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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썰양 Aug 17. 2015

독학으로 세무사 시험 합격하기

공순이를 꿈꾸는 그대에게, 네번째 이야기

세무사를 선택한 이유


평생 옷으로 밥 벌어먹고 살거라고 생각했던 여성복 디자이너가 어느날 갑자기 "그래 결심했어!! 나는 세무사가 될테야!"라고 결심할 확률이 얼마나 될까? 회계학이나 경영학 전공이 아니라면 20대 초반 아가씨가 세무사나 세법에 관심을 가질 일이 별로 없다. 나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처음 세무사의 존재를 알게된 건 2003년에 우리집을 팔았을 때였다. 집을 팔면 양도소득세를 내야한다는 것조차 몰랐던 부모님은 거액의 양도소득세 고지서를 받고 깜짝 놀라 주변을 수소문해서 세무사를 소개받았고, 인테리어 비용을 필요경비로 추가해서 세금을 절반가량 줄일 수 있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나중에 생각해보니 경정청구를 통해 세금을 줄이고 감액된 부분의 30% 정도를 세무사가 수수료로 챙겼겠구나 싶었다.) 세무사가 무슨 일을 하는지는 정확히 몰랐지만 왠지 근사하다고 생각했다.

공인중개사 시험을 준비하면서 본격적으로 세법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 공인중개사 시험 과목에 부동산세법 과목이 있는데 세법에 대한 기초 없이 양도소득세와 지방세를 공부하는 것이 쉽지가 않았다. 이 과목만 온라인 강의를 들었는데 강의하는 세무사가 그렇게 위대해 보일 수가 없었다. 주위에 회계사 준비하는 친구들이 있어서 회계사 시험에 대해서는 대충 알고 있었는데 세무사는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그래서 인터넷 검색으로 세무사 시험에 대한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다.


합격의 첫걸음, 지피지기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는 수험생에게도 어김없이 적용된다. 시험에 합격했을 때 하게 되는 일이 내 적성에 맞는지, 합격 가능성은 얼마나 되는지, 어느 정도 기간과 비용으로 합격이 가능한지 꼼꼼하게 따져보아야 한다. 그 결과 승산이 있다 싶으면 시작하고 합격할 때까지 절대 그만두지 않는다. 그러나 승산이 모호하긴 하지만 일단 한번 시작해볼까 하는 마음으로 임하면 도중에 그만둘 확률이 높다. 돈낭비는 둘째 치더라도 시간낭비는 돌이킬 방법이 없다.

청춘은 생각보다 짧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에 수학을 너무 싫어해서 숫자와 관련된 세무사가 적성에 맞을까 싶었는데 공인중개사 시험을 준비하면서 의외로 세법에 흥미를 느꼈다. 회계사는 합격하고도 회계법인에서 2년간 수습기간을 거쳐야 하는데 나처럼 대학을 졸업하고 몇 년이 지난 사람은 졸업예정자에 비해 회계법인에 입사하기가 어려울 것 같았다. 그에 비해 세무사는 나이가 많은 분들도 준비하시고 시험과목도 회계사에 비해 덜 어려운 것 같아 최소한의 투자로 최대의 수익을 낼 수 있겠다 싶었고 그 당시에는 S회계법인 등에서 수습 세무사를 채용했기 때문에 충분히 그 법인에 입사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2003년 10월, 디자이너였던 나는 두 손을 씻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었던 재봉틀과 의류 부자재들, 그동안 만들었던 작품과 일러스트를 사진만 찍어 놓고 후배들에게 나눠주거나 갖다 버렸다.


일러스트 학원 다니면서 그렸던 그림. 이런 그림을 그리다가 세무사 시험을 준비하려고 하니 앞이 깜깜했다.


나홀로 수험생의 세무사 1차 준비방법


세무사 시험은 공인중개사와는 수준이 달랐다. 전공자도 아니었고 책만 가지고 독학할 수 있는 과목도 아니어서 중급회계와 세법학개론 패키지 온라인 강의를 듣기 시작했다. 회계 과목은 방송통신대 경영학과 재학 당시 기초회계 과목을 독학했던게 전부였는데 중급회계부터 시작했던 건 무모한 일이었던 것 같다. 강사님이 늘 말하던 '회계마인드'는 대체 언제쯤 만들어지는지, 수업을 들을 때마다 머리가 띵했지만 그냥 닥치고 들었다. 목표는 3회독.

세무사 시험은 4월에 1차 시험을 보고 7월에 2차 시험을 본다. 1차 시험까지 6개월이 채 남지 않았으니 그동안 1차 과목을 마스터하기란 불가능했지만 일단 목표를 2004년 1차 시험을 응시하는 데 두고 전과목을 1회독하겠다고 결심했다. 세무사 1차 과목은 회계학개론, 세법학개론, 재정학, 상법, 그리고 영어다. 회계학개론은 중급회계와 원가회계를 포함한다. 회계와 세법은 온라인강의로 진행하고 상법은 수험생들이 가장 많이 보는 책으로 독학했으며 재정학은 테이프 강의가 저렴해서 테이프로 들었다. (지금도 강의 테이프를 파는지 모르겠다.) 영어는 왕도가 없으므로 매일 꾸준히 문제를 풀고 답을 맞추면서 큰 소리로 읽었다.

사람마다 공부하는 스타일이 다른데, 나의 경우는 집에서 혼자 공부하는 걸 선호해서 매일 7시 기상해서 아침 식사를 하고 8시부터 점심시간까지 인터넷 강의나 테이프 강의 수강, 점심 먹고 다른 과목 공부, 5시쯤 가벼운 저녁을 먹고 집 옆에 있는 초등학교 운동장을 걸으면서 해리포터 오디오북 듣기, 씻고 11시까지 공부하고 잠자리에 드는 일과를 반복했다.


영어를 책임진 내사랑 해리~ 잘 안들려도 영어 오디오북을 귀에 꽂고 살았는데 꽤 도움이 되었다.


오전에는 아무래도 집중도가 높아서 강의를 듣기 좋았고, 오후에는 복습과 독학을 했다. 좋은 강의를 많이 듣는 것도 좋지만 강의를 듣는 시간만큼 강의를 소화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강사가 전달해준 내용이 오롯이 내 것이 될 수 있다. 노량진에서 하루 종일 강의를 듣는 수험생이 있다면 부디 말리고 싶다. 강사가 떠드는 내용을 듣고 있을 땐 전부 이해가 되는 것 같지만 내 손으로 문제를 풀어보지 않으면 그건 절대 내가 아는 것이 아니다. 그 내용을 남에게 설명해줄 수 있는 정도가 되어야 진짜로 그 내용을 아는 것이라 하겠다. 그러니 혼자 공부하면서 앞에 인형이라도 하나 갖다두거나 보이지 않는 '동수'라도 옆에 두고 배운 내용을 소리내어 설명해주면 기억에 오래 남고 내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명확히 파악하게 된다.

1차 과목 중에서 원가회계 과목은 손도 못댄채 올림픽 정신으로 1차 시험을 치렀다. 결과는 당연히 불합격. 하지만 6개월 바짝 공부해서 이 정도 점수라면 내년에는 충분히 승산이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시험 보느라 고생한 나에게 하루 휴가를 허락하고 다음날부터는 2차 과목도 손대기 시작했다.


논술형 2차 시험 준비하기


세무사 1차 시험은 객관식 시험이지만 2차는 논술형 시험이다. 대학 다니면서 늘 논술형 시험을 치렀지만 논술은 항상 어려웠다. 지금 생각해보니 내용을 이해해서 내 언어로 쓰면 되는 것을 책에 있는 문장 그대로 암기해서 쓰려고 해서 어렵게 느껴졌던 것 같다. 중요한 건 문장을 그대로 암기해서 쓰는 것이 아니라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었다.

논술형 시험은 자고로 많이 써봐야 한다. 학원에 다니시는 분들은 모의고사도 자주 치고 스터디 그룹을 결성해서 서로 첨삭해주는 경우가 많은데 혼자 공부해서는 논술 준비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일단 2차 과목 중 세법학1,2는 테이프 강의를 듣고 나머지는 독학하면서 어느 정도 내용이 파악된 후에 3개월짜리 주말 종합반 강의를 학원에서 수강했다.

주말 3개월이다보니 기본서로 강의를 진행하면서 답안 작성 요령을 알려주는 것만으로도 벅차서 강의 시간 중에 답안을 작성할 여유가 없었다. 굉장히 스피디하게 진행되는 강의어서 어느 정도 수준에 올라있지 않으면 따라가기가 쉽지 않지만 기본이 어느 정도 된 경우에는 강사님이 알려주는 요령들로 실력을 한층 끌어올릴 수가 있었다.

2003년 12월부터 3개월간 수강을 마치고 두달간 바짝 1차 시험 준비를 했다. 사회생활 하면서 벌어놓은 돈도 없었거니와 아빠가 하셨던 시행사가 망하고 나서 특정한 수입원이 없었기 때문에 용돈 달라는 말을 차마 하지 못해서 책 한 권 변변히 사 볼 수가 없었다. 보던 책만 반복해서 보면서 당시에 유용한 정보를 많이 얻었던 인터넷 카페에서 모의고사 문제나 기출문제 등을 다운받아 이면지에 잉크절약모드로 문제를 출력해서 풀어보고, 틀린 문제들만 모아서 또 풀었다. 좀더 여유가 있었다면 문제집도 사서 풀고 강의도 더 들을 수 있었겠지만 더 물러날 곳이 없다는 절박함은 집중의 원천이 되었던 것 같다. 맥도날드 매장 불빛에 의존해 공부한다는 9살짜리 필리핀 소년보다 상황은 더 나았겠지만 심정만큼은 그 아이 못지 않았다. 그렇게 1차 시험은 합격을 했고 마음이 풀어질 틈도 없이 2차 시험 준비에 들어갔다.


맥도날드 소년으로 알려진 필리핀 꼬마. 장래 희망이 의사 선생님이라고. (출처 :Joyce Gilos Torrefranca 페이스북)

2차시험은 무조건 많이 써보는 수밖에 없다. 답안지 살 돈도 아까워서 빈 종이에 답안지 모양대로 줄을 쳐서 그 위에 이면지를 올려 놓고 답안을 작성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궁상맞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그만큼 어려웠고 절박했다. 회계학 문제는 수험서에 있는 문제를 반복해서 풀었고 세법학 문제는 예상문제를 뽑아서 답안지 구조를 잡고 쓰는 연습을 했다. 첨삭을 받았다면 더욱 도움이 되었겠지만 닥치고 그냥 썼다. 그렇게 7월이 되었고, 시험 당일날 답안지를 밀려 쓰는 엄청난 실수를 저질렀지만 하늘의 도움으로 겨우 수습해서 시험을 마쳤다.

결과 발표까지 두어달이 걸렸다. 그냥 손놓고 있을 수가 없어서 단기 아르바이트를 알아보다가 추석 무렵 백화점에서 갈비 선물세트 판매하는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 하루종일 서서 손님 응대를 하느라 몸은 고단했지만 일하는 동안만큼은 시험 결과를 생각하지 않을 수 있어서 차라리 마음은 편했다. 아르바이트가 끝나갈 무렵 결과가 발표됐다.

기적같은 합격. 드디어 고생 끝 행복 시작인가.
그러나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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