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xtener Aug 08. 2020

왜 하는 건지 모르면 하기 싫다

목적의식

 

원하는 대답은 안 해 주고 왜 화를 내시나요?

“이번 전략회의에서 직원들에게 보여줄 괜찮은 영상이 하나 필요한데, 네가 좀 찾아봐.” 회사를 다니다 보면 앞뒤가 없거나, 밑도 끝도 없는 지시를 종종 받는다. 하지만 내게는 숨어 있는 ‘앞뒤’나 ‘밑과 끝’을 알아채는 재주가 없다. 문제는 늘 거기서 시작된다.  


“전략회의는 왜 하는 겁니까?” 괜찮은 영상이라면, 도대체 무엇에 괜찮다는 말인지 궁금했다. 전략회의는 무엇을 위한 자리인지, 즉 목적이 무엇인지만 명확하다면 적합한 영상을 찾아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의외였다. “야! 무슨 불만이 그렇게 많아? 나는 뭐 하고 싶어서 하는 줄 알아?”


내 질문이 뉘앙스에 따라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는 건 한참 뒤에야 깨달았다. ‘이번 전략회의의 목적은 무엇인가요?’와 ‘이런 무의미하고 형식적인 행사는 도대체 왜 하는 겁니까?’ 그분이 느낀 내 뉘앙스는 후자 쪽이었나 보다. 덕분에 나는 ‘4가지 없는 者’라는 명성을 얻게 되었다.


다들 피해 가는 힘든 길을 택하는 사람도 있다.

20년을 하고도 적응이 되지 않는 일이 있다는 건 참 기가 막힌 일이다. 내겐 회사 생활이 그렇다. 특히, 찬찬히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는 회사의 페이스는 늘 따라가기 버겁다. 그래서 늘 "잠시만! 왜?"를 외치는 나는 이렇게 보일 것이다. '빠릿빠릿'하지 않은 부하, 쓸데없는 질문으로 일의 진행을 늦추는 동료, 삐딱한 선배.


이해는 된다. 나 또한 한 번뿐인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하는 게 힘들어, 남들 사는 것처럼 살고 있으니까. 적응이 안 된다고 하면서도, 그만 두지 못하고 회사를 계속 다니고 있으니까. 매사 '왜'를 고민하는 건 어려운 일이니까.


하지만, 그 선배님은 달랐다. 보고서 초안을 드리면 빨간 펜으로 수정할 부분을 표시해 주던 다른 선배들과 달리, 그는 항상 이렇게 물었다. "네가 하고 싶은 게 뭐야? 그걸 왜 해야 하는지 설명해 봐." 처음에는 차라리 다시 써 오라고 보고서를 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덕에 나는 많이 깊어질 수 있었다.


명확한 목적의식은 사람을 강하게 만든다.

박웅현 님이 쓰신「여덟 단어」라는 책에 이런 글이 있다. '기타를 만든다고 했던 클래식 기타 회사는 다 망했고, 음을 만든다고 했던 클래식 기타 회사는 모두 다 살아남았다.' 이 글을 읽고 나서, 내가 회사에서 하는 일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지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난 지금도 왜 해야 하는지를 알 수 없는 일은 하기 싫다. 나부터 왜 해야 하는지 모르는 일을, 후배들에게 하라고 하는 건 더 싫다. 그래서 상사로부터 1주일 내로 새로운 기획안을 작성하라는 지시를 받으면 3~4일 정도는 한 글자도 쓰지 않고 이것만 생각한다. '이걸 왜 하는 걸까?'


개똥철학이라도, 나름대로 그게 정리되면 문서를 작성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을 설득하는 것도 수월하다. 반대하는 사람, 비난하는 사람이 나타나 매섭게 흔들어도 쉽게 쓰러지지 않는다. 나는 그 일을 왜 해야만 하는지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부분 '왜 하는가'는 '할 수 있는가'와 '잘하는가'를 이긴다.


우리는 더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기 위해서나
인간관계를 원만히 유지하기 위해,
혹은 특정한 목적을 위해,
심지어 일일이 설명하기가 귀찮아서 남의 말을 따른다.

타인의 의견을 따르는 것은
언뜻 보면 선량한 행동 같지만 사실 나약함의 증거다.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고
자기만의 눈으로 문제를 바라보아라.  
                                     - 장샤오헝, 「마윈처럼 생각하라」 中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