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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로 Jun 16. 2024

책은 나에게 무엇을 남겼나? (1)

-학창 시절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지금 내가 윌라 오디오북으로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를 운전을 하거나 운동을 하면서 듣고 있는데, 과거에 그러니까 고등학교 때 씨름하며 읽었던 내용이 전혀 나의 기억에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어떤 분위기, 느낌만이 어렴풋이 뇌리에 스칠 뿐 내용은 도무지 아무것도 기억에 없는 것 같다. 얼마 전 마찬가지로 윌라 오디오북으로 카뮈의 <이방인>을 들을 때는 그래도 제법 기억에 남아 있던 것이 솔솔 되살아나곤 했는데 그것은 아주 특별한 경우인 듯싶다.


그래서 도대체 나의 독서 인생이 나에게 무엇을 남겼을까 궁금해져서 한번 기억을 더듬어서 정리해 보려는 것이다. 내가 종종 남들에게 말하는 것이 있는데, 나의 뇌에는 저장 용량이 가득 차거나 아니면 고장이 나서 더 이상 기억에 쌓이지도 않고 거기서 무엇을 끄집어내기도 힘들다고 말한다. 사실 나이가 들면 다 그렇겠지만 종종 너무 심하다 싶을 때도 있다. 영화를 볼 때도 거의 마지막까지 다 보고야 아차, 전에 본 영화구나, 하는 경우도 있으니 말이다.


그래도 나름 위안으로 삼는 것은 '의식'이 접근할 수 있는 기억에는 없어도 '무의식'에서는 꿈틀거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고, 비록 뇌의 저장 장치는 고장 났지만 뇌의 CPU는 내 인생의 독서를 통해 꾸준히 업그레이드되어 왔고 지금도 그것은 잘 작동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지식으로는 남아 있지 않아도 지혜로는 남아 있겠거니 하면서 위안을 삼는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


초등학교 이전 또는 초등학교 때 나는 교과서 이외에 읽은 책은 '표준전과'나 '동아전과'가 전부였던 것 같다. 우리 집에는 동화책이 없었다. 하긴 그 시절에 요즘처럼 동화책을 전집으로 갖추고 있던 집이 흔치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정말 동화책을 읽은 기억이 없다. 그래서 어떤 때는 남들이 다 아는 동화 이야기를 모르는 경우도 있다. 동화의 내용을 접한 것은 대부분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통해서 일뿐이다. 내가 만약 요즘의 아이들처럼 풍성하게 동화책을 접했다면 지금의 나는 달랐을까? 모를 일이다. 요즘엔 정말 좋은 동화책도 많이 있지만 그 시절엔 기껏해야 디즈니식으로 윤색된 동화책뿐이었을 테니 차라리 읽지 않았던 것이 낫다고 자위해 본다.


그런데 딱 한 가지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만화로 된 세계사 책이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것을 열심히 읽었고 알렉산더 대왕 이야기가 있었다는 기억이 남아 있다. 오로지 그것뿐이다. 이솝우화 정도를 본 것 같은데 그것이 초등학교 때인지는 불명확하다. 그때 나는 책 대신에 뒷산이 전부였다. 인왕산과 북한산 자락.


중학교 시절


내가 중학교에 입학하자 아버지가 책을 선물해 주었다.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이었다. 아마도 이것이 내가 독서라고 말할 수 있는 첫 번째 책이었을 것이다. 지금 만약 다시 본다면 <좁은 문>은 그래도 생생하게 기억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첫사랑처럼. 그때 아버지가 여동생에게는 <개구쟁이 나일등>을, 누나에게는 <안네의 일기>를 사 주셨다. 여동생은 <개구쟁이 나일등>을 항상 들고 있었기에 나는 지금도 종종 <개구쟁이 나일등>을 100번은 읽었다고 동생을 놀리곤 한다.


<좁은 문> 이후 앙드레 지드, 헤르만 헤세, 알베르 카뮈 등 당시 일반적으로 고전으로 알려진 소설들을 읽었다. 대부분 아주 작은 크기이며 작은 글씨의 세로 쓰기로 된 저렴한 가격의 '삼중당문고'를 통해서였다. (위 대문 사진에 있는 것이 삼중당문고이다.) 이광수로부터 시작해서 김동인, 나도향, 염상섭 등 대표적인 한국 문학 특히 단편은 거의 다 읽은 것 같다. 셰익스피어 대표작, 헤밍웨이, 존 스타인벡, 모파상, 브론테 자매 등 중학생이 읽을 만한 외국의 소설들도 대부분 그 당시에 읽은 것 같다. 학교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는 자주 광화문에 있던, 지금은 사라진 책방에 들려서 책을 만지작 거리는 것이 일이었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그 당시에 출판된 책들은 외국 서적의 경우 번역이 제대로인 경우가 많지 않았다는 점이다. 일본 책의 중역인 경우도 많았다. 또한 '고전'이라고 이야기되는 책들은 박정희 시절 문제가 없는 책들, 그러니까 지금으로 보면 조금 편협한 선택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요즘 민음사 등에서 깔끔하고 제대로 번역된 고전 책들을 읽을 수 있는 학생들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들이다.


지금도 뇌리에 인상적으로 남아 있는 책들을 꼽아보자면, 카뮈의 <이방인>과 <페스트>, 헤세의 <데미안>,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 고골리의 <외투>, 카프카의 <변신>과 <성>, 루쉰의 <아Q정전> 등이다. 물론 이러한 책들을 제대로 충분히 이해했다는 것은 아니다. 그저 기억 속에 또렷한 어떤 느낌이 지금도 남아 있다는 것이다. 딱히 고전적인 작품에 들지는 않지만 꼼꼼히 읽어서 아주 인상적으로 남아 있는 것은 켄 케이시의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인데 그 후 영화화된 것을 보고는 영화보다 원작 소설이 얼마나 풍부한가를 확인한 첫 체험이었다. (물론 밀로스 포먼 감독의 영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는 소설만큼이나 그 자체로 훌륭한 작품이어서 영화 역사에서 고전으로 남게 되었지만 말이다.)


여기에 한 가지 추가할 것이 있다. 그것은 초등학교 고학년 쯤에 아버지가 집에 사다 놓은 크고 두툼한 1권 짜리 백과사전이다. 나는 중학생 때까지 틈만 나면 이것을 끼고 살았다. 그래서 잡학다식에 능하게 되었다. 그로 인해 성인이 된 후 퀴즈 관련 일을 하게 되는 원천이 되었다. 잡학다식은 종종 독이 되기도 하지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는지 전체 지도를 펴놓고 확인할 수 있게 해 준다.


고등학교 시절


고등학교에 진학한 이후 처음 읽은 책이 무엇일까 기억을 더듬어 보아도 잘 생각이 나지는 않는다. 아마도 톨스토이 정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때는 삼중당문고가 아니라 동서문화사인가 하는 출판사에서 나온 고전 전집, 그리고 이모 집에 있던 삼성출판사에서 나온 세계 고전 전집을 주로 많이 보았다.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로부터 시작하여 분량이 큰 책들을 주로 보았다. 기억게 남는 대표적인 작가들을 짚어보자면 발자크, 톨스토이, 괴테, 레마르크, 솔제니친, 스탕달 그리고 가장 중요한 도스토옙스키가 있다. 도스토옙스키는 당시 번역된 것은 다 읽은 것 같다. 한참 심취해서 그에 대한 전기나 평론까지도 읽었다.


읽을 만한 책인데 내가 전혀 접하지 않았던 저자들을 꼽자면 뒤마, 오웰, 위고, 하디, 트웨인 등이다. 이들 작가들의 작품을 읽지 못해서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애석하지는 않다. 하지만 여전히 애석하고 약간은 창피스럽기도 한 작품들이 있는데 그것은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 피츠제런드의 <위대한 개츠비>, 헤세의 <유리알유희>, 셰익스피어의 역사 희곡 등인데 언젠가 읽을 기회가 있을까? 아마도 없을 듯싶다. 윌라 오디오북으로 나오면 모를까.


그리고 요즘은 전집류에 자주 자리를 차지하지만 당시에는 접하기 힘들었던 저자들도 있다. 콘래드, 골딩, 쿤데라, 귄터 그라스, 잭 런던, 오르한 파묵, 마르케스 등이다. (물론 오르한 파묵은 당시에는 유명 작가가 아니었다.) 나이가 들어서 읽으려고 했다가 중간에 멈추었거나 여전히 언젠가는 읽으려고 하는 책들도 있다. 무엇보다도 <레 미제라블>, <파리대왕>, 파묵의 작품, 제임스 조이스 등인데 한 번쯤 손을 댔다가 끝을 못 본 작품들이다.


그리고 뭣도 모르고, 멋 부리고 싶어서 읽은 책들이 있는데 철학 책들이 그렇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비롯해, 칸트,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 고전적인 철학 책들인데 그냥 읽었다는 것에 의의가 있을 뿐 이해했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플라톤의 <소크라테스의 변명> 정도는 이해했겠지만.


그리고 고등학교 때 한참 재미있게 읽은 책들이 있는데 그것은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이다. 당시에 번역된 크리스티의 책들은 거의 다 읽었다. 크리스티의 추리 소설은 마지막 몇 페이지를 읽기 전에는 범인을 맞추기가 지극히 어려운 반전의 최고봉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친한 친구와 마지막 부분을 읽지 않고 범인을 맞추는 게임을 하곤 했는데 나는 제법 잘 맞추었다. 그런데 그것은 탐정의 추리를 따라간 것이 아니라 '추리소설'이 흔히 사용하는 방식을 역으로 추론해서 맞추었다. 범인은 늘 독자가 가장 범인이라고 생각하기 힘든 사람 중에 있으며, 동시에 아주 중요한 등장인물이어야 한다. 그런 사람을 찍어서 역으로 추론해 보면 범인을 맞출 수가 있다.


나의 문학작품 독서는 사실 고등학교에서 끝난다. 대학에 입학 후에 문학작품을 읽은 것은 손에 꼽을 정도에 불과하다. 조정래의 <태백산맥>, 1980년대 중반부터 새롭게 소개된 아프리카 등 제3세계 작가들의 작품 등.


학창 시절 읽었던 책은 과연 지금의 나를 형성하는데 얼마나 영향을 주었을까? 그것을 판단하기란 쉽지가 않다. 아니, 알 수가 없을 것이다. 무의식 어딘가가 박혀 있거나 아니면 뇌의 CPU의 업그레이드에 도움을 주었거나. 분명한 것을 의식할 수 있는 기억으로 남아 있는 것은 아주 미량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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