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 쓴 여자와 머리띠 한 남자(1)

by 로로


1

안 들어가세요?

예. 먼저 들어가세요.


2

다시 달리기 운동을 시작한 지 두 달 만에 4킬로그램을 줄인 그는 약간 피곤함을 느끼며 쉬려고 했다.

문득 어떤 생각이 났다.

해가 넘어간 7시.

좀 늦었지만 재빨리 운동 티를 입었다.

빨간색 티였다.

늘 어두운 남색 티를 입었지만 눈에 잘 띄는 빨간색을 골랐다.

그리고 늘 그러하듯 땀흘림 방지 머리띠를 했다.


집에서 나와 조금 빠른 걸음으로 걷다가 뛰기 시작했다.

아주 천천히.

천변까지는 0.6킬로.


천변에 이르러 뛰기 시작하면서 오늘도 그녀가 나왔을까 궁금했다.

약 0.5킬로쯤 갔을 때 멀리서 그녀가 뛰어오는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3

두 달 전 그곳으로 이사 와서 운동을 시작한 이후 그는 여러 차례 코스를 바꾸었다.

천변의 시작 시점에서 하류 쪽으로 4킬로를 내리뛰다가 다시 올라왔다.

그리 경사가 급하지는 않지만 달리기에서는 조금의 경사도 무척 큰 차이가 느껴진다.

지친 몸으로 오르막을 오르는 것이 만만치가 않았다.

그러다가 4킬로미터를 뛰면 만나게 되는 평평한 곳을 계속 뛰어 8킬로까지 나아간 후에 마을버스를 타고 돌아오곤 했다.

그렇게 두 주 정도 하니 마을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길이 시간을 제법 많이 잡아먹는다고 생각했다.

버스 기다리는 시간, 구불구불한 경로, 수많은 정류장.

그래서 다시 천변의 시작 지점에서 1.5킬로 지점 약간의 급경사가 시작되는 곳에서 돌아오는 방법을 택했다.

이렇게 우왕좌왕하면서 벌써 두 달이 지났다.

매일은 아니고 일주일에 대략 네 번 정도였고 비가 계속 올 때는 쉴 수밖에 없었다.


4

반바지 주머니 속에서 폰의 헬스앱은 내가 뛴 거리와 시간을 정확히 알려주었다.

구간을 100미터로 설정을 하였기에 자주 들려주었다.

좀 크게 들리기 때문에 종종 민망하기도 했다.

특히 다리 밑을 지날 때 그 소리가 나면 너무 크게 울려서 다른 사람들도 다 듣게 되었다.

그는 일곱 차례 10킬로 마라톤 대회에 참가했다.

그중 가장 좋은 기록은 1시간 4분이었다.

1시간의 기록에 도전하려면 100미터를 36초에 뛰어야 했다.

1시간 10분이면 42초, 1시간 20분이면 48초, 1시간 30분이면 54초.

이제 뱃살이 만만치 않게 나온 그는 기껏 54초가 목표였다.

천변에서 그보다 늦게 뛰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5

사람이 뛰는 모습도 마치 지문처럼 모두 다르다는 것을 그는 알게 되었다.

팔을 젓는 모습, 머리를 까닥이는 모양, 다리의 모양과 리듬, 몸통의 움직임, 시선.

이런 모든 것을 합하면 모든 사람이 영락없이 제각각이다.

듬성듬성한 가로등 사이를 어둠이 반쯤 삼킨 천변.

그 100미터 전방에서 뛰어오는 그녀의 모습을 그는 정확히 판별할 수가 있었다.


그가 코스를 대략 1킬로미터 거리의 왕복으로 바꾼 후였다.

턴 하기에 가장 적절한 곳까지의 거리는 아쉽게도 950미터 정도였다.

보통 7~10킬로를 뛰기에 4번에서 5번을 왕복하게 되었다.

첫날. 그는 오가며 그녀와 7번을 마주쳤다.

처음부터 그녀가 마음에 들었다.

그녀가 그와 거의 비슷한 속도로 뛰었기 때문이었다.

단지 그 이유였다.

키는 155센티 정도이고 특별히 눈에 띄는 외모는 아니었다.

하지만 뛰는 모습은 단아했다.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고 언제나 한결같았다.

그다음 날에는 6번을 마주쳤다.


그는 하루를 쉬었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빨간 티를 고른 후에 부랴부랴 나갔다.

그녀는 오늘도 나왔을까?

빨간 운동복을 입은 사람은 거의 없기에 눈에 잘 뜨였다.

천변의 시작 지점에서 반 킬로미터 지점에서 그는 그녀와 마주쳤다.

그보다 짧은 지점에서 그녀가 턴을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마주치는 지점이 늘 달라졌다.

그녀는 늘 정면을 응시하기에 자주 마주치는 그를 분별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마주치는 횟수를 봤을 때 그녀도 하루에 6킬로미터 이상은 뛰는 것이 분명했다.

신비스럽게도 100미터 전방의 어둠 속에서도 그녀의 모습은 분명하게 시야에 들어왔다.

첫날도 둘째 날도 그녀가 먼저 사라졌다.


빨간 옷을 입은 세 번째 날에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그녀가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다.

사라졌던 위치로 보았을 때 그녀는 천변의 끝 오르막길을 올라 나무 벤치에 앉아서 쉰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그녀가 다시 나타났을 때 그녀는 걷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와 점점 가까워지자 다시 뛰었다.

그리고 각각 턴을 해서 다시 마주쳤을 때 그녀는 걷고 있었다.

그것이 그날의 마지막 마주침이었다.


6

이제 그가 날마다 뛰러 나가야 하는 이유가 생겼다.

그녀와 마주친 이후에는 다시 마주치는 시간을 앞당기기 위해 더 빨리 뛰었다.

자세도 흐트러짐이 없어졌고 시선도 땅바닥으로 처박지 않고 정면을 응시했다.


그녀가 운동을 하는 시간은 6시에서 8시 사이였다.

저녁밥을 먹고 6킬로 이상을 뛰는 사람은 없다.

그것은 몸에 해롭기 때문이다.

그녀는 저녁밥을 챙겨야 하는 사람이 없다는 뜻이 된다.


생각이 거기에까지 미치자 야릇한 감정으로 인해 그는 몸 가운데 가장 신축성이 좋은 부분에 변화가 생겼다.

그것은 뛰는데 안 좋은 징조였다.

10킬로가량을 뛰게 되면 몸과 옷의 마찰이 가장 민감하게 된다.

특히 사타구니와 바지 사이의 쓸림으로 인해 돌아와서 샤워를 할 때면 사타구니가 따끔거리기도 한다.

그러니 더 민감한 다른 부분이 약간이라도 돌출하여 바지와 마찰이 생기면 문제가 되는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