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뒤늦게 알아본 "Double Genius"
'라이언 존슨'처럼 흔한 이름은 기억에 새기기 힘들다. 게다가 <브릭>, <루퍼>,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는 성격이 다른 영화들이어서 이 영화들의 감독이 라이언 존슨이라는 것도 모르고 넘겼다.
선댄스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은 <브릭>은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트윈 픽스> 느낌을 풍기는(물론 영화의 내용이나 분야는 전혀 다르다) 하이틴 범죄물로 범상치 않은 라이언 존슨의 등장이었다. 아포칼립스 SF인 <루퍼> 또한 비범한 영화였지만 <브릭>보다는 훨씬 대중적인 영화였다. 그리고 등장한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는 스타워즈 시리즈 중에 가장 독창적이었지만 '스타워즈' 시리즈에 손을 얹은 여러 감독 중 하나로 치부되었다.(<라스트 제다이>는 늙은 조지 루카스가 돈에 눈이 멀어 디즈니에 판권을 넘겨 디즈니가 죽쒀서 드시는 와중에 독보적으로 반짝인 영화). 그러나 놀랍게도 성격이 다른 이 세 작품의 writer는 모두 라이언 존슨 자신이었다.
2019년 <나이브스 아웃>이 등장했을 때에도 매우 정교하고 치밀한 추리물 하나가 등장했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2022년 <나이브스 아웃: 글래스 어니언>이 나왔을 때 비로소 라이언 존슨이란 이름을 기억하기 시작했고, 2025년 <나이브스 아웃: 웨이크 업 데드 맨>을 보고 나자 라이언 존슨의 천재성에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 시리즈의 작가도 모두 라이언 존슨이다.
'나이브스 아웃' 시리즈는 추리물로서는 아가사 크리스티를 되살린 또는 능가한 작품들이다. 아주 복잡하고 정교한 이야기의 실타래를 영화로 구성해 나가는 영화감독으로서의 솜씨는 혀를 내두르게 만든다. 언뜻 보면 그냥 오락영화로 치부하기 쉬워서 두 번 보게 되지는 않지만, 사실 한 번 보고는 캐치하기 힘든 수많은 요소들이 영화에 담겨 있다. 추리 작가로서의 천재성과 영화감독으로서의 천재성을 겸비했기에 Double Genius라고 부를만하다. 그런데 여기에만 머물렀다면 그냥 즐기면 되지 이렇게 글로 남길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데뷔작이라고 할 수 있는 <브릭>이 미국 사회를 해부하는 사회적 리얼리즘이었듯이 '나이브스 아웃'은 현재의 미국 사회 내지는 후기 자본주의 사회 전체에 대해 날카로운 메스를 드리대는 사회적 리얼리즘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추리물은 범죄 자체의 트릭보다는 '범죄가 일어난 구조'에 집중하며 현대 사회의 위선, 가짜 뉴스, 이민자 문제, SNS 문화 등이 범죄의 핵심 기제를 파고들며 사회 비판적 메시지를 강하게 담고 있다.
범죄를 둘러싼 대부분의 사람들은 범죄와 뒤섞여 있는 심리적 동조자들로 그려진다. 부와 기득권, 도덕적 타락과 위선이 그들을 겹겹이 에워싼다. 흥미로운 것은 그런 가운데 라이언 존슨은 도스토예프스키 작품의 쏘냐나, 알료샤 혹은 미시킨과 같은 순결한 인물을 등장시키는데 이러한 선한 인물은 사회적 지위가 낮거나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인물이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엘큘 포와로를 연상시키는 탐정 브누아 블랑(007 시리즈를 끝내고 그 멋지던 핏이 사라지고 배가 나온 대니얼 크레이그)은 그러한 인물과 함께 하면서 사건을 해결한다. 권선징악적인 정의의 실현이라기보다는 대부분 인간이 자본주의적 욕망으로 추하게 망가진 세상에서 여전히 남아 있는 희망을 상징한다고 볼 수가 있다.
1편에서 무시당하는 존재인 순결한 인물 마르타는 다른 가족 구성원들로부터 각각 에콰도르, 볼리비아, 우루과이, 브라질에서 이민 왔다고 언급이 된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마르타에 대해 어떠한 관심도 없으며 그저 미국에 불법 이주한 라틴계 인물일 따름이다.
2편에는 그야말로 미술 작품의 호화로운 '파티'가 펼쳐지는데 여기서는 미술이 단지 부의 축적 내지는 과시의 수단으로 전락한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면서 동시에, 소유자인 거부는 그러한 미술 작품에 대해서 아무런 예술적 깊이도 없이 그저 허영심만 가득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 영화에는 수 십 개의 유명 작가 작품이 등장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다른 글에서 정리해 보겠다.
3편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종교적 위선까지 건드린다. 종교적 카리스마 속에 담겨진 탐욕과 그러한 카리스카에 쉽게 이용당하는 순수한(그러나 그 단순함으로 인해 탐욕에 이용당할 수밖에 없는) 열정, 철처히 이해타산으로 둘러싸인 종교 공동체 등이 중층적으로 묘사된다. 물론 여기서도 정직한 종교적 열망을 간직한 주드 신부가 등장한다.
라이언 존슨이라는 기억하기 힘든 평범한 이름을 가진 감독을 이렇게 만났고, 앞으로도 또 만나게 될 것을 생각하면 왠지 기분이 좋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