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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로 Apr 14. 2022

종말의 4가지 유형

<클로버필드 10번지> <테이크 쉘터> <멜랑콜리아> <토리노의 말>  

집착.

불안.

우울.

허무.


2011년에 전혀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3편의 영화가 기묘한 공통점을 가지고 동시에 등장했다. 미국의 새롭게 주목받은 감독 제프 니콜스의 <테이크 쉘터>(Take Shelter), 예술 영화계의 악동 라스 폰 트리에의 <멜랑콜리아>(Melancholia), 헝가리의 예술 감독 벨라 타르의 <토리노의 말>(The Turin Horse)이 그것이다. 여기에 2008년에 개봉한 맷 리브스 감독의 문제작 <클로버필드>를 영화 역사상 유례가 없는 방식으로 시리즈물로 계승한 2016년 댄 트라첸버그 감독의 <클로버필드 10번지>(10 Cloverfield Lane)를 더해 4편의 영화를 연결하면 집착-불안-우울-허무라는 4가지 종말의 심리적 전조가 완성된다.


이들 영화들의 성격, 소재, 주제, 형식은 모두 전혀 다르다. 오직 공통점은 영화의 마지막 한 컷, 또는 한 씬에 의해서 갑작스럽고 충격적으로 또는 놀라운 반전으로 '종말'에 이른다는 점이다. 그 종말의 내용은 다양하다. 이들 영화 중 가장 대중적인 영화인 <클로버필드 10번지>의 경우는 외계 생명체의 침입이고, 그보다는 덜 대중적인 <테이크 쉘터>의 경우에는 파멸적인 기상현상(환경문제와 결부시킨 것은 아니다)이고, 주로 마니아들이 즐기는 폰 트리에 감독의 <멜랑콜리아>에서는 소행성과의 충돌이며, 예술영화 그 자체를 추구하는 벨라 타르 감독의 <토리노의 말>의 경우는 철학적 사유에 가까운 '멈춤'이다.


마지막 한 컷, 또는 한 씬에 의해서 갑작스럽고 충격적으로 또는 놀라운 반전으로 '종말'에 이른다는 이색적인 공통점을 가진, 그러나 매우 이질적인 영화가 2011년에 동시에 등장한 일은 아마도 우연이겠지만 흥미를 자아내는 것만은 틀림없다.


댄 트라첸버그 감독의 <클로버필드 10번지>(2016)의 한 장면

그런데 이들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이러한 '종말'을 초래하는 동기, 또는 그러한 종말을 맞이하게 되는 인간들의 내면적 상태에 있다. <클로버필드 10번지>에서는 마지막 장면에 이르기 전에는 지배와 종속 관계, 지배자의 비이성적인 집착만이 도드라질 뿐이다. <테이크 쉘터>에서는 마지막 장면에 마주치기 전까지는 주인공의 정신분열증과 그것을 극복하려는 한 노동자 가정의 고단한 삶 이야기로 끝나는 듯하다. 하지만 마지막 몇 개의 컷에 의해 종말의 전조를 알리는 '불안'이라는 심리적 상태가 인간의 본질적인 존재 양태임을 보여준다.


제프 니콜스의 <테이크 쉘터>(2011)의 마지막 장면

<멜랑콜리아>에서는 보다 개념적이 된다. 영화 내내 관객을 고슴도치처럼 웅크리게 만드는 주인공의 '우울증'이라는 정신 질환은 마지막 장면에 의해 마치 전 인류적 또는 전 우주적인 우울증으로 증폭된다. 이 영화에서 우울증 즉 멜랑콜리아는 불안도 공포도 아니며 허무하고도 다르다. 냉정함, 너무도 냉정하여 아무런 감각도 감정도 가질 수 없는 상태, 즉 존재의 이유를 상실한 상태, 그렇게에 존재의 상실에 아무런 감흥도 가지지 못하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라스 폰 트리에의 <멜랑콜리아>(2011)의 한 장면

영화의 러닝타임 146분 전체를 오직 31개의 롱테이크로 (마치 창세기를 연상시키듯) 6일 동안의 '상태'를 담은 <토리노의 말>은 보다 철학적이라고 말할 수가 있다. 여기서 상태라고 표현한 것은 이 영화에서는 굳이 스토리라고 말할 만한 내용이 없기 때문이다. 엄청난 바람이 항상 몰아치는 고립된 한 농가에 사는 부녀의 서서히 멈추어가는 삶에는 (이 영화의 모티브인 니체의 정신 질환과 죽음처럼) 허무와 절망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이 영화는 허무 그 자체이며, 지적이며 철학적인 사유의 절망 그 자체이다. 벨라 타르는 이 영화를 마지막으로 은퇴를 선언했는데 그의 은퇴 이유가 아마도 이 영화 자체일 것이다.


벨라 타르 감독의 <토리노의 말>(2011)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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