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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버나움>(2018)

나딘 라바키

by 로로

영화를 보기 전에는 현재 이스라엘의 지명 카파르나움(Capernaum)을 굳이 성서의 발음으로 번역해서 기독교 신자를 관객으로 끌어모으려는 얄팍한 수작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나 영화의 실제 배경은 레바논의 베이루트를 벗어나지 않으므로 100km 정도 남단에 있는 카파르나움은 분명 상징적인 의미로 성서의 '가버나움'에서 가져온 말일 것이다.


성서에서 가버나움은 십여 차례 등장하는데 요한복음에서는 예수가 회당에서 영원한 생명에 대해 가르치는 곳으로 등장하며, 마태복음에서는 세례 요한의 죽음 이후 예수가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살았던 곳으로 나오며, 누가복음과 마태복음에서는 예수와 그 제자들을 배척하는 대표적인 장소로 예수가 육성으로 "지옥에 떨어져라"라고 저주하는 곳으로 나온다.


이 영화의 제목은 세번째 성서 기록 이후 지옥과 등치되어온 '가버나움'에서 따온 말일테다. 솔직히 맘에 안든다. 어울리지도 않는다. 영화 내용이 기독교적인 메시지가 있는 것도 아닌데 굳히 종교적인 분쟁으로 반세기를 할퀸 레바논 이야기에 굳이 성서적 상징을 사용한 것은 서방 국가의 관객용이었기 때문일까?


어쨋거나 영화는 도저히 감출 수 없는 '먹먹함'이 밀어닥친다. 대략 소재의 희소성 가치에 편승한 영화가 아니라 특별히 잘 만든 웰메이드 영화다. 도리어 그런 지점 때문에 '센티멘탈리즘'이란 부정적 평가도 나올만 하다.(The Guardian) 실화라고는 하지만 결말이 너무 헐리우드적인 해피엔딩이어서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주인공 자인의 엄마가 재판정에서 변호사역으로 나온 감독 나딘 라바키에게 "네가 이렇게 살아보기나 했냐?"라는 항변을 감독 자신이 아프게 받아들였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약간의 섭섭한 점이 있지만 베이루트의 거리, 주인공 자인의 표정, 그리고 젖 빠는 아기의 모습은 오랫동안 뇌리에 남아있을 것이다.


레바논에는 현재 100만 명의 시리아 난민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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