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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로 Oct 04. 2020

나의 서점 방랑기

적어도 30대까지 나의 취미는 분명 '서점가기'였다.

아마도 그 취미는 중학생 때부터 시작된 것 같다.

보인중학교 골목을 돌아나오면 지금은 문구점이 위치한 곳에 당시엔 꽤나 큰 서점이 있었고 나는 거기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래봐야 주로 삼중당문고나 다른 문고판이 꽂힌 서가 앞에서 이것 저것 뒤적이는 것이 전부였다.


고등학교 때와 대학 초년에는 주로 종로서적이었다. 그땐 관심도 제법 다양해져서 직원들보다 왠만한 책의 위치를 더 잘 꿰고 있었다.


그후 사회과학 서적을 탐독할 땐 대학가 서점과 광화문 논장이었다. 그리 크지 않은 서가였기에 신간서적이 꽂히면 바로 알아볼 수가 있을 정도였다.


그후로는 여지없이 교보문고로 빨려들어 갔다. 갈 때마다 일정한 동선이 있었는데 어느 순간 서가를 한번씩 뒤엎는 날이면 책 위치에 새로 적응하느라 짜증이 나곤 했다.


그렇다면 그러는 동안 책 무자게 읽었겠네? 라고 묻겠지만 그건 약간 별개의 문제로 놔두자.


어쨋든 어느 순간부터 책을 사와도 읽을 시간이 없어 하염없이 책꽂이만 차지하게 된다는 것을 통렬하게 자각하고 나서는 서점을 향한 발걸음이 줄었다. 물론 여전히 서점을 자주 가기는 하지만 그것이 '취미'라고 말할 자격은 상실한 것이다.


그렇다. 

나는 책을 읽기보다 만지작거리는 것을 좋아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읽고 싶은 책이 너무 다양하고 많을 경우에 나타나는 현상일 것이다.


음식점 가서 메뉴판을 한참 뒤적이는 것과도 흡사하다. 동태탕을 먹겠다고 나섰으면 동태탕을 먹겠지만, 배가 출출해서 뭔가 먹겠다고 다섰다면 수 많은 메뉴 앞에서 망설일 수밖에 없다.


나의 독서는 그러했던 것 같다. 타깃이 정해지지 않고 그냥 배고픈 독서.


그래서 지금도 잠자리 옆에는 전혀 연관성 없는 책들이 자기가 들추어지기를 기다리며 마냥 쌓여있다. 어디 보자. 존 버거, 줄리언 반스, 발터 벤야민,  몇 권의 역사 책, 미술 책, 영화 책, 컴퓨터 프로그래밍 책, 선물 받은 시집, 작가에게 받은 소설 책... 이 잡다구니한 책들의 초중반 어디 쯤에는 모두 책갈피가 꽂혀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특정한 목적이나 정확한 타깃을 가지고 읽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냥 마음이 출출해서 뭔가를 채우기 위해 읽는 경우도 있다.

서점에 가서도 특정한 도서를 검색해서 목표에 다가가는 수도 있지만, 그냥 어슬렁 거리며 이리저리 기웃거리고 만지작거리다가 그날따라 손에 착 붙고 마음에 슬며시 다가오는 책을 우연히 만나는 경우도 있다.



굳이 말한다면 더숲의 서가는 바로 후자의 모양새다.

더숲에서 가장 눈길이 가고 마음이 가는 사람은 서가 앞에서 어슬렁거리는 분들이다.

그런데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든다. 좀더 정교하고, 세련되고, 사려깊고, 정성이 담긴 북큐레이션이 되기에는 여러모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어떤 특정한 책이 아니라 그냥 읽을만한 책을 둘러볼 때 언제나 한 권 정도는 보물처럼 반짝이고 있는 그런 서가를 꾸미고 싶다.

언젠가는 그렇게 되리라...


나의 긴 '서점가기' 취미에 유종의 미를 거두고, 그런 취미를 가진 독서인들과 행복을 나누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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