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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로 Jun 06. 2024

<일대종사>

-투자자의 입맛

왕가위 감독의 <화양연화>는 전설이 되어가고 있다. 왕가위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포스트모던 스타일리스트라고 할 것이다. 사실 대중적인 영화를 만드는 감독은 아니다. 그런데 몇몇 영화가 워낙 뛰어나다 보니까 대중성을 획득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일대종사>를 보니까 전에 봤던 영화였다. 그런데 전반부 조금 지나니까 보다가 꺼버린 영화라는 것을 알았다. 그때는 이 영화가 왕가위 감독의 영화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던 것 같다. 잔뜩 힘이 들어가서 온갖 폼을 다 부린 '빵 조각 쪼개기 무술쇼'를 보고, 그리고 배우라기보다는 인형으로 등장하는 송혜교를 보면서 아이구머니나, 하면서 꺼버린 듯하다.


그런데 전반부가 끝나고 후반부로 끌고 나가면서 전형적인 왕가위스러움이 영화를 채우고 있다. 왕가위의 영화는 관객에게 친절하지 않다. 어떤 철학적이거나 미학적인 난해함이 아니다. 스토리는 평범하지만 그것을 관객이 눈치채지 못하게 감추는 능력이 탁월하다. 그렇다고 완전히 감추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왕가위 영화는 여러 번 봐야 스토리를 제대로 따라잡을 수가 있다. 그와의 숨바꼭질은 늘 흥미를 자아낸다. 이것이 그냥 장난이 아닌 이유는 왕가위가 영화의 새로운 스타일을 개척하고 그것을 미학적으로 승화시켜 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중의 관심을 집중시킬 요소를 배치한 초반부는 그런대로 이해한다고 치더라도 역사적 흐름을 따라가는 후반부는 아무리 생각해도 투자자의 요구에 따라 상당히 잘려나간 것처럼 보인다. 


영화의 종반부에는 갑자기 익숙한 음악이 배경에 깔린다. 엔니오 모리꼬네가 작곡한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의 주요 테마이다. 왜 굳이 다른 영화에 사용되어 널리 알려진 그 음악을 사용한 것일까?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에 대한 오마주인가? 잘 모르겠다. <화양영화>에 사용된 기가 막히게 절묘한 음악을 떠올린다면 뭔가 촌스럽게 느껴진다.


영화의 중후반부까지는 무술영화치고는 이상하리만큼 클로즈업에 의존한다. 영화에서 배경은 거의 등장하지 않고 블러(Blur) 처리되어 나온다. 배경이 등장하는 것은 오로지 플롯 전환을 위한 설정화면에서 뿐이다. 그러나 후반부로 가면 배경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나는 이것이 왕가위 감독의 어떤 의도를 담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1930년대의 중국 무대를 세팅하려면 돈이 많이 들어서 그렇게 한 것인지 모르겠다.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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