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마흔아홉 생일이었다.
누구 말마따나 총기도 떨어지고 돌아서면 까먹는 40대에 나는 어쩌다 온라인 마케팅의 최전방에서 이러고 헤매고 있나?
매출은 전달보다 좀더 나오고 있지만 광고비 절대액과 광고 효율은 전혀 나아지지 않고 있어 보고서를 뜯어보고 지표들을 보는데 졸음이 쏟아진다.
이럴 때 마다 내 장사 스승께서 40대가 되면 상품 고르는 안목도 유연하지가 못하고 머리가 안 돌아가서 힘들다고 했던 기억에 기분이 과히 좋지는 않다. 그런데 냉정을 되찾고 다시 생각해 보면, 40대 이전, 20대, 30대의 나도 해결하지 못한 문제와 숫자들을 헤엄치며 졸기 일쑤였다.
우습지만 내가 다시금 해 볼 수 있는 힘은 꽤 자주 이렇게 거꾸로 생각해 보는 것에서 나온다. 흔히, '옛날 같지 않다'는 말들을 하는데 나는 내 20, 30대를 그리 훌륭하게 기억하고 있지 않다. 당연히 지금보다 모르는 게 더 많았고 설익고 미숙하기 짝이 없었다. 여전히 아는 것 보다 모르는 게 많고 어리버리 하지만, 지금은 모든 면에서 다소간 의연해지고 덜 당황스러워 한다.
잘 풀리지 않는 문제 앞에서 꾸벅꾸벅 졸고 앉아 있을지언정, 나는 아직도 하고 싶고, 알고 싶고, 잘 하고 싶은 게 많다. 이젠 재수 없으면 100살이 아니라 웬만하면 100살까지 사는 시대, 죽을 때까지 배우며 습득하며 살아야 한다는 걸 한숨 보다는 설렘으로 받아들인다.
몇 년 전 연로한 부모님이 강원도 산골로 내려가셨다. 병원 등 각종 볼일로 도시에 오셔야 하면 우리 집 아니면 동생네 머무신다. 집에서 일하는 나의 일상은 그 때 마다 요동친다. 특별한 일을 하지 않는데도 부모님이 와 계시다는 사실만으로 마음이 번잡해서 몇 일 씩 업무를 못 한 적도 있다.
몇 일 전 또 오셨는데 이러저러한 이유로 체류 기간이 좀 길어지게 생겼다. 업무 마비를 방관해서도 안 되고 넘치는 업무로 그럴 수도 없어서 나름 패턴을 정해 보고 있다. 어머니는 음식을 하실 때면 내가 뭘 하고 있든 상관치 않고 불러 대신다. 그럼 나는 2초 안에 튀어 가야 한다.
내가 찾은 방법은 (내가 제어할 수 있는 한) 식사 전 시간에는 심각한 일은 안 하는 것. 어차피 나는 심야에 일을 해 왔으니 어머니가 주무시는 9시 이후부터 자기 전까지 뭐든 하면 된다.
중년의 나와 노년의 부모님이 어울려 살도록 다듬어 가야 하는 때가 벌써 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