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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로 Oct 04. 2020

잡문11

[머리가 멍해져서 멍한 상태에서 알게 된 멍한 진리]


아는 만큼 행하라, 또는

실천적 지식, 또는

지식을 실천에 옮겨라, 등은

모두 앞뒤가 뒤집힌 말이다.


앎 곧 지식이란 것은

어떤 동기에 의해 얻어지게 된다.

그 동기가 보통 실천과 결합되어 있다.

따라서 실천적 동기가 없는 지식은

애초부터 실천에 아무 관심이 없다.

지식을 먼저 얻고서 "어디 실천 한번 해볼까" 하는 식은 존재할 수 없다.


(잠을 좀 자려고 수면제를 먹어서) 멍한 상태가 되니 이걸 깨닫게 된다.

멍한 상태에서도 머리는 복잡하다.

온갖 잡다한 생각이 머리를 채운다.

이런 멍한 상태에서는 '질문' 없는 '답'을 마구 배설한다.

멍한 상태에 가만있어보니

내가 못하는 것이 '질문'이란 것을 깨달았다.

질문은 동기에서 나오고 동기는 실천에서 나온다.

즉, 질문이 없다는 것은 멍한 상태란 뜻이다.


문제는 이런 멍한 상태뿐만이 아니라

일반적인 교육이나 학습에서도 질문(형식적 질문이 아닌 동기가 분명한 질문) 없는 답만 배설되고 있다는 점이다.


[기억의 저편]


코로, 페르메이르, 레핀, 자코메티, 모딜리아니, 고야, 세잔, 샤갈, 베이컨, 쇠라, 들라쿠르와, 엘 그레코, 앤드류 와이어즈, 터너, 브뤼겔, 브라크, , , , 


그 외 수많은 화가들의 그림을 볼 때 나는 아버지가 생각이 난다. 그런 그림의 도판을 펼쳐주며 나에게 무슨 이야기를 들려주셨던 기억들 때문이다. 그 내용까지 기억에 남는 것도 있고, 그냥 그 상황과 그림만 기억에 남겨진 것도 있다.


이것은 남들이 가지지 못한 귀한 자양분이다. 그런데 워낙 많은 화가와 그림들에 그런 기억의 파편들이 결합되어 있다 보니 단점도 있다. 그런 기억의 편린이 전혀 남겨지지 않은 화가에 대해서는 무의식적으로 약간 경원시하는 태도가 발동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간혹 낯설고 생소하게 느껴지는 화가와 친해지려면 그런 잠재의식의 방해 작용을 극복해야 한다. 프리드리히, 호퍼, 그로스 등이 그런 예이다.


기억은 소중하지만, 또한 그 기억은 배타성을 생산한다는 것도 늘 유념해야 한다.


하루가 지나가니

슬픔이 아픔이 되어 

가슴을 쿡쿡 찌른다.


어떤 현장에서 몇 번 스쳐간 것이 

인연의 전부인데

그의 선택 하나하나가 

손끝의 감촉처럼 전달된다.


풀어내는 방식은 달랐을지라도

그는 내가 머릿속에서 뱅뱅 돌리는

동시대의 모든 문제를

동일한 언어로 소통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정치인이었는지도 모른다.

막상 떠나고 나니 더 그렇게 생각된다.


그래서 떠나감의 슬픔이

상실의 아픔이 되어 쿡쿡 찔러온다.


나에겐 형이 없다.

혈육의 형뿐만 아니라

그냥 편하게 형이라 부를 사람도 없다.

진심 어리게 '선배'라고 부르는 사람도 없다.

독고다이라서 그런 게 아니라

스타일이 좀 그렇다.


어젯밤 울적한 맘을 달래고자

빈소를 찾아갔다.

계획에 없었던지라 실례를 무릅쓰고

반바지 차림으로 갔다.

긴 줄을 기다려서야

영정 앞에 설 수가 있었다.


거기 '형'이 있었다.

갑자기 눈물이 핑 돌 것 같아

형의 얼굴을 슬쩍 피했다.


잘 가요. 형.

(2018.7.24 노회찬을 보내며)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권력자 앞에서

그것도 난폭한 권력자 앞에서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하려면

희생에 대한 각오와

용기가 필요하다.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전선에서 치열하게 밀고 밀리는 상황에서

'우리 편'을 향해서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하려면

참된 용기뿐만 아니라

지혜가 필요하며

때론 결이 다른 희생을 각오해야 한다.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해야 하는 대상이

사회적 약자이거나 소수자인 경우

용기와 지혜뿐만이 아니라

진실한 공감능력이 필요하며

때론 책임감까지 요구된다.


가장 어려운 것을 

가장 쉽게 하는 사람에게는

용기도 지혜도 공감도 책임도 발견하기 어렵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

그중에 제일은 '없다'.

믿음의 내면적 상태가 소망이어야 하고

믿음의 외적 표현이 사랑이어야 한다.


이 두 가지가 '거세된 믿음'은 종종

제도의 공고화와 이탈 방지를 위한

폭력적이고 주술적 장치가 된다.


결국 이렇게 읽는다.

권세와 탐욕과 지배가 있는데...

탐욕은 권세의 내적 상태이고

지배는 권세의 외적 표현이다.


기발하다, 는 감탄은

아이디어 상품에 어울리는 건데

종종 잘 나가는 화가의 그림에

이 감탄사가 나온다.

그리고

거기까지다.


Ubi amor, Ibi dolor


사랑이 있는 곳에는 고통이 있다, 

라는 뜻의 라틴어란다.


뭐 대단히 특별한 것도 아니고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근데 그 고통이란 것이

나는 사랑하지만 사랑받지 못할 때

1이라면

나의 사랑 그 자체로 파생되는 것이

10이고

내가 사랑을 받는데 그만큼 주지 못할 때가

100 인 것을...


Ubi amor, Ibi dolor


[경이로운 독일인의 멘털]


직전 브라질 월드컵 우승국 독일이

최하위로 조별리그 탈락이 확정된 순간

독일 선수 누구도 그라운드에 눕지 않는다.

아무도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표정은 굳어있지만 담담하게 서로를 격려한다.

아마도 뢰브 감독은 이번 결과로 인해 

계약기간 종료 전에 경질되지도 않을 것이다.

경이롭다.


[판사의 사후뇌물 여부 30년 동안 감시해야]


판사의 일견 어이상실 판결이더라도 나는 인정된 증거와 법리적 판단에 따라 그렇게 판결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믿어주는 편이다.


그런데 판사 일반이 재벌 일반에게 베푸는 일반적인 온정적 판결은 도를 넘어선 것으로 대표적인 사회적 적폐로 뿌리 뽑아야 한다. 외국이라면 20년 이상  징역형 받을 일이 이 나라 재벌에겐 무죄 거나 집유로 나오는 게 다반사다.


판사가 판결을 내린 후 평균적으로 10~20년 후에 옷을 벗는다고 치자. 현재 아무리 권세를 휘두르는 정치인도 그때 어떤 처지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재벌은 다르다. 조까튼 이 나라에서는 재벌의 3대 세습은 기본이다. 판사들이 이것을 모를 리가 없다. 재벌에 대한 판결은 20년 후에라도 보상받을 수 있다는 것을.


판사들의 재벌에 대한 온정주의는 이러한 사후뇌물에 대한 기대감에 뿌리박고 있다고 나는 확신한다. 그러니 판사가 옷을 벗은 이후 최소 30년 동안은 온정적 판결을 내려준 재벌에게 어떠한 이득은 얻는지 감시해야 하며 조금이라도 이득을 얻으면 사후뇌물죄로 처넣어야 한다.


아무리 탁월한 철학이나 사상, 또는 이념이라도 그것이 사회운동 레벨로 확장되면 자칭 OO주의자로 대별되는 그 이념의 육화 된 개별 담지자는 기실 그 이념이 해결하고자 하는 모순 또한 내재하고 있기에 형편없는 잡탕으로 표출되기도 한다는 것은 모든 사회운동의 역사가 분명하게 보여준다.


반대로 말한다면 사상이나 이념의 개별 담지자를 풀어헤쳐서 그 사상이나 이념을 비판하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매우 손쉬운 방법이지만 그만큼 비겁하고 저열한 태도는 없다.


그런데도 저 비열한 태도가 무슨 비장의 공격무기라도 된다는 듯이 폼 잡고 휘두르는 이 땅의 남정네들이 참 많다.


혹시 모르거나 까먹은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예전엔 종전협정이나 평화협정 주장하면

북한이 주장하는 것을 추종한다고 잡혀갔다.

얼마 전까지도 종전협정이나 평화협정을 주장하는 것은 진보정당뿐이었다.


혹시 모르거나 까먹은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예전엔 대규모 한미 연합훈련이 북한에게 위협적인 것이니 하지 말라고 주장하면

북한의 주장에 동조한다고 잡혀갔다.

불과 한 달 전까지도 한미 연합훈련은 "순수한 방어훈련"이니 북한이 신경 쓸 일 아니라고 대한민국의 모든 언론과 정치 세력이 떠들어댔다.


이 모든 것이 한 방에 바뀌었고 또 바뀌고  있다.


이런 평화를 향한 진전은 많은 노력과 다양한 변화된 조건에서 가능해진 것이지만 아무리 부인하려 해도 부인할 수 있는 사실은...


이런 젠장

북한이 핵무기를 가졌기 때문이다.


우리(남북한)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시간과 돈과 생명을 버리면서 돌고 돌아 여기를 온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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