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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로 Oct 04. 2020

잡문12

힘 쎈 놈과 힘 약한 놈이 

말로 약속을 한 경우

그 약속이 지켜질지 애가 타는 쪽은

늘 힘 약한 쪽이다.


북이 약속을 지킬까?

물어보는 것은 정당하다.

그럴만한 역사적 배경이 충분하다.


그런데 과연 미국은 약속을 지킬까?

물어보고 따져보는 언론은

단 한 군데도 없다.

그런 질문이 필요한 것도

그럴만한 역사적 배경이

충분하고도 차고 넘치는데 말이다.


살아가면서

가장 감당이 안되는 사람은

피해망상이 있거나

아니면 피해자 코스프레를

잘 하는 사람이다.


게다가 그 사람이

왠만한 일에는

절대로 손해보거나 물러서지 않을 

대가 쎈 사람일 경우

거의 두손 들어야 한다.


그럼에도

머리에 쥐가 나는 이유는

그 사람이 정말 피해자일 수도 있는

가능성 때문이다.


[짐 정리]


설합 안쪽을 훑어내면

먼지덩이와 함께

추억이 쏟아져 나온다


저마다

지금 버려지지 말아야 할

정당한 사유를 애끓게 내민다

나름 논리적 근거를 대지만

그저 아우성처럼 들린다


나는 조용히 설득한다

내가 너를 지금 버리지 않는다면

너에 대한 아무런 감정도 없는 이의 손에 의해

가차없이 버려질 것이라고

그러고 싶냐고...


그러면 추억은 조용히 눈을 깔고

쓰레기통으로 향한다

세월은 이렇게

충혈되는 눈시울과 함께

버려질 것들의 총합이다


[무한갑질권]


"고객이 왕이다."

이 말은 누가 만든 것일까?


본래 의미는 아마도

고객의 니즈에 따라서

비즈니스 방향을 세워야 한다는

그런 뜻일게다.


우리나라처럼 

고객에게 '무한갑질권'을 부여하는 뜻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것이 무한갑질권을 획득하면서

서비스 노동자들은 노동뿐 아니라

감정까지 팔아야 하는 처지가 됐다.


달리 방도가 없다.

고객이 지켜야할 사항을 명시하고

1차 갑질시에 그 내용을 주지시키고

계속되는 2차 갑질에는

무조건 112에 영업방해로 신고해야 한다.


이게 보편화 되야

비즈니스도 잘돼고

노동자도 감정팔이 안하고

사회도 명랑해진다.

경찰은 좀 바빠지겠지만...


[어느 없는자의 궁시렁]


살아오며 돈맛을 몰랐던 건

그나마 다행이다

옹색하긴 해도

덜 망가졌다


살아오며 권력맛 몰랐던 건

천만다행이다

매양 악다구니 속에

몰골마져 추레해졌을 터


그래도 맛을 아는게

딱 하나 있으니

그게 사랑맛이다


이 정도면 제법 괜찮은 거다


[가장 쓰기 어려운 글]


성격이나 목적에 따라 몇가지 확연히 구분되는 글들이 있다. 

거칠게 구분하자면

1. 문학적인 글

2. 언론의 글

3. 학술적인 글

4. 선언문류

5. 매뉴얼


이중 가장 어려운 것은 5번 매뉴얼이다. (황당하게 들릴 것이다.)


따져보자.


문학은 보통 자기 자신에 책임지면 된다. 언론은 팩트에 책임지면 되고, 학술물은 아카데미의 엄밀한 규칙만 따르면 된다. 선언문류는 독자에게 어떤 영향을 끼쳐야할 책임이 있지만 보통은 한정된 범위 내의 사람과 소통하면 된다.


매뉴얼이란 놈은 보편적인 사람에게 그 글이 '지시하는 내용에 따른 행동'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책임'이란 측면에서는 가장 막중하다. 다행스런 것은 매뉴얼의 대상이 문학처럼 '인생'이 아니라 아주 협소한 일에만 국한된다는 점이다.


이런 너저분한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내가 어떤 글을 쓸 때 거기에 어떤 책임이 따르는가에 대해서 생각해봐야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A라는 것에 대해 지극한 애정을 가지고 글을 썼는데 어떤 이는 그것이 A를 비난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물론 오독이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나'에 대한 사전정보가 전혀 없었다면 그런 오독도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독까지는 가능한 일이라고 보지만 그 오독에 바탕해서 비난하는 것은 너무 부주의한 행동이라고 본다.)


어쨋든 이 일을 겪고 생각해 보게 된다. 나는 글을 쓸 때 어떤 사람의 오독에 대해서 책임이 있을까? 조그만 오독의 가능성도 피하려면 결국 글은 '매뉴얼'처럼 써야 하는 것이 아닐까?


어렵다.


[17살, 완전 내 이야기]


"첫사랑이 정말 사랑이었다면 

그것이 사랑인 줄 모른다."


경험해보지 못한 어떤 강렬한 감정에 휩싸이고, 참을 수 없이 흘러내리는 눈물만이 있을 뿐이다. 첫사랑은 '즉자적' 사랑일 수밖에 없다.


그 다음부터는 사랑이 '대자적'이 된다. "이게 사랑이다." "이게 사랑인가?" 등등. 체험되거나 개념화된 사랑에 자신의 감정을 비추어서 평가하게 된다. 그러나 여전히 강렬한 떨림과 고통을 동반한다.


그 다음 노련한 사랑꾼이 되면 자신의 감정을 잘 조절 통제하면서 사랑을 하게 되지만 이때쯤 되면 사랑 자체에 그리 높은 가치를 부여하지 않게 된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엘리오는 그것이 첫사랑인 것을 금방 깨달았겠지만, 나의 17살 그 강렬한 감정과 눈물이 첫사랑이란 것을 깨닫는 데는 30년 이상이 걸렸다.



[옛날엔 불편해서 어떻게 살았을까? 라는 생각이 헛된 이유]


몇일전 관리하던 서버가 뻑 됐다.

갑자기 로그 파일이 엄청 커져 저장공간이 꽉 차서 발생한 비교적 단순한 원인 때문이었다.

급한 김에 일단 로그 파일을 지워나갔다. 그러다가 결정적인 파일 하나를 잘못지웠다.

그 서버에서 돌아가던 6개 정도의 홈페이지가 먹통이 되었다.

서버 관리업체에 도움을 청했더니 DB복구 업체에 의뢰하란다.


이제 식은 땀이 나기 시작했다.

"해결하려면 얼마나 걸려요?"

이렇게 누군가가 묻는다.

아는 사람은 안다.

이런 문제는 1분만에 해결될 수도 있고 평생 해결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인터넷에서 유사한 문제를 다룬 글들을 샅샅이 검색하기 시작했다.

원인은 파악이 되었으나 그 해결 방법을 제시한 글들을 따라서 해봐도 매번 실패했다. 

눈이 캄캄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어떤 약간 허접해보이는 방법을 제시한 글을 속는 셈 치고 따라해 보았다.

휴~~ 마침내 문제가 해결되었다.

인터넷상의 수백억 건의 문서 중 나와 동일한 경험을 한 사람이 문제 해결을 한 후 고맙게도 글을 올려주었기에 해결할 수 있었다.

문제 발생 후 24시간만이다.


그러고나서 생각해보았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엔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

초전문가에게 초고가의 비용을 들여서 해결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 생각하니 인터넷과 구글에 한없이 고마웠다.

그런데 그게 참 멍청한 생각이었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엔 아예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러저런 게 없던 예전엔 불편해서 어떻게 살았을까 생각하는 것은 모두 헛된 생각이다.

그 시절은 그 시절이 요구하는 필요한 해결책을 가지고 있었다.


기독교에서 너무 흔하게 언급되어 

무슨 뜻인지조차 생각해볼 겨를이 없는 단어가

'거룩(holy)'이다.


이 단어의 뜻을 이해하고 

마음에 품을 수 있는 것이 

시작이다.


그리고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보잘 것 없는 존재에서

'거룩'함을 느끼는 것이 

끝이다.


특별한 교육이 없어도 

불협화음이나 

음정박자 안 맞는 노래 나오면

누구나 알고 찌푸린다.


특별한 교육 없어도

주어 동사 제대로 안붙어서

의미 전달 안되는 문장을 접하면

누구나 알고 설레설레 한다.


그런데 좀 배웠다는 사람중에도

기본적인 조화나 균형이 망가진

황당한 디자인을 보고도

아무 생각이 없거나

도리어 끄덕이기까지 한다.

왜 이게 후졌는지를 설명해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기초적인 미적 감각의 불균형"은 

어디서 초래하는 것일까?


헤겔과 마르크스 변증법의 양질전환의 법칙은 

세상만사 어디든지 

쩍쩍 잘 들러붙지만 

요것만은 아니더라.


지식을 아무리 무식하게 쌓아올려도

지성으로 전환되지 않는 경우가 널려있고

그렇게 전환되지 못한 지식 더미는

때론 꼴 사나와지기 십상이다.


지성을 아무리 깊게 파내려가도

지혜의 샘에서 한 조각 물방울도

얻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지혜에 이르지 못한 지성.

아니 지혜를 추구하지도 않는 지성은

자칫 지성 자체를 위험하게 만든다.


양질전환에 이르지 못한

'지식' 더미는 

그냥 좀 꼴불견에 불과하지만

양질전환에 이르지 못한

'지성'의 향연은 

종종 독을 뿜어내기도 한다.


사람이 제대로 성장하려면

필요한 영양분이 있듯이

받아묵어야 할

적당량의 사랑이 있다

그 결핍증의 결과는

영양결핍증만큼 심각하다


그런데

이보다 더 심각한 것이 있다


살아오면서 적당량의 사랑을 

남에게 줘보지 못한 경우

제대로 누군가를 사랑해보지도 못한 경우

그 후유증이 훨씬 넓고 깊다


받지 못한 사랑은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여지가 있지만

주지 못한 사랑은

왱간해서는 도움을 받을 길도 없다


진리에 대한 진지한 접근이나 탐구가

자신의 현실적 조건(권력이나 부)에 의해 방해받을 때

쉽게 선택하는 편법이

사이비 또는 준사이비 종교다.


진리에 접근하려면 

불편한 것에 마주쳐야 하는데

종교는 그 불편한 실체를 

가상의 것으로 대체시켜 주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그들은 여전히 

매우 진지한 진리 탐구를 하고 있다는

만족감을 가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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