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고 <지구를 지켜라>
2003년에 개봉한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를 20여 년 만에 다시 보아도 기발하고 심오하다. 21세기 가장 hot한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이 어떻게 이 영화를 접하게 되었는지 궁금하지만 그가 리메이크한 <부고니아> 또한 그의 다른 작품과 마찬가지로 탁월하다. 란티모스 감독은 어떤 영화를 만들어도 늘 안심하고 봐도 되는 감독에 속한다.
앞서 란티모스의 <가여운 것들>은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지만 그 이상은 아니었기에 '작가'에 포함시키지 않았지만, <부고니아>는 장준환 감독이 '작가'에 포함되어 있다. 일부 대사는 거의 동일하게 사용기도 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지구를 지켜라>에서 세 가지를 제거했다.
한국 영화의 고질적인 암덩어리인 '웃기기'(물론 <지구를 지켜라>에서의 유머는 영화의 성격상 그렇게 튀지는 않는다)는 싹 거두어냈고, 신하균의 연기가 발산하는 '광기'가 사라지고 제시 플레몬스 특유의 속마음을 들여다보기 힘든 두터운 표정 연기로 대체되었다. <지구를 지켜라>에서는 조금 흠에 해당하는 괴팍하지만 유능한 형사와 무능한 관료적 형사의 갈등이라는 식상한 설정 또한 사라졌다. 그리고 한 가지 덧붙이자면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사회적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담아내는 장면이 <부고니아>에서는 빠져 있다. 그래서 영화는 깔끔해졌다.(어쩌면 단순해졌다.)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패러디한 <지구를 지켜라>의 장면들은 참으로 기발했는데 <부고니아>에서는 사라졌다. 영화 말미에 갑작스럽게 SF로 전환되는 설정은 <부고니아>에서 좀 더 세련되게 다듬어졌다.
만약 두 작품을 모두 보지 않은 관객이라면 <부고니아>를 먼저 보고, <지구를 지켜라>를 나중에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반대 순서로 보다면 <부고니아>가 심심해졌다고 느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