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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로 Feb 23. 2022

<맥베스> 풍년

IMDB에서 '맥베스'를 검색하면 TV영화까지 대략 150편 이상이 뜬다. 유의미한 작품만 추려도 수십 편에 이른다. 그렇다 하더라도 2021년 조엘 코엔의 <맥베스의 비극>은 2015년 저스틴 커젤의 <맥베스>와, 2016년 윌리엄 올드로이드의 <레이디 맥베스>와 함께 근년의 갑작스러운 '맥베스' 풍년이라 말할 수 있으리라. 그동안 수십 편의 영화를 늘 함께 만들어온 코엔 형제 중 조엘 코엔이 처음으로 혼자 만들었다는 면에서도 <맥베스의 비극>은 주목이 된다. 저스틴 커젤의 <맥베스>도 의외의 수작으로 평가를 받았고, 맥베스를 변주한 니콜라이 레스코프의 1865년 소설 <Lady Macbeth of the Mtsensk District>를 영화화한 올드로이드의 <레이디 맥베스> 또한 수작으로 평가받는다.


이 세 작품을 한꺼번에 보고 나니 맥베스의 일본 번안판인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1957년 작품 <거미의 성>도 다시 보게 되었고,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도 다시 읽게 되었다. 이어 맥베스의 또 다른 주요 작품인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맥베스>(1971)와 오손 웰스의 <맥베스>(1948), 그리고 아마도 구하기는 거의 불가능할 것 같은 벨라 타르 감독의 TV영화 <맥베스>(1982)까지도 욕심이 간다.


조엘 코엔의 <맥베스의 비극>(2021)
저스틴 커젤의 <맥베스>(2015)
윌리엄 올드로이드의 <레이디 맥베스>(2016)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거미의 성>(1957)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맥베스>(1971)
오손 웰스의 <맥베스>(1948)
벨라 타르 감독의 TV영화 <맥베스>(1982)

맥베스의 주제를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은 대사로 정리될 것이다.

순전한 관념은 불확실한 희망이나
확실한 결말은 창칼이 결정하오.

이 대사가 출발점을 이룰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다음의 대사로 발전한다.

악으로 시작한 것은 더 큰 악으로 강해지오.

그리고 그 결말은 다음과 같은 유명한 대사로 달려간다.

내일과 내일과 내일이 매일처럼
기록된 시간의 마지막 순간까지
답답한 걸음으로 기어오누나.
우리의 수많은 어제들은
바보들을 티끌 같은 죽음의 길로 데리고 갔다.
꺼져라. 꺼져라. 짧은 촛불아.
인생은 그림자놀이.
한동안 무대에서 우쭐대고 안달하다
다시는 소식 없는 불쌍한 광대.
소음과 광란이 가득하고
아무런 뜻없는 바보 이야기.


맥베스 역을 연기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용맹하고 충성심 있는 맥베스에서, 유혹에 달뜨는 맥베스로, 양심의 소리에 우물쭈물하는 맥베스에서, 아내의 혀에 쉬 넘어가는 맥베스로, 손에 피를 묻혀 광포해져 가면서도, 스스로 악을 감당하지 못해 정신적 혼란을 겪으며 끝내는 운명의 노리갯감으로 전락하는 것까지. 수많은 얼굴을 가진 맥베스를 연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보지는 못했지만 아마도 오손 웰스가 가장 그 역할을 잘 소화했으리라 생각된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거미의 성>에서 맥베스에 해당하는 역을 맡은 미후네 도시로도 그에 버금가는 연기력을 보여주며 오랫동안 깊은 인상을 남기지만 이 영화는 워낙 전체적으로 과장된 표현을 하기 때문에 주인공과 '나'의 연결고리가 끊겨 있다.


코엔 감독의 <맥베스>에서 의외의 캐스팅인 덴젤 워싱턴과 더 의외의 캐스팅인 맥베스 부인 역의 프란시스 맥도맨드는 워낙 탄탄한 연기력인지라 비교적 잘 소화했지만 압도적이지는 못했다. 의외의 캐스팅이라면 저스틴 커젤 감독의 마이클 패스벤더(맥베스), 마리옹 꼬띠아르(맥베스 부인)가 더할지도 모른다. 마이클 패스벤더는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된' 맥베스를 연기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커젤 감독의 <맥베스>에 후한 점수를 주고 싶은 것은 '스코틀랜드'라는 지리적, 역사적 현장감을 가장 잘 살렸기 때문이다. 스코틀랜드의 황량하고 광활한 평원이 마이클 패스벤더가 연기한 맥베스의 '어색한 일관성'을 입체적으로 각지게 만들어준다. 코엔 감독의 <맥베스>는 시공간을 완전히 사장시켜버린 작품이다. 그렇기에 더욱 흑백톤으로 주제 의식만을 강렬하게 돌출시켜준다고 하겠다.


윌리엄 올드로이드의 <레이디 맥베스>는 기대했던 것만큼은 아니었다. 스토리도 시대와 남녀가 바뀌고 권력욕을 성욕으로 바꾼 것 이외에 뭔가 강렬한 임팩트는 없었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 <맥베스>를 일본 역사에 결합시킨 <거미의 성>이 워낙 탁월한 인상을 남겼기 때문인지 웬만한 번안은 좀 싱거워보이는 듯하다.


코엔 감독의 <맥베스>에서 재미있는 부분은 셰익스피어의 원작 희곡에서 존재감이 크지 않은 무난한 조연급인 '로스'라는 인물을 부각시킨 점이다. 셰익스피어의 원작에서 맥베스가 뱅코를 암살할 때 처음에 2명을 보냈다가 아무런 설명이 없이 다른 1명이 합세를 한다. 이것은 아마도 연극 무대에서 이들이 암살자임으로 관객에게 알리기 위한 대사를 넣으려고 고안한 것인듯하다. 그런데 코엔은 이 세 번째 암살자를 '로스'로 설정을 하고 이 로스가 끝내 마녀들의 예언을 이루기 위해 뱅코의 아들을 데리고 사라지는 매우 인상적인 까마귀 떼 엔딩 장면을 보여준다.

조엘 코엔의 <맥베스의 비극>(2021) 엔딩 장면

사실 셰익스피어의 원작에서는 마녀들의 예언에 따라서 뱅코의 후손들이 왕이 되는지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고 끝을 맺는다. 셰익스피어가 맥베스의 소재로 삼은 실제 스코틀랜드의 역사에서는 뱅코라고 부를 수 있는 인물의 아들이 왕위를 계승하여 셰익스피어 당대의 엘리자베스 여왕까지 이어진다. 당대의 관객에게는 이것이 너무나 당연한 결과였기 때문에 굳이 이 이야기를 덧붙이지 않은 것일까? 아니면 셰익스피어는 마녀들의 예언의 실현 여부가 중심 관심사가 아니라 악을 더 큰 악으로 힘을 키우고 마침내는 그 악의 힘에 스스로 무너지는 인간의 모습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일까? 어찌 되었든 셰익스피어가 별 이유 없이 뒤늦게 추가시킨 제3의 뱅코 암살자를 로스로 설정한 것과 그의 역할로 영화를 마무리한 것은 셰익스피어의 '맥거핀 효과'를 코엔이 되살린 것은 아닌지 살짝 미소를 머금게 만든다.


다시 한번 상기한다.

악으로 시작한 것은 더 큰 악으로 강해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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