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 읽었던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를 40여 년 만에 오디오북으로 완청했다. 명실공히 압권이었다. 특히 후반부 재판 과정의 묘사는 전율을 일으킨다.
그런데 초반부에 막내아들 알료샤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추후 알료샤에 대한 본격적인 이야기를 하기 위해 젊은 시절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나오는데, 소설은 그냥 젊은 시절 이야기로 끝나고 만다. 좀 어리둥절했다. 그래서 검색을 해보니 본래 도스토예프스키는 3부작 정도를 염두에 두었고 발표된 것은 1부작에 불과하다고 한다. 도스토예프스키는 1부작을 쓴 후 얼마 후에 사망했기에 그 후의 이야기는 없게 된 것이다. 하지만 1부작만으로도 완성도가 넘쳐흐른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등장인물은 대부분 19세기 후반부 러시아 사회가 직면한 여러 복합적인 문제들(농노제 해체, 서구문화의 유입, 귀족사회의 붕괴, 황제제도의 한계, 급진적 운동의 대두, 러시아정교회의 혼돈 등등)로 인해 2중 인격, 내적 모순, 가치관 혼란, 뒤틀린 영혼 등등이 생생하게 그려지는데 알료샤만은 단단한 대지에 뿌리박은 견고한 정체성을 유지한다. 나는 이것이 좀 어색하고 못마땅하게 생각되었으나, 아뿔싸~~! 알료샤는 도스토예프스키의 구상에 따르면 후반부에 혁명 세력에 가담하여 황제를 암살하고 처형당하는 줄거리로 전개된다고 한다. 굳건한 신앙심을 가진 알료샤가 혁명가로 변신하는 과정을 그려냈을 치열한 스토리가 문학사에 남겨지지 못한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평론가들은 이 소설을 주로 심리소설의 걸작으로 평가하곤 하는데, 나는 그보다 '사회소설'로 평가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19세기 후반부의 러시아 지식인이 당면한 문제들을 피부로 느끼지 못한다면 간과하게 될 심층적인 내용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는 '러시아'라는 단어가 얼마나 많이 나오는지 헤아리기 힘들다. 그냥 상상해 보건대 박경리의 <토지>에 '조선' 혹은 우리나라를 칭하는 단어의 수가 10번이라면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등장하는 '러시아'라는 단어는 1,000번은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는 작가가 얼마나 애증과 고뇌와 희망을 담고 자신이 몸 담은 사회를 묘사했는지를 간접적으로 말해준다. 단지 인간의 '내면'을 파고드는 것만 부각해서는 부족하다는 말이다.
사실 작품의 핵심 소재인 '살인 사건'은 웬만한 추리소설 버금가는 긴장감과 반전이 녹아있다. 그런데 (이것은 아주 사소한 문제이긴 한데) 작가가 추리소설 작가는 아니기에 놓쳤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있다. 결말에 이르면 아버지 표도르와 하인의 머리를 내리친 도구는 각각 다른 것이고 이는 살인사건의 해명에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 그러나 작품 속의 검사나 변호사는 물론 작가인 도스토예프스키도 이 부분은 전혀 건드리지 않는다. 아쉽다기보다는 살짝 미소 짓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