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가르 파라디
[아주 고집스런 공간]
"나는 이 지구의 인류와 다양한 땅, 그리고 문화와 신앙 사이의 유사점이 차이점보다 훨씬 크다고 믿는다. 오늘날 세계 여러 국가들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많은 적개심의 근본 원인은 과거 행해진 상호간 굴복의 역사에서 찾아야만 한다고 믿는다. 또한 의심할 여지 없이 오늘의 굴복은 내일의 적개심의 씨앗이라고 믿는다. 한 국가를 굴복시켜 다른 국가의 안보를 지키는 것은 역사의 새로운 현상이 아니며 그것은 항상 미래의 분열과 적대감의 토대를 마련한다고 믿는다."
트럼프의 반이슬람 정책에 항의하며 이러한 성명서를 발표하고 아카데미시상식에 불참을 선언한 이란 감독 파라디의 <세일즈맨>. 영화는 위 성명서와는 달리 통상적인 의미의 정치적인 메시지는 없다. 전혀 이란적이지도 않다. '영화 속의 연극'으로 평행선을 그리며 엮여나가는 아서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 만큼이나 가슴을 답답하게 조여온다.
주목하게 되는 것은 아주 지독스러운 공간의 제약 내지는 공간의 제거이다. 단 한번도 카메라가 도시의 전경이나 풍광을 잡지 않는다. 인물이 등장하지 않는 장면은 거의 없다. 아파트가 나오지만 아파트 내부만 나오고, 학교가 나오지만 학교 내부만 나오고, 극장이 나오지만 극장 내부만 나오고, 길거리가 나오지만 거리의 전경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단 한번도 건물의 전경을 카메라에 담지 않는다. 이 고집스러운 공간의 설정이 관객이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이 영화의 주제를 무의식적으로 전달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