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동
이창동 감독의 2010년 영화 <시>을 뒤늦게 찾아보았다.
어린 손자가 성폭력 가해자란 사실을 알게된 미자(윤정희 분).
그로 인해 파르르 떨리는 아슬아슬한 감정선을 표현해내는 윤정희의 연기를 보면, "아! 연기를 잘한다는 것이 저런거구나!" 느끼게 된다.
이 영화에서 '시'는
도피처이자
핑계이자
외면의 방법이다.
당장 소리지르며 폭발할 것 같은 감정을
나무와 꽃을 읊조리며 삭힌다.
그러나 결국 '시'는 유언장이 되고
그 시는 최고 형태로 승화된 자기 감정의 농축물이 된다.
칸영화제 각본상을 받은 영화답게
이 영화의 구성과 전개, 그리고 디테일이
이창동의 품격을 말해준다.
유감이라면
마지막 윤정희의 시가 이 영화의 클라이막스요, 시란 무엇인지를 또렷이 말해주는 키포인트지만,
어느모로 보나 영화 속 캐릭터 윤정희가 쓴 시는 아니라고 느끼게 된다.
어떻게 갑자기 이렇게 멋진 시를 쓸 수 있단 말인가?
이게 좀 튄다.
영화의 마지막에 낭독되는 시의 내용에 빠져들면서도
캐릭터 윤정희의 시가 아니라
"에이~ 이창동의 시네~"라는 생각이
감동에 엇박자를 놓는다.
그에 비하면
영화 <패터슨>의 시는
미국의 톱클래스 시인이 쓴 시임에도 불구하고
버스운전사 노동자의 시로 느끼게 만든다.
그것은 아마도 '오하이오 블루 팁' 성냥이 들어가는 첫번째 시 <Love Poem>의 다소 엉뚱하고 아마추어 같은 전반부를 영화 앞 부분에 무려 4번에 걸쳐 반복해서 읊어줌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그 이후의 모든 시들이 그 노동자의 시로 자연스럽게 느끼게 해주는 짐 자무시 감독의 고도의 연출력 덕분일 것이다.
사실 이창동의 <시>를 뒤늦게 찾아본 이유는 <패터슨>을 본 이후 다른 영화는 영화 속에서 시를 어떻게 결합시켜 내는지를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