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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로 Jan 19. 2022

<퍼스트 카우>(2019)

- 인간의 마지막 거처, 우정

누군가를 추념한다면 가장 좋은 방법은 그의 해골을 나의 책상 위에 올려놓는 것일 터이다. 얼마나 솔직하고, 직접적이고, 또 압도적이겠는가? 아마도 내가 나를 추념할 기회가 있다면 나는 나의 해골을 내 책상 위에 올려놓을 것이다.


위 말은 사실 영화 <퍼스트 카우>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저 첫 장면에서 연상된 잡념에 불과하다. 켈리 라이카트 감독은 일찍이 거장의 반열에 올랐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작년 <퍼스트 카우>를 통해서 제대로 소개되었다. 그러니 우리는 <어떤 여자들>, <어둠 속에서>, <웬디와 루시>, <올드 조이>... 이렇게 거슬러 올라갈 수밖에 없다.


무엇인가 대단하고 화려한 영상이나 드라마틱한 스토리를 기대한다면 아예 손대지 않는 것이 좋다. 그녀는 조용히 삶을 관조하고 우리는 그에 동참할 뿐이다. 카메라는 스토리텔링상 쓸데없어 보이는 잡다한 것들에 지속적으로 곁눈질을 한다. 마치 우리 자신이 그러하듯이 말이다.


그녀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서 가냘픈 희망을 던져 놓는다. 우정은 인간의 마지막 안식처이다. 거기에는 특별한 호르몬 분비가 필요한 것도 아니고, 끓어오르는 욕망이나 감정의 질곡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인간이 거기 있듯이 우정도 그냥 있는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의 조건이 필요할 터인데 그것은 아마도 욕망이 삶을 지배하지 말아야 할 것이며, 언제든 떠나보낼 수도 있는 마음, 그것이다. 즉 움켜쥐려는 소유욕이 아니란 말이다. 이는 <어떤 여자들>에서 더욱 선명하게 뇌리에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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