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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xtener Sep 05. 2020

알아듣게 말하면 바뀔 거라는 착각

솔선수범


부끄러운 내 모습

주인의식을 가져라. 고객 입장에서 생각해라. 창의적으로 일해라. 늘 하던 대로만 하지 말고 혁신해라. 회사 생활을 시작한 후로 늘 듣고 있는 이런 이야기들에 언젠가부터 극심한 피로감을 느낀다. 반감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적합하겠다. 그런 게 말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잖아!


그러고는 집에 돌아와 딸아이에게 말한다. 바른 자세로 앉아라. 휴대폰은 그만 좀 하렴. 지금 공부 열심히 안 하면 나중에 후회한다. 그러다 딸아이의 짜증 난 표정을 보고 버럭 화를 낸다. 아빠가 널 위해 하는 소리인데 태도가 왜 그래?


자려고 누우면 자신이 한심하다. 회사랑 나랑 다른 게 뭔가? 누가 누굴 비난하는 건지. 하지만, 자고 나면 붕어처럼 똑같은 일상을 반복한다. 직원들을 변화시키지 못하는 회사를 비난하며, 말귀를 못 알아듣는 딸아이에게 화를 낸다.


생각해 보니 성공한 적도 있다.

오래전, 딸아이가 어렸을 때였다. 어른에게 존댓말을 하고, 책을 가까이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인사를 잘하는 사람으로 자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알아듣지도 못하는 갓난아이에게 늘 존댓말을 했고, 휴일에는 가슴에 안은 채 책을 읽었으며, 손 잡고 같이 외출하면 만나는 사람들에게 밝게 인사를 했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았다. 말을 튼 딸은 아빠에게 존댓말을 했고(부작용은 아빠에게만 한다는 것이다), 한 번 앉으면 몇 시간은 책을 읽을 만큼 독서광이 되었으며, 사춘기 전까지는 인사성도 밝았다. 사춘기 때는 인사는커녕, 뭘 물어도 대답을 하지 않아 속을 터지게 했지만.

 

아가씨로 성장 중인 요즘, 그녀의 방에는 살림살이가 많아졌다. 방이 이게 뭐냐, 정리 좀 해라. 그러다 보면 나만 괴롭다. 그래서 휴일 아침이면 말없이 청소기를 돌린다. 재활용품도 내다 버리고 잡동사니들 정리도 하고 있으면 방에서도 청소하는 소리가 들린다.


편하게 살고 싶으면 리더가 되어서는 안 된다.

무엇이 옳은 일인지 차근차근 알려 주면 아이가 행동을 바꿀 것이라는 건 부모의 착각이다. 많은 리더들도 비슷한 실수를 한다. 뭘 해야 하는지 명확히 지시하면 뜻대로 움직일 것이라는 것 역시 오산이니까. 아이는 부모의 말을 듣고 자라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행동을 보고 자란다.  


삼국지를 보면 장판에서 대패하여 간신히 목숨만 건진 유비가, 조운이 힘들게 구출해 온 아들을 던져 버리는 일화가 나온다. 자식은 또 낳을 수 있지만 훌륭한 장수는 다시 구할 수 없는데, 아들 때문에 아까운 장수를 잃을 뻔했다고. 그 날 유비는 아이를 던졌고, 그 날 이후 조운은 유비를 위해 자신을 던졌다.

 

자신이 사람을 부리고 통제하는 자리에 있다고 생각한다면 사춘기 딸을 둔 아빠처럼 매일같이 화가 날 것이다. 그러나, 늘 팀원들보다 한 발 앞서 걸으며 그들이 내 뒷모습을 보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들에게 지시한 일은 언제든 자신도 할 준비가 되어 있다면, 어렵고 힘든 일에는 먼저 뛰어든다면


어느새 많은 사람들이 당신 뒤에서, 당신과 함께 걷고 있을 것이다.


Example is not the main thing in influencing others, it is the only thing.
모범을 보이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주된 방법이 아니라, 유일한 방법이다.  
(알버트 슈바이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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