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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xtener Jul 25. 2020

혼자 한 거라 생각하는 순간 혼자가 된다

겸손


리더들은 궁금하다. ‘왜 나만 이야기하는 거지?’

상무님은 브레인스토밍을 좋아하셨다. 전략을 수립해야 하거나,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면 항상 팀원들을 불러 모으셨다. “자, 어떤 아이디어라도 괜찮아. 망설이지 말고 이야기해 봐.” 그리고 어김없이 이어지는 정적.


조금이라도 빨리 ‘탈출’하고 싶은 마음에 First Penguin이 나타난다. “이런 걸 해 보면 어떨까요?” 하지만, 팀원들의 입을 떠난 말들은 언제나 결승선을 통과하지 못한다. “어, 말 끊어서 미안. 참 좋은 의견이야. 그런데, 그건 안 돼. 김 과장이 아직 잘 몰라서 그러는데, 예전에 내가 말이야..”


두세 명의 희생자가 더 나타난 후에야 브레인스토밍은 마무리된다. “시간 내줘서 고맙고, 오늘 나온 의견들 참고해서 내가 초안 작성해 볼 테니, 그것 가지고 다시 한번 회의하자. 이상.” 자리로 돌아간 팀원들이 내게 메신저를 보낸다. “저럴 거면 회의는 왜 하는 거예요? 매번 끝까지 듣지도 않고 다 자르면서”


잠시 뒤면 상무님도 나를 찾으신다. “팀원들이 왜 이야기를 안 할까?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이어서 날아오는 카운터 블로우. “큰일이다. 애들이 고민을 안 해. 아이디어라고 내어 놓는 것들 수준을 보면.. 내가 언제까지 직접 보고서를 써야 하냐? 네가 이야기 좀 해라. 응?”


뛰어난 선수는 정말 훌륭한 감독이 될 수 없나?

야구에서 타자는 열에 세 번만 안타를 쳐도 훌륭한 선수로 인정받는다. 그런데 왜 리더들은 우리가 회의 때마다 안타를 치길 원하시는지. 문제는 '본인이 원하는 경로로 날아가는 것만 안타'로 인정하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자신도 모르게 팀원들을 '과거' 선수 시절의 자신이 아니라 '현재'의 자신과 비교한다는 것이며, 최악의 문제는 본인의 과거 성적에 엄청난 자부심(또는 환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구글의 CEO였던 에릭 슈미트는 이렇게 말했다. “성공하는 창업자는 자신보다 더 똑똑한 사람이 누군지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똑똑한 사람이다.” 리더에게 주어지는 목표는 혼자서는 달성할 수 없는 것들이며, 설령 할 수 있더라도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자신이 무엇을 해 냈느냐’가 아니라, ‘팀이 어떤 성과를 내게 만들었느냐’로 평가받기 때문이다.   


기억이란 믿을 수 없는 것이다. 늘 왜곡되니까.

아끼는 후배가 승격을 했다며 식사를 사겠다고 했다. 나를 떠올려 준 것이 고마워 만사 제쳐두고 달려갔다. 함께 일했던 시절의 추억을 나누며 웃고 떠들던 중에 그가 말했다. 기발한 아이디어로 불가능해 보였던 프로젝트를 해 낸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깜짝 놀랐지만 조용히 웃었다. 그 아이디어는 내가 준 것이었으니까.


후배의 왜곡된 기억에 혼자 웃음 지으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  갑자기 어떤 깨달음이 뒤통수를 세게 때렸다. 내가 기억하는 나의 ‘위대한’ 업적들 또한 내가 한 것이 아니라면? 선배들이 해 준 것임에도 잘못 기억하고 있는 것이라면? 아마 그럴 것이다. 그리고 내가 자랑할 때 조용히 웃어 주셨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늘 기억하려고 노력한다. 누군가 내게 기회를 주었기에, 많은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도움이 있었기에, 운도 좋았기에 지금의 내가 있음을. 여기 남기는 글들 또한 수많은 사람들의 책과 말에서 허락 없이 가져온 것임을.


나를 위해 멘토 역할을 해 주고 리더 위치로 이끌어 준 주위 사람들에게 감사하라. 그리고 이제 다른 사람들을 성공으로 이끄는 것이 당신의 일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라.

   - 스콧 에블린, 「무엇이 임원의 성패를 결정하는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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