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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속으로만 Feb 11. 2021

좀 작아도, 단순해도 괜찮아

누구 코에 붙이냐는 자조

20년 넘는 직장 생활 동안,
회사 밖에 몰랐던 사람이
창업을 하고 투잡이란 것을 하게 되면서
마흔여섯 나이에 비로소 알게 된 것들, 하게 된 생각들을
스스로 기억하기 위해 기록합니다

몹쓸 기억력의 소유자이기에,
이렇게라도 기록해 두지 않으면 
지금의 떨림과 설렘과 두려움을 
언제 그랬냐는 듯 
잊어버릴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나같이 고지식한 직장인들이 흔히 


'사업은 뭔가 특별한 게 있거나 머리가 깬 사람이나 하는 것으로, 나같이 조직의 일부가 전부인 줄 알던 사람은 죽었다 깨도 알 수 없는 세계여서 나 같은 사람이 무슨 사업이냐, 평생 월급쟁이 하는 게 속 편하지' 


라고 생각한다.


또 한편으로는 


'대다수가 그냥 다니는 데는 다 이유가 있지, 이제 창업해서 내가 받는 월급만큼이 벌려지겠어? 게다가 그 업종은 레드오션인데 내 몫이 떨어지겠어?' 


라고 사업을 신포도 취급하기도 한다. 


나도 파이프라인을 여러 개 꽂거나 레드오션인 시장의 0.1%만 내가 차지해도 어마어마하다는 생각을 얼마 전까지 전혀 못 해 봤다. 예전처럼 창업이라 하면 직원도 두고 사무실도 내야 하는 시대가 아니어서 나 하나 받던 월급만큼 벌 수 있는 방법은 그 어느 때보다 많아졌다는 걸, 이른바 1인 창업, 무자본 창업을 알게 된 것도 최근이다. 


방법이 많아졌다는 게 곧 쉽다는 뜻은 아니란 건 굳이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당연하고, 나 역시 아직 내 사업으로 월급만큼 받는 경지에는 가 보지 못하여 그 길이 결코 쉽지 않다는 걸 느끼는 중이다. 


'유튜브에는 '아무 생각 없이 올렸는데 대박 나서 놀랐어요' 라는 간증이 넘쳐나는데 나는 왜 그게 안 되지?!'


이렇게 자괴감이 들면서도, 쉽지 않은 길을 가기 위해서 복잡하고 난해하고 거창한 도구들을 동원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아직 시험해 보지 않은 단순한 전술들이 너무 많이 남아 있어서다.


회사의 일원으로 있다보면 일이 간단치가 않을 때가 너무 많다. 나 혼자 결정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문제 해결을 위해 필수라는 구조적 사고라는 게 애초에 왜 필요한가? 사안을 한쪽 면에서만 보면 안 되고 입체적으로 쳐다보고, 또 그걸 해체했다 다시 모으고 눈에 보이지 않는 걸 형상화해야 비로소 문제에 대한 답을 낼 수 있을 정도로 문제라는 게 두 얼굴도 아닌 몇십개의 얼굴을 가져서 이 쪽에서 보면 저렇게 생기고 저 쪽에서 보면 이렇게 생겼고, 그걸 보는 사람의 눈에 따라 또 다 달라지는 유기체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경력이 찰 수록 간단치 않은 문제를 머리를 싸매고 풀어낸 댓가로 급여를 받고, 덜 복잡한 문제를 쉽게 풀면서 그 만큼의 밥벌이를 할 수는 없다고 굳게 믿는 사람이었고, 그 믿음에 따라 내 능력 이상의 문제들을 풀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하지만 불행히도 나는 이런 데 능하지 않았고 복잡한 문제와 그 해결 모두에 염세적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그 즈음 N잡 열풍과 함께 훨씬 심플한 상황을 쉽게 해결하면서도 비슷한 대가를 취하는 게 가능하다는 아이디어들을 수없이 접하게 되었다. 


더 이상 짜 낼 뇌즙이 없다는 신호가 가득 찬 내 머리 속에, 간단한 비지니스로도 나 하나 먹고 살 만큼은 벌 수 있다는 컨셉은 상당한 충격을 주었고 그 충격 덕분에 창업까지 하게 됐지만, 아직 내 테스트는 과정이기에 컨셉 검증이 되지 않았고, 그 틈을 '남들은 다 플랫폼 비지니스 하는 마당에 말단의 상거래가 과연 사업으로서 지속 가능할 것인가' 하는 의심과 두려움이 비집고 들어온다. 스토어가 굴러가기 시작한 지 이제 고작 만 1년이 지났건만, 주문 알림 하나하나에 뛸 듯이 기뻐하며 힘든 줄 모르고 포장하고, 상품 좋고 배송 빠르다고 칭찬해 주는 고객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희미해 지기도 한다.


나보다 적은 상품 수에 오픈 한 지도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파워, 빅파워를 달고 수많은 인스타 팔로워를 거느리고 있는 사장님들, VC 투자 받는 핫한 회사로 이직한 예전 동료들의 링크드인 프로필도 나를 의기소침하게 한다.


아~! 하지만 벌써 한 달 전에 소싱해 놓은 상품을 등록하고, 다른 스토어와 차별화 할 수 있는 상품을 찾고, 고마운 리뷰에 답글을 달고, 좋아요 몇 개 달리지 않을 인스타 피드를 올리는 오늘 할일을 하지 않고는 불평도 의기소침도 내 것이 아니다. 그렇게 믿고 오늘의 To do list 를 지워 나가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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