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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로 Oct 05. 2020

잡문13

[프로페셔널]


어떤 프로페셔널은

자기 일에 프로페셔널할 뿐 아니라

그런 경지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투여하고 쌓아온 시간과 노력과 경험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기에

다른 영역의 프로페셔널을

존중하고 겸허하게 귀기울인다.


그런데

어떤 프로페셔널은

자기 일에 프로페셔널할 뿐만 아니라

다른 영역도 자기가 다 안다는 듯이

끊임없이 나댄다.


놀라운 사실은 

전자보다 후자가 더 많다는 사실이다.

참된 프로 의식이 결여된 사회의 자화상이다.


직장 생활 잘 지내온

서른 남짓 된 친구는

예의 범절 각 잡혔고

상사 에게 참 깍듯해

마음 편한 윗 상사는

두눈 질끈 쉬 놓치네

윗사람에 깍듯한 만큼

아랫사람에 갑질한단 사실을...


이런게 필요한 조직문화라고 생각한다면

사회는 병든 병영사회 된다는 사실을...


친구는 언제, 어디서, 누가, 왜, 어떻게, 무엇을 위해 등 6하원칙을 철저히 배반해야 이루어진다.

"저 사람과 친구해야지" 하는 순간 이미 친구가 아니다.

친구는 그렇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친구는

쓸때없는 이야기도 진지하게 말하고

슬픈 일도 웃으며 말하고

사소한 기쁜 일에도 괜히 자랑질하고

그러다 티격태격하고

그러다 아무 이유 없이 그냥 허허거리고

그러다 수년 동안 아무 연락이 없다가

어느 날 갑자기 만나서는

이틀만에 다시 만난 듯 대화하는 사이.

그게 친구다.


살아보니

평생 친구 하나 얻기 힘들더라.

친구 하나 없는 사람이 지천에 깔렸더라.

6하원칙이 개입되는 순간 친구는 사라진다.

마치 숨쉬기를 잘해보려고 생각하면 숨쉬기 힘들어지듯.

친구도 그렇다.

아무 이유 없이 그냥 어느덧 ...

그러니 친구는 그 사람의 삶 그 자체다.


[서로 다른 '시간']


매순간 새로운 것에 눈을 뜨며

만남과 헤어짐이 가슴에 깊히 새겨지는

10대에서 20대까지의 '시간'은 빽빽하다.

순간순간이 뇌 깊숙한 곳에 알알이 박혀있고

평생 남겨질 문신이

왕성한 세포 분열과 함께 온몸에 퍼진다.


40대를 넘기면 

우물쭈물 하다가 후루룩 60을 바라보게 된다.

그게 3년전 일인지 10년전 일인지도 헷깔린다.

이때의 '시간'은 널널 벙벙하다.

죽은 세포가 몸에서 떨어져나가듯

꿈 꾸던 모든 것들이

시간 앞에 무릎 꿇고 하나씩 분해된다.


그런데 말이다.

이게 내 연령대 평균 수명으로는

이제 겨우 반밖에 살지 않은 거라는데

도대체 남은 생은 뭐란 말인가?


사람을 볼 때

첫째 기준은

"열심히 일(노동)하는가"이다.

그렇지 않은 이는

결국 다른 사람의 노동으로

먹고살려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것이 만악의 근원이다.


둘째 기준은

"노동을 어떻게 생각하는가?"이다.

이게 삐뚜루인 사람은

열심히 일을 해도

주변 사람을 피곤하게 만든다.


[인간, 외계생명체 그리고 괴물]


"I Agree!"


지구에 난파한 우주선에 겨우 생명이 간당간당한 외계생명체가 있었다면 아마도 그 생명체를 살리기 위해 최대한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 생명체의 특이한 생체현상을 의사가 언론에 브리핑한다면 별 저항없이 받아들일 것이다. (아마도 이런 류의 정보는 누군가에 의해 독점될 것이기에 정보의 공유는 환영할 일이다.) 그 외계생명체는 우주를 건너온 인간보다도 월등한 고등 생명체이겠지만 거기에 '인권'을 논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다른 문제다.


이게 그리 어려운 문제도 아니다.

만약 박근혜가 병에 걸려서 수술대에 올랐다고 치자. 집도한 의사가 박근혜 몸에서 좀 희한한 것을 보고는 언론에 까발렸다고 생각해보자. 처음엔 '꺼리' 하나 생겼다고 반길지도 모르지만 다음 순간 누구나 "이건 뭐지?" "이건 좀 아닌 것 같은데"라는 문제제기가 나올 것이고 그 의사는 즉각 사과를 하고 어쩌면 법적인 책임까지 물어야 할 지도 모른다. 박근혜 '까기'라면 뭐라도 환영할 사람 조차도 그가 보편적인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 정도는 쉽게 판단할 수가 있다.


이게 뭐 아주 특별한 인권감수정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어려운 법리적 판단력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그냥 느낌으로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나라는 오래전부터 어슬렁 거리며 배회하는 괴물이 있어서 이 단순한 '느낌'조차도 마비되어 있다.


그래. 누구나 그 괴물의 지배를 받고 있으니 그 의사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고 그렇기에 별 생각 없이(아니 당연하게) 언론 브리핑을 한 것이리라. 그러니 거기까지는 그리 심하게 공격할 생각이 없다.


그런데 어느 용감한(그래서 좀 과하기도 한) 사람이 벌떡 일어나 문제를 제기했다면 의사는 자기의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하고 바로 잡아야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는 법적인 책임 문제가 될만한 것은 슬쩍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고,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을 돌려차기 한방에 보내버려 그를 국민의 공적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러자 어슬렁거리던 괴물들이 사방에서 날뛰기 시작했다.

(2017.11.25)


'진보'에 가장 곤혹스런 것은

자신이 내세우는 가치와

실제 삶의 불일치나 모순을

아주 능란하게 숨기거나 해소한다는 점이다.

그것이 종종 엄청난 독이 되어 돌아온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서로를 기꺼이 감추어준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진보는 늘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 불일치와 모순이 없다면

진보의 에너지가 어디서 나오겠는가?


단지,

능란하지 못한 사람이 있어

그의 심성이 자칫 망가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안에서는 증오와 혐오를 부추겨

총기 장사꾼 살찌우고


밖에서는 갈등과 긴장을 증폭시켜

무기 장사꾼 배불리고


징그럽다. 인류의 적폐


그 적폐가 너무 깊게 뿌리내려

말하는 사람이 되려 고루하게 느껴지고


매양 당하는 자들은 

배고파 밥 먹듯이 머뭇거리지도 않는다.


미국에선 

터지면 떼돈 벌 놈들이 

전쟁을 부추긴다.


남한에선 

터지면 젤루 먼저 튈 놈들이

전쟁을 부추긴다.


미국의 임대사업자 등록율이 거의 100%.

일본의 경우는 80%.

다들 투명하게 세금낸다는 소리다.

우리나라는 7%란다.

부동산투기의 천혜의 왕국이다.

이걸 아직껏 아무도 손 안댔다.

이따위 나라에 살고 있으니

내 삶이 이러케 고단하지

(2017.8.8)


1.

내가 '무엇'인가를 비판할 때는 그 무엇에 대해 '실질적으로 선택 가능한 대안'이 있고 그 선택은 확실하게 더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분명한 판단이 설 때이다.


2.

이런 태도를 가진 사람은 보통 진보적일 수 없고 도리어 보수적인 경우가 많다.


3.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현실 사회에서는 내가 여전히 진보적인 척 할수있게꼬롬 1번이 널널하게 펼쳐져 있다.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것은 '민주주의'다.

자기를 적대시하고, 

자기를 파괴하고, 

자기를 갈기갈기 찢어놓으려는 

그런 자들을 자기 안에 품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의 이중잣대]


내가 류샤오보의 죽음에 아무 감흥이 없는 것은

아마도 내가 자유와 인권에 대해서 

일종의 이중잣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면 서구식 자유민주주의가 '모든 인민'의 자유와 인권을 위한 '유일한 길'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의심이 사회주의에 대한 감춰진 믿음과 결합되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런 생각. 

류샤오보에 대해서 가지는 

왠지 미지근한 반응은 나뿐만은 아닌 듯하다.

언론이 이처럼 열심히 떠들어주는데도 

이런 인물의 죽음에 간단한 애도의 글 하나 정도는 남길 만한 수많은 사람들도 조용하다.

(2017.7.15)


지난 흔적을 뒤적이다가

눈길에 손길에 차이는

아픔의 기억들...

나는

...그저 담담하다.


그런데 ...

그때 내 곁에서 함께 고스란히 

그 아픔에 온몸을 적셔야 했던 이가

끄적끄적 휴지처럼 남겼던 

몇 글자의 몸부림에

또 몇 글자의 희망에

그리고 깊히 숨겨진 눈물에

나는 속절없이 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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