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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파르 파나히 <하얀 풍선>

- 순결한 동심에서도 배제되는 것은?

by 로로

현재 이란의 가장 문제적 감독인 자파르 파나히의 장편 데뷔작 <하얀 풍선>은 순수한 동심과 거기서 배제되는 쓸쓸함이 교차된다.


파나히 감독인 '문제적' 감독인 이유는 그의 작품 세계가 보여주는 탁월함과 더불어 3번째 장편영화 <써클>이 이란에서 상영금지된 이후 한 번도 정상적인 환경에서 영화를 제작하지 못했으며 정치적 탄압으로 인한 몇 차례 구속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이란 내에서 영화를 만들어내는 경이적인 노력 때문이기도 하다. 바로 그러한 환경으로 인해 그의 영화는 다큐멘터리와 드라마의 정교한 결합이라는 새로운 영화적 방법론을 개척해 나가고 있다.


2022년 <노 베어스>까지 10편 정도의 장편 영화를 만들었지만 파나히 감독의 영화가 이란 내에서 정상적으로 상영된 경우는 첫 두 편에 불과하다. 첫 두 편은 마음을 정화시켜 주는 동심을 담아내고 있지만 사실은 세 번째 영화 <써클>을 향한 전주곡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우리는 이란의 서민들 특히 여성들이 겪어야 하는 일상적인 상황을 제대로 알 수가 없다. 거기다가 새해 첫날에 금붕어가 필요한 그들의 문화도 전혀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새로운 문화에 차분하게 젖어들게 된다.


새해에 아름다운 금붕어를 원하는 어린 소녀의 마음에 우리는 쉽게 편승한다. 무엇인가 새로운 것이면 호기심을 갖고 쉽게 한 눈을 팔게 되는 아이의 동심은 우리를 미소 짓게 만든다. 어렵사리 엄마의 동의를 얻어 금붕어를 사러 간 소녀는 돈을 잃어버리는 곤경에 처하게 된다. 소녀를 둘러싼 성인들은 특별히 나쁜 심성을 가진 사람이 없다. 아이를 도우려고 하지만 자신들의 관심사로 인해 끝까지 돕지는 못한다.


영화의 제목이 왜 <하얀 풍선>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야 한다. 이 장면은 어떤 의미에서 영화의 반전(反轉)이라고 할 수가 있다. 우리는 이란에서 소수민족이 처한 상황을 알지 못한다. 쿠르드족도 있고 아프가니스탄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하층민일 것이고 이방인들이다. 마지막 장면에서야 제대로 그 의미를 부여받는 '하얀 풍선'은 우리를 멍하게, 쓸쓸하게, 가슴 아프게 만든다. 동심의 문제는 갑자기 그 순수한 동심의 세계에서도 배제되는 이방인의 문제가 되어 버린다.


이 아픔은 이제 파나히 감독의 다른 작품을 통해 강렬하게 확대되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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