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속으로만 Mar 27. 2024

2024.3.27

작년 독일 박람회에서 발굴한 태국 상품이 있다. 이 상품으로 어엿한 브랜드를 만들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어, 추가 오더를 하고자 메일을 보냈더니 몇 일 걸려 돌아온 답은 한국 독점 에이전트가 생겼으니 그를 통해 거래하라는 청천벽력.


사실 청천벽력은 과장이고 장사하다 보면 흔히 겪는 일이라고 익히 알고 있었다. 내가 생각해도 충분히 넘을 수 있는 정도의 어려움이건만, 정신은 놀랄만큼 혼미해졌고 기분도 전에 없이 다운 되었다.


비 맞은 중처럼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급한 일들을 해치운 후 하나님 앞으로 가기 위해 기도했다. 역시나 이것도 훈련의 일환이고 이런 어려움이 닥쳤다고 멍 때리지 말고 해야 할 일들을 해 내는 것이 하나님 원하시는 모습이라는 결론. 바로 한국 에이전트에게 세부 조건을 요청하는 메일을 보냈다.


그러나 그렇게 쉬이 수습되지는 않았다. 초보 장사꾼에게 맑은 정신이 돌아오는 데는 시간이 좀 필요했던 모양. 급기야 요즘 지나치게 성실히 살았다는 데 생각이 미쳤고, 책상 앞에 좌정하는 대신 소파에 드러누워 정주행하던 '인간실격' 마지막 2편을 보는 것으로 일탈을 했다. 이 드라마 성격상, 내 속에서는 '이러다 정말 아무것도 되고 결국 나는 되는 것이었다고 결론나는 아닌가' 류의 생각은 걷잡을 수가 없었다.


다행히, 저녁 밥이 나를 살렸다. 몸을 일으켜 저녁을 준비하면서도 생각은 떠나지 않았지만 일부러 크게 틀어놓은 TV 뉴스가 꽤 도움이 됐다. 저녁을 먹으며 남편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남편도 꽤 기대하고 있던 프로젝트였기에 자기도 함께 좌절했다. 남편이 내 예상보다 더 실망하니 오히려 내가 '괜찮다, 그렇다고 못 파는 건 아니다, 준비하고 있는 다른 상품도 많이 있다'고 위로하게 되었다. 


쿠팡에 론칭한 커트러리 광고를 이제 집행할 타이밍인데, 이전 방만한 운영으로 비용 폭탄을 맞은 덕에 이젠 두려움으로 시작도 못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이런 일이 겹치니 간신히 끌어올려 놨던 의욕은 곤두박질 쳐 버렸다. 머리 속의 지식은 앞으로 사업하며 무수히 겪을 일들이니 이만 일로 벌써 이렇게 나가떨어지면 안 된다고 말하지만, 행동을 주관하는 뇌는 도무지 행동 신호를 보내지 않았다.


그나마 일기라도 써야 결국 실패해도 덜 억울할 거라고 생각했던 것을 다시 기억하며 억지로 적고 있는 이 글이 회복의 시작이기를 바란다. 오늘 충분히 한탄하고 비관했으니 내일은 새로운 해가 뜨기를!

매거진의 이전글 2024.3.19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