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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로 Mar 03. 2022

여섯 편의 맥베스

IMDB에서 '맥베스'를 검색하면 대략 150편이 나온다. 그중 주목할 만한 작품을 추리고 추려 6편의 맥베스를 보았다. 벨라 타르 감독의 TV영화 <Macbeth>(1982)는 구하기 힘든 필름인데 지인의 도움으로 볼 수가 있었다.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벨라 타르 감독의 <Macbeth>를 본 사람은 몇 명 안될 것이다. 맥베스의 주제는 단순하다. 권력에 대한 욕망, 그로 인해 저질러진 악은 더욱 큰 악으로 끊임없이 증폭되고, 그 악의 힘에 짓눌려 인간 스스로 무너져 내리게 되는 이야기다. 여기에 운명과 선택이라는 인간의 삶에 늘 가로놓여진 이질적인 해석이 횡으로 스토리를 가로지른다. 만약 맥베스의 제목을 <맥베스의 운명>과 <맥베스의 선택> 둘 중 하나로 정해야 한다면 어떤 것이 더 적당할지는 온전히 관람자의 몫이다.



1. 1948년 오손 웰스 감독의 <맥베드>

2. 1957년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거미의 성>

3. 1971년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맥베드>

4. 1982년 벨라 타르 감독의 <Macbeth>

5. 2015년 저스틴 커젤 감독의 <맥베스>

6. 2021년 조엘 코엔 감독의 <맥베스의 비극>


<맥베스>의 내용 중 가장 극적인 장면이라면 1. 처음 마녀와의 조우, 2. 덩컨 왕을 죽이려고 결심(혹은 주저)하는 장면, 3. 덩컨 왕을 죽인 후의 흥분된 장면, 4. 맥베스의 부인이 냉정하게 뒤처리를 하는 장면, 5. 자신이 죽인 뱅코우의 유령이 나타난 것을 본 맥베스, 6. 맥베스의 부인이 미처서 죽는 장면 등등이다.





우선 6편의 <맥베스>가 마녀를 어떻게 영상화했는지를 비교해 본다.

오손 웰스 감독의 <맥베드>에 등장하는 마녀
오손 웰스 감독의 <맥베드>에 등장하는 마녀

오손 웰스의 <맥베드>는 연극 무대에서 사용되어 온 마녀를 비슷하게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오손 웰스의 <맥베드>는 시종일관 연극무대의 느낌을 주는 공간에서 이루어진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거미의 성>에 등장하는 마녀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거미의 성>에 등장하는 마녀는 아마도 일본 문화에서 전통적으로 묘사되는 마녀의 이미지를 가져온 것이라 생각된다. 다른 맥베스 영화의 마녀들에 비해서 비교적 수동적이다. 마녀의 역할이 수동적이라는 것은 맥베스가 '운명'에 이끌린 것이라기보다 스스로 악을 '선택'했다는 뜻을 강화시킨다.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맥베드>에 등장하는 마녀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맥베드>에 등장하는 마녀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맥베드>에 등장하는 마녀의 이미지는 매우 강렬하다. 여기서는 서양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이야기 속의 마녀집회와 마녀가 행한다는 여러 가지 마법이 등장한다. 비주얼적으로 강렬하지만 단지 그것뿐이다. 영화의 다른 부분과 제대로 화합되지 않는다.


벨라 타르 감독의 <Macbeth>의 마녀
벨라 타르 감독의 <Macbeth>의 마녀

벨라 타르 감독의 맥베스에 등장하는 마녀(witch)는 아무런 초자연적인 요소가 덧붙여지지 않은 평범한 사람이다. 그것도 다른 맥베스 영화와 달리 남성이다. 물론 대사는 셰익스피어의 원작 대사와 같이 초자연적인 내용을 담고 있지만 생김새와 의상 등은 너무나 평범하여 그것 자체가 미묘한 충격을 준다.


저스틴 커젤 감독의 <맥베스>에 등장하는 마녀
저스틴 커젤 감독의 <맥베스>에 등장하는 마녀

저스틴 커젤 감독의 <맥베스>에 등장하는 마녀의 모습은 벨라 타르의 마녀를 제외하고는 다른 영화에 비해서 가장 인간스럽다. 이마의 표식 이외에는 특별한 것이 없다. 그들은 인간을 지배하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피하려는, 즉 욕망 덩어리 인간으로부터 도피하려는 이미지를 풍긴다. 어딘지 모르게 인간 욕망의 피해자인 듯이 묘사된다.


조엘 코엔 감독의 <맥베스의 비극>에 등장하는 마녀

조엘 코엔 감독의 <맥베스의 비극>에 등장하는 마녀는 기괴한 몸짓으로 깊은 인상을 남기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오손 웰스의 마녀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맥베스의 비극>은 초자연적인 현상을 인간의 착각으로 분명하게 보여주기 때문에 마녀의 역할이 다소 부자연스럽게도 느껴진다.





2. 덩컨 왕을 죽이려고 결심(혹은 주저)하는 장면, 3. 덩컨 왕을 죽인 후의 흥분된 장면, 4. 맥베스의 부인이 냉정하게 뒤처리를 하는 장면은 하나의 연결된 시퀀스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시퀀스에서 각 영화의 두 남녀 주인공의 연기력이 가장 도드라지게 나타난다.


오손 웰스 감독의 <맥베드>에서 덩컨 왕을 죽인 후 자신의 손에 묻은 피를 보는 장면
오손 웰스 감독의 <맥베드>에서 덩컨 왕을 죽인 후 맥베스 부인이 뒤처리를 위해 칼을 살인 현장으로 가져가는 장면

오손 웰스의 <맥베드>는 꽉 짜인 공간과 긴밀하게 밀착된 시간 속에서 숨 막힐 듯이 스토리가 전개된다. 특히 로앵글과 하이앵글을 지속적인 사용함으로써 공포와 긴장감을 강화시킨다. 물론 오손 웰스의 표정 연기는 압도적이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거미의 성>에서 덩컨 왕을 죽이러 가는 '맥베스'(영화에서는 일본 이름으로 '와시즈')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거미의 성>에서 덩컨 왕을 죽인 후 흥분 속의 '맥베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거미의 성>에서 덩컨 왕을 죽인 후 '맥베스' 부인이 뒤처리를 하는 장면

구로자와 아키라의 <거미의 성>에서 덩컨 왕을 죽이기 전후의 장면은 가장 압권이다. 특히 '맥베스 부인'의 역할이 다른 영화에 비해 강렬하게 묘사된다. 이리저리 마루를 종종걸음으로 오가는 모습은 너무나 야릇하여 뒤에 로만 폴란스키 감독이 비슷하게 흉내를 내었다.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맥베드>에서 덩컨 왕을 살해한 직후의 맥베스와 맥베스 부인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맥베드>에서 덩컨 왕을 살해한 맥베스 부인이 뒤처리를 하려고 피 묻은 칼을 가져가는 장면

로만 폴란스키가 <맥베드>를 만든 때는 미국의 희대의 살인마 찰스 맨슨과 그의 추종자가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집에 쳐들어가 폴란스키의 아내와 그곳에 온 손님들을 처참하게 살해한 사건이 일어난 지 1년이 지났을 때이다. 이 영화에는 폴란스키의 심경이 녹아져 있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요즘의 영화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1971년 영화 치고는 매우 잔인한 장면들이 많이 삽입되어 있다. 가장 적나라한 마녀들에 대한 묘사도 찰스 맨슨 일당에 대한 폴란스키의 감정이 개입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불행히도 로만 폴란스키의 <맥베드>는 폴란스키 감독의 영화 중 가장 저급한 영화다. 1966년 영화 <막다른 골목>으로 베를린영화제 황금곰상을 수상하여 일약 스타 감독이 되었고, 1968년에는 영화 역사상 가장 뛰어난 공포 스릴러 영화로 기억되는 <악마의 씨>를 만들었고, 1974년에는 역시 영화 역사상 최고의 범죄 스릴러로 언급되는 <차이나타운>을 만든 감독이 그 중간인 1971년에 셰익스피어에 뛰어들어 야심 차게 만들었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태작이다. 아마도 폴란스키 스스로 이 영화는 자신의 필모그래피에서 지우고 싶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결과를 낳은 가장 큰 이유는 남녀 주인공의 캐스팅이다. 당시 무명 배우였고 그 후에도 그저 그런 배우에 불과했던 존 핀치와 프란시스 애니스를 맥베스와 맥베스의 인 역으로 캐스팅하여 영화를 망쳐먹은 것은 영화의 도입 크레디트에 두 번째로 등장하는 <플레이보이>의 창업자 휴 헤프너(영화의 기획 및 제작자)의 입김 때문이라고 상상할 수밖에 없다.


벨라 타르 감독의 <Macbeth>에서 왕을 살해하기 직전의 맥베스
벨라 타르 감독의 <Macbeth>에서 왕을 살해한 직후의 맥베스와 백메스 부인

벨라 타르 감독의 <Macbeth>는 그의 대표작 <사탄탱고>(1994)와 <토리노의 말>(2011)에서 보여주는 극단적인 롱테이크를 더욱 극단으로 끌어올려 영화 한편을 사실상 한 컷으로 만들었다. 영화의 인트로에 해당되는 부분, 즉 맥베스가 처음 마녀와 조우하는 장면을 프롤로그로 처리하고 영화의 타이틀을 보여준 다음부터 끝까지는 하나의 컷으로 되어 있다. <Macbeth>를 만든 1982년이 아직 벨라 타르가 국제적인 명성을 얻기 이전이란 점을 유의한다면 그의 이러한 실험은 초기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의 후기 영화가 그러하듯이 영화의 어느 부분에 클라이막스와 같은 고도의 긴장감을 높여주는 부분이 없는 것은 <Macbeth>에서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왕을 살해하는 장면에서도 맥베스와 맥베스 부인의 클로즈업된 대화 장면만으로 이끌어간다. 그렇기에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하이앵글 롱숏을 사용한 왕 살해 장면이 더욱 인상적으로 남게 된다. 영화는 시종일반 클로즈업을 사용하여 등장인물들의 심리적 상태를 강조한다.(영화 한 편에 클로즈업을 극단적으로 많이 사용한 영화로는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압델라티프 케시시 감독의 <가장 따뜻한 색, 블루>(2013) 정도를 떠올릴 수 있을 뿐이다.) 이러한 클로드업의 연속은 영화 전체를 하나의 컷으로 만들면서도 그 공간적인 연결성을 자연스럽게 유지시키는데 일조한다. 오래된 성의 내부를 주요 무대로 삼으면서 제법 여러 명이 등장하는 잔치 장면과 마지막에 여러 필의 말이 등장하는 전투 장면까지를 모두 한 컷에 담기 위해 얼마나 유려하고 철두철미한 카메라 워킹이 필요했을 것인가를 상상하는 것만도 이 영화를 감상하는 재미의 한 포인트가 된다.


저스틴 커젤 감독의 <맥베스>에서 덩컨 왕을 살해한 직후의 맥베스
저스틴 커젤 감독의 <맥베스>에서 덩컨 왕을 살해한 직후 뒤처리를 위해 칼을 받아 든 맥베스 부인

호주 출신의 아직은 신인 감독이랄 수 있던 저스틴 커젤이 <맥베스>에 손을 댔을 때 큰 기대를 했던 사람은 적었을 것이다. 게다가 맥베스 역에 <프로메테우스>(2012)에서의 인조인간 이미지가 강하게 남아 있는 마이클 패스벤더라니. 하지만 그는 꽤나 깊은 인상을 남기는 맥베스를 연기했고, 마리옹 꼬띠아르(맥베스 부인 역)도 특유의 신비스러운 장점을 살려내지는 못했지만 그런대로 잘 조화를 이루었다.


조엘 코엔 감독의 <맥베스의 비극>에서 덩컨 왕을 살해한 직후의 맥베스
조엘 코엔 감독의 <맥베스의 비극>에서 덩컨 왕 살해의 뒤처리를 위해 칼을 쥐고 살인 현장으로 가는 맥베스 부인

영원한 듀엣으로만 생각했던 코엔 형제. 그런데 마침내 조엘 코엔이 홀로 섰다. 그래도 여전히 코엔 형제의 향기는 영화 전편이 흐르다. 무색 무취 무미 건조의 배경에 덩그러니 강렬한 빛의 대비를 받으며 인물들만이 도드라지는 이 코엔판 맥베스는 어떤 의미에서는 오손 웰스적으로 전통적이기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재기 발랄한 코엔적 변주이기도 하다. 오버할 만한 장면에서 결코 오버하지 않으면서 묵직함을 안겨주는 덴젤 워싱턴과 프란시스 맥도맨드의 연기가 영화의 안정감을 더해준다.





5. 자신이 죽인 뱅코우의 유령이 나타난 것을 본 맥베스, 6. 맥베스의 부인이 미처서 죽는 장면은 비극의 끝자락이다. 운명이라면 비극이고 선택이라면 자멸이다. 광포한 살인마는 악의 힘에 스스로를 견뎌내지 못하고 안으로 침몰한다. 결말을 향해 가는 두 주인공의 붕괴되는 모습에는 한탄도 동정도 없고 통쾌한 복수도 없다. 인간의 삶은 여전히 욕망과 악귀와 좌절과 자기 붕괴가 다시 반복될 것이기 때문이다.


오손 웰스 감독의 <맥베드>에서 자신이 죽인 뱅코우의 유령을 보는 맥베스
오손 웰스 감독의 <맥베드>에서 악의 흔적을 지우지 못해 미쳐서 죽는 맥베스 부인

오손 웰스의 <맥베드>는 사실 여러 면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무대를 연극 무대처럼 한정 지운 것, 그래서 지극히 인위적인 공간-시간의 결합, 그리고 들고 있던 촛불이 켜졌다가 꺼졌다가 다시 켜지는 명백한 편집상의 실수 등. 특히 셰익스피어의 희곡에는 등장하지 않는 기독교 사제가 비교적 중요한 인물로 등장하고 곳곳에서 기독교적인 요소를 가미시킨 것은 무슨 연유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영 맘에 들지 않는다. 그리고 아마도 영화 역사상 로앵글과 하이앵글을 가장 남용한 영화로 기록될 만큼 인위적인 감정 부여도 흠이다. 그럼에도 오손 웰스의 그 광포한 표정, 그 공포에 질린 표정, 그 미쳐 날뛰지만 저승 밑바닥을 기는 것 같은 표정은 어찌 잊을 수 있으랴.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거미의 성>에서 자신이 죽인 '뱅코우(영화에서는 미키)'의 유령을 보는 '맥베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거미의 성>에서 자신의 손에 피가 계속 남아있다는 환상에 미친 '맥베스 부인'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은 한마디로 명불허전이다. 물론 대표작인 <7인의 사무라이>나 <라쇼몽>만큼 언급되지는 않지만 <거미의 성>은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을 번안한 1985년 영화 <란>과 더불어 셰익스피어 작품을 어떻게 전혀 다른 문화와 역사의 공간으로 가져올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전범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의 역사 그 자체를 그대로 살리면서 여전히 셰익스피어가 단호하게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만든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일까? 도입부에서 제법 길게 숲을 헤매는 두 장군의 모습과 '맥베스'가 자신의 부하들로부터 무수한 활을 온몸에 맞으며 죽어가는 모습은 아키라 감독이 셰익스피어에 덧붙인 영화적 변주의 최대한이라고 할 수 있겠다.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맥베드>에서 맥베스가 자신이 죽인 뱅코우의 유령을 보는 장면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맥베드>에서 맥베스 부인이 미쳐 몽유병에 걸린 장면

셰익스피어 희곡을 역사적 사실성으로 끌어들였다는 측면에서는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맥베드>에 조금은 후한 점수를 줄 수도 있다. 무대, 공간, 의상, 시간의 흐름 등에서 비교적 역사적 사실성을 최대한 살리려고 한 작품이다. 그런데 <플레이보이>의 휴 헤프너를 위한 설정인지 미친 맥베스 부인은 나체로 등장한다. 뭔가 눈요기를 제공하려고 애쓴 흔적은 이것 말고도 영화의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다. 몇 초간의 마녀집회를 찍으려고 많은 공력을 들인 것도 그중 하나이다. 하지만 어쩌리. 중간에 영화보기를 그만두려는 충동을 억지로 참은 것은 순전히 이 글을 쓰기 위한 것일 뿐, 아니었으면 중간에 곰플레이를 닫아버렸을 것이다.


벨라 타르 감독의  <Macbeth>에서 자신이 죽인 뱅코우의 유령을 보는 장면
벨라 타르 감독의 <Macbeth>에서 맥베스가 광적인 살인마가 되어 갈 때의 장면
벨라 타르 감독의 <Macbeth>에서 맥베스 부인이 몽유병에 걸려 미쳐가는 장면

벨라 타르 감독의 <Macbeth>에서는 마녀가 보통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듯이 뱅코우의 유령은 실제로 그 모습을 등장시키지 않는다. 단지 맥베스가 무엇인가를 보고 놀라고 기절하는 모습만을 담고 있을 뿐이다. 벨라 타르는 의상, 장식, 무대, 배경 등을 철저히 단순화시키고 초자연적 요소는 아예 배제시켰다. 단지 인간의 심리 상태로만 표현한다. 간혹 조명을 사용하여 맥베스가 공포에 사로잡힌 미친 살인마로 변모한 것을 표현해줄 뿐이다. 벨라 타르의 <Macbeth>를 수작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단 한 컷으로 스토리 전체를 시간적-공간적으로 압축하여 담아낸 것에는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가 없다.


저스틴 커젤 감독의 <맥베스>에서 자신이 죽인 뱅코우의 유령을 보고 날뛰는 맥베스
저스틴 커젤 감독의 <맥베스>에서 자기 자신의 악에 스스로 무너져 미쳐버린 맥베스 부인

저스틴 커젤 감독의 <맥베스> 역시 역사적 사실성을 충실히 살리려고 하였다. 이 말은 연극적인 요소를 가능한 지워버리려고 했다는 뜻이며 셰익스피어 특유의 장황한 연극 대사를 가능한 평이한 대사로 바꾸려고 노력했다는 것을 뜻한다. 스코틀랜드의 황량하고 광활한 풍광, 10세기 즈음의 허술하고 푸석푸석한 군대와 왕의 면모가 또한 그러하다. 적절한 정도의 현대적인 카메라 테크닉과 무엇보다 기대 이상으로 탄탄한 연출력이 영화의 완성도를 더해준다. 마이클 패스벤더는 영화 전편에 걸쳐서 '일관된' 맥베스를 보여준다. 영웅-욕망-갈등-결단-더욱 광포해진 악의 화신-내부로 무너지는 나약함-공포-자멸. 이러한 흐름 속에서 그의 표정은 거의 변함이 없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패스벤더의 연기를 폄하하고 싶지는 않은 것은 아마도 영화 전체의 짜임새 때문일 듯하다.


조엘 코엔 감독의 <맥베스의 비극>에서 자신이 죽인 뱅코우의 유령을 본 맥베스
조엘 코엔 감독의 <맥베스의 비극>에서 스스로 악의 힘에 눌려 미쳐버린 맥베스 부인

조엘 코엔 감독의 <맥베스의 비극>은 가장 비역사적, 비사실적 공간과 시간을 가지고 있다. 대부분의 주요 인물이 흑인으로 되어 있는 것 자체가 셰익스피어의 희곡과는 아주 동떨어진 것이지만 그런 설정이 굳이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영화를 둘러싼 분위기 체가 이미 그 이상의 변주도 넉넉히 허용할 만큼의 비사실적 바탕을 깔아주기 때문이다. 건물에는 아무 장식이 없고 그저 창문 사이로 날카롭게 쏟아지는 빛이 장식의 전부이다. 그럼에도 대사는 셰익스피어의 장식적인 대사를 가능한 자연스러운 대사로 바꾸려고 노력했다. 코엔 감독의 <맥베스>에서 재미있는 부분은 셰익스피어의 원작 희곡에서 존재감이 크지 않은 무난한 조연급인 '로스'라는 인물을 부각한 점이다. 셰익스피어의 원작에서 맥베스가 뱅코우를 암살할 때 처음에 2명을 보냈다가 아무런 설명이 없이 다른 1명이 합세를 한다. 이것은 아마도 연극 무대에서 이들이 암살자임으로 관객에게 알리기 위한 대사를 넣으려고 고안한 것인듯하다. 그런데 코엔은 이 세 번째 암살자를 '로스'로 설정을 하고 이 로스가 끝내 마녀들의 예언을 이루기 위해 뱅코우의 아들을 데리고 사라지는 매우 인상적인 까마귀 떼 엔딩 장면을 보여준다. 맥베스가 한 예외적인 비극적 운명의 주인공이 아니라 역사 속에 다분히 널려있고 여전히 지속되는 욕망과 악의 순환 속에 놓여 있음을 보여주려는 코엔의 재치라고 하겠다.




오손 웰스 감독의 <맥베드>(1948) (평점 7/10)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거미의 성>(1957) (평점 8/10)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맥베드>(1971) (평점 3/10)

벨라 타르 감독의 <Macbeth>(1982) (평점 6/10)

저스틴 커젤 감독의 <맥베스>(2015) (평점 7/10)

조엘 코엔 감독의 <맥베스의 비극>(2021) (평점 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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