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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로 Oct 04. 2020

내팽개쳐진 자기 생명 결정권

1. 모든 철학과 윤리학, 그외 인문학과 사회과학까지 "생명은 가치있다"라는 대전제에 굳건히 발을 딛고 있다. 예외는 없다. 예외는 성립되지 않는다.


2. "생명은 가치 있다"는 순전히 종교적 신념에 의해 뒷받침될 뿐이다. 다른 근거는 없다. 혹시 "단순한 것보다는 복잡한 것이 중요하다"는 자연과학 원리를 붙일 수 있을 뿐이다.


3. 놀랍게도 생명가치론을 가진 인간이 실제로는 지구상의 어느 고등동물 종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생명을 무자비하게 살상해 왔다. 다른 종뿐만 아니라 같은 종인 인간의 생명까지도 거침 없이 파괴해 왔다.


4. 인간이 생명가치론을 공유하게 된 이유는, 다른 모든 종들과 달리 인간만이 자신과 같은 종인 인간을 무자비하게 살상하기 때문일 것이다.


5. 그러니 어쩔 수 없이 인간 사회의 유지를 위해 생명가치론을 만들어야 했다.


6. 생명가치론은 어떤 철학자가 뚝딱 만든 것이 아니라 수많은 학살과 학살과 학살과 학살과 학살을 계속해 오는 와중에 종교적 힘에 의해 만들어졌다. (이때 종교적 힘은 정치적 요구와 결합되어 있었고, 노동력의 유지라는 경제적 요구와 한 통속이었다.) 다시 말해 생명가치론은 그 본래 목적과는 달리 매우 고상한 종교적 외양을 띠고 자리잡았다.


7. 서양의 계몽사상 이후 발전한 인권은 이러한 종교적 생명가치론에 전적으로 도움을 받았기에 그것의 취약점을 제거하지 못했다.


8. (정체성을 가진, 또는 의식을 가진) 다른 생명을 빼앗을 수 없다는 생각은 매우 고귀하지만 종교적인 이유로 그 한계를 설정하지 못했다. 인간의 육체 활동의 일부만을 겨우 지속하는(의식과 정체성을 상실한) 경우에도 그 생명을 유지시켜야 한다는 현대의학의 큰 딜레마를 주고 있다. (그 나라의 최고 갑부가 사실상의 시체인 경우도 있다.) 의학의 생명연장술은 가장 비싼 의료비를 받을 수 있기에 엄청나게 발전해 왔다. 장담컨데 생명의 관점을 바꾸지 않는다면 이건희는 1,000년도 더 살 수 있을 것이다.


9. '생명가치론'과 함께 인간이 고도로 발전시킨 것이 '개인주의'인데, 이것은 개인이 자신의 모든 것의 주인이며 자신의 모든 행동에 책임을 진다는 내용을 핵심으로 하고 있다.


10. 그런데 오직 개인에게 전적으로 속해 있는 것인데 그것을 개인이 처분할 권리가 없고 마치 사회에 의해 관리되어야 하는 것처럼 암암리에 굳어진 것이 있다. 그것이 개인의 죽음이다.


11. 모든 것을 개인의 책임에 밀어넣는 철저한 개인주의 사회에서조차 죽음은 개인의 책임이 아니다. 개인은 죽음을 선택할 사회적으로 인정된 권리가 없다. 내가 죽음을 선택하지 못한다면 도대체 생명은 누구의 소유란 말인가?(물론 종교는 이 문제 하나만은 딱 부러지게 답한다. 신이라고. 제길슨)


12. 생명은 내 의지로 얻어진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인간은 생명이 오직 자신의 것이라고 교육받는다. 그리고는 다시 죽음은 자신이 결정할 수 없다고 부정당한다. (논리적으로 볼 때 너무 해괴해서 말이 안나온다)


13. 오늘날 인권만큼 절대적인 정당성을 가진 것은 없다. 그런데 이 인권에는 "죽음을 선택할 권리"가 없다.


14. 결국 이런 꼴이다. 현대사회에서 '인권'이 합의될 수 있었던 것은 종교적 '생명가치론'에 힘 입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는 '인권'이 '생명가치론'에 의해 호되게 뒤통수를 맞아서 볼모가 되어 버렸다. 논리적으로 인권의 가장 핵심인 "자기 생명 결정권"를 박탈당한 것이다.


15. 이것은 철학적, 도덕적, 윤리적으로 매우 모순이다. 이 모순을 아무렇지도 않게 무시할 수 있는 것은 종교뿐이다. (거긴 늘 하는 짓이 그래왔으니깐.)


16. '자기 생명 결정권'은 생명을 부정하고 죽음을 선택하는 단순하고 맹목적인 권리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 생명 결정권'은 "가치 있는 존재로서의 자기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인간이 가져야 할 인권의 불가결한 요소이다.


17. 살아오면서 충분히 자신의 노동을 통해 사회에 참여해온 사람이 합당한 이유로 더 이상 그럴 수 없다고 판단될 때 그는 자신의 생명에 대한 결정권을 보장받아야 한다.


18. 만약 인간이 이 결정권을 빼앗기게 되면 그의 생명은 미생물과 세균과 암세포와 또 다른 질병의 맹목적인 공격을 기다리다가 온갓 고통을 당하면서 숨겨두고 싶었던 추한 본능을 드러내며 생명을 토해내게 된다.(병원에 돈도 토해낸다.)


19. 인간이 만든 '생명가치론'과 '개인주의'는 가장 휴머니티하게 결합되어야 한다. '자기 생명 결정권'은 "맑고 온전한 인식 능력을 가진 책임있는 인간인 나 자신"이 가져야 한다. 저 허울좋은 신의 이름으로 "세균과 바이러스와 암세포의 맹목성"에 인간 생명의 결정권을 맘대로 내팽개친단 말인가?


20. 어떻게든지 벽에 똥칠 할 때까지 육체의 생명을 끌고 가겠다는 욕망도 존중해야 겠지만, 일평생 인연을 맺은 소중한 사람들과 마지막으로 만나서 작별의 인사를 나누는 '인생졸업식'을 아름답고 슬프게 치른 후 소박한 관에 누워 편히 잠드는 "자기 생명의 선택"은 언제 인권으로 보장받을 수 있을까?


"19세기 인권은 개인의 자기 생명 결정권을 가지는 21세기에 비로소 완성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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