적으로 보인다. 그리고 나 스스로 철학자가 되고픈 꿈과 진리를 추구하고자 하는 자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 엄마는 항상 나에게 말한다. "방 좀 치우고 다녀라~ 돼지우리가 따로 없네!" 머리 감기 귀찮아서 드라이 샴푸를 뿌리고 나가는 모습을 한심하게 쳐다보시는가 하면, 밥 먹고 설거지를 안 했다고 눈을 흘기신다. 밖에 나가서는 지하철을 타고 외근을 갔다 돌아오는 길 지하철을 반대 방향으로 타기도 하고, 헬스장에 샴푸를 안 가져가서 옆에서 샤워하시는 분에게 빌려 쓰기 한다. 그렇다! 나는 20면체 다이아몬드이며 이 모든 것이 나이다.


오랫동안 알아온 지인이 나와의 만남을 부담스러워 했을 때 말했었다. "만날 때마다 좀 부담이 돼요. 제가 무언가 가르침이나 깨달음을 줘야 하는 거 같아요." 아주 예리하게 나의 욕심을 읽어냈기에 좀 뜨끔하긴 했으나 순순히 인정했다. "그러기도 했는데, 얼마 전에 학교 앞에서 차 마실 때 친구들이랑 통화하는 거 듣는데 찌질한 대화 내용도 재미있고 허세 있는 네 모습도 좋더라. 앞으로는 그런 면도 더 보고 싶어." 그 뒤로는 좀 더 허심탄회하게 주변의 신변잡기에 대해서도 얘기를 하게 되었던 거 같다.


나는 진리를 추구하고자 하는 사람일 뿐이다. 그렇기에 그것에 대해 남들보다 좀 더 시간을 들여 사고하고 쓰고자 하기에 가끔은 신박해 보이는 글을 써낼 수도 있을 것이다. (개인적인 바람으로 그랬으면 좋겠다.) 하지만 꼭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다. 나는 한낱 인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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