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버필드 10번지> <테이크 쉘터> <멜랑콜리아> <토리노의 말>
집착.
불안.
우울.
허무.
2011년에 전혀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3편의 영화가 기묘한 공통점을 가지고 동시에 등장했다. 미국의 새롭게 주목받은 감독 제프 니콜스의 <테이크 쉘터>(Take Shelter), 예술 영화계의 악동 라스 폰 트리에의 <멜랑콜리아>(Melancholia), 헝가리의 예술 감독 벨라 타르의 <토리노의 말>(The Turin Horse)이 그것이다. 여기에 2008년에 개봉한 맷 리브스 감독의 문제작 <클로버필드>를 영화 역사상 유례가 없는 방식으로 시리즈물로 계승한 2016년 댄 트라첸버그 감독의 <클로버필드 10번지>(10 Cloverfield Lane)를 더해 4편의 영화를 연결하면 집착-불안-우울-허무라는 4가지 종말의 심리적 전조가 완성된다.
이들 영화들의 성격, 소재, 주제, 형식은 모두 전혀 다르다. 오직 공통점은 영화의 마지막 한 컷, 또는 한 씬에 의해서 갑작스럽고 충격적으로 또는 놀라운 반전으로 '종말'에 이른다는 점이다. 그 종말의 내용은 다양하다. 이들 영화 중 가장 대중적인 영화인 <클로버필드 10번지>의 경우는 외계 생명체의 침입이고, 그보다는 덜 대중적인 <테이크 쉘터>의 경우에는 파멸적인 기상현상(환경문제와 결부시킨 것은 아니다)이고, 주로 마니아들이 즐기는 폰 트리에 감독의 <멜랑콜리아>에서는 소행성과의 충돌이며, 예술영화 그 자체를 추구하는 벨라 타르 감독의 <토리노의 말>의 경우는 철학적 사유에 가까운 '멈춤'이다.
마지막 한 컷, 또는 한 씬에 의해서 갑작스럽고 충격적으로 또는 놀라운 반전으로 '종말'에 이른다는 이색적인 공통점을 가진, 그러나 매우 이질적인 영화가 2011년에 동시에 등장한 일은 아마도 우연이겠지만 흥미를 자아내는 것만은 틀림없다.
그런데 이들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이러한 '종말'을 초래하는 동기, 또는 그러한 종말을 맞이하게 되는 인간들의 내면적 상태에 있다. <클로버필드 10번지>에서는 마지막 장면에 이르기 전에는 지배와 종속 관계, 지배자의 비이성적인 집착만이 도드라질 뿐이다. <테이크 쉘터>에서는 마지막 장면에 마주치기 전까지는 주인공의 정신분열증과 그것을 극복하려는 한 노동자 가정의 고단한 삶 이야기로 끝나는 듯하다. 하지만 마지막 몇 개의 컷에 의해 종말의 전조를 알리는 '불안'이라는 심리적 상태가 인간의 본질적인 존재 양태임을 보여준다.
<멜랑콜리아>에서는 보다 개념적이 된다. 영화 내내 관객을 고슴도치처럼 웅크리게 만드는 주인공의 '우울증'이라는 정신 질환은 마지막 장면에 의해 마치 전 인류적 또는 전 우주적인 우울증으로 증폭된다. 이 영화에서 우울증 즉 멜랑콜리아는 불안도 공포도 아니며 허무하고도 다르다. 냉정함, 너무도 냉정하여 아무런 감각도 감정도 가질 수 없는 상태, 즉 존재의 이유를 상실한 상태, 그렇게에 존재의 상실에 아무런 감흥도 가지지 못하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영화의 러닝타임 146분 전체를 오직 31개의 롱테이크로 (마치 창세기를 연상시키듯) 6일 동안의 '상태'를 담은 <토리노의 말>은 보다 철학적이라고 말할 수가 있다. 여기서 상태라고 표현한 것은 이 영화에서는 굳이 스토리라고 말할 만한 내용이 없기 때문이다. 엄청난 바람이 항상 몰아치는 고립된 한 농가에 사는 부녀의 서서히 멈추어가는 삶에는 (이 영화의 모티브인 니체의 정신 질환과 죽음처럼) 허무와 절망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이 영화는 허무 그 자체이며, 지적이며 철학적인 사유의 절망 그 자체이다. 벨라 타르는 이 영화를 마지막으로 은퇴를 선언했는데 그의 은퇴 이유가 아마도 이 영화 자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