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순이를 꿈꾸는 그대에게, 여섯번째 이야기
세무직 공무원 시험에 최종합격하면 12주의 합숙교육을 받고 나서 국세공무원으로 정식 임용되고 세무서로 발령을 받는다. 2007년에는 임용과 동시에 합숙교육이 시작되었고 6주 교육 후에 발령을 받았다.
2007년 2월 25일. 스물 아홉 생일날 소리없이 눈이 내리던 밤, 캐리어를 끌고 수원에 있는 국세공무원교육원에 들어서면서 진짜로 인생 제2막이 시작되었음을 실감했다. 생일날 다시 태어나는 기분이었다.
다섯살 어린 룸메이트와 친해지면서 룸메이트의 스터디 멤버들과도 덩달아 친해졌는데 스터디 멤버라고 해서 공무원 학원에서 같이 공부했었나보다 했더니 '면접 스터디'였다고 한다.
뭐? 면접도 스터디를 한다고?
그렇다. 나홀로 수험생인 나만 몰랐던 것이다. 스터디를 만들어서 면접 요령을 익히고 예상문제를 뽑아 서로 주거니 받거니 연습도 했으며, 합격생을 모셔다가 복장까지 제대로 갖추고 모의면접도 했다고 한다. 아... 내가 지독하게 운이 좋았던 거구나 싶었다. 나는 면접 준비랄 것도 없이 덜렁 덜렁 면접장에 갔다가 '왜 디자이너가 세무공무원이 되려고 하는지'에 대해서 구구절절한 사연을 얘기하느라 시간을 다 보냈기 때문이다. 남들도 다 그렇게 면접을 본 줄 알았다.
공무원 면접시험은 선발인원의 1.3배수가 응시한다. 면접보는 10명 중 2,3명은 어려운 필기시험을 통과하고도 고배를 마신다는 뜻이다. 2015년 국가공무원 세무직 9급 공개채용시험 면접에 2,065명이 도전해서 470명이 탈락하는 실정이니 면접에 임하는 수험생들은 일생일대의 전투를 치르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내가 면접을 본 2006년에는 9급 면접과 7급 면접 스타일이 달랐다. 면접 들어가기 전에 질문지를 나눠 주는데 공무원이 되고자 하는 이유, 감명깊게 읽은 책, 세무서에 방문한 경험이 있는지 등등의 질문이 적혀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9급은 2명의 면접관과 10여 분 정도 대화를 나눴던 것 같고 7급은 몇가지 주어진 상황에 대해 개인별로 짧은 프레젠테이션을 했고, 몇 명이 같이 들어가서 면접을 봤었다.
디자이너에서 세무공무원이 되고자 하는 특이한 이력 때문에 다른 질문을 할 새도 없이 그 얘기만으로도 주어진 시간을 다 사용했고,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보라는 질문에 '제가 제 2의 인생을 시작할 수 있도록 부디 기회를 주십시오'라고 매달렸다.
당시에는 대책없이 면접을 보고 운이 좋아 합격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소위 '스토리가 있는 면접'이 효과가 있었던 것 같다.
대학 입학 시험 면접이나 취업 면접에 필요한 스토리텔링 기법을 가르치는 스피치 학원도 많고, 공공기관부터 사기업까지 각종 스토리텔링 공모전을 개최하니 바야흐로 스토리텔링 전성시대다. 2006년에 스토리텔링을 알 턱이 없었으나 사연있는 수험생이다보니 자연스럽게 스토리텔링 면접을 하게 된 것 같다.
그렇다면 특별한 사연이 없는 수험생은 어쩌란 말인가. 없는 얘기를 지어낼 필요는 없지만 공무원이 되고자 하는 이유, 특정 직렬을 선택한 이유, 면접관이 나를 꼭 선발해야 하는 이유 정도는 본인의 경험을 섞어 설득력있는 이야기로 정리할 필요가 있다.
나의 경우는 디자이너를 하다가 회사가 망해서 공인중개사 시험을 봤고, 부동산 세법을 공부하면서 세법에 관심이 생겨 세무사 시험을 준비해서 합격을 했는데 사익을 추구하는 세무사로 일하는 것보다 세법 전문가로서 세무공무원이 되어 일하면 더욱 보람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서 세무공무원이 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공부하는 동안 N 보험회사 안내데스크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했는데 내방하는 손님을 맞이하고 전화로 고객을 상대하면서 내가 사람을 상대하는 일에 소질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래서 납세자를 상대하는 일을 잘 해낼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솔직히 수습 세무사 기간 동안 쥐꼬리만한 월급을 받을 뿐더러 근무 세무사로 일할 수 있다는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어쩔 수 없이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고, 경력을 쌓아서 나중에 세무사로 일해야겠다는 것이 나의 본심이었으나 면접관 앞에서 지나치게 솔직할 필요는 없어서 적당히 돌려 말했던 것이다.
면접관이 세무서에 와보거나 세무행정을 경험해본 적이 있냐는 질문을 했는데, 사업을 하거나 집을 팔지 않는 이상 세무서에 직접 와볼 일이 얼마나 있을까 싶다. 그렇다고 해서 '없는데요' 한마디로 끝내기는 좀 아쉽다. 국세공무원 면접을 준비하는 입장이라면 세무서와 연관된 에피소드 하나쯤은 준비하는 편이 좋겠다.
예를 들어 현금영수증을 발급해주지 않는 가게가 있어서 현금영수증 발급 거부 신고를 했는데 조사관님이 신고 내용을 전화로 물어보고 어떻게 처리할 거라고 친절하게 설명해주셔서 좋은 인상을 받았다라든지, 혹은 부모님 연말정산을 도와드리기 위해서 홈택스에서 연말정산간소화서비스를 이용하다가 잘 안되서 126에 전화를 했는데 통화량이 많아 전화연결이 잘 안되서 국세공무원은 전화를 많이 받아서 힘들겠다고 생각했다는 이야기 정도면 충분할 것 같다.
어떤 분들이 면접관으로 오시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세무서 과장님이나 본청, 지방청 계장님인 5급 행정사무관이 면접관으로 동원된다. 작년에 우리과 계장님이 면접관으로 가신다며 수험생들에게 뭘 물어봐야 하냐고 직원들에게 의견을 구했다.
"해외여행을 예약했는데 갑자기 급한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할거냐는 질문은 어때요?"
"그럼 열이면 열 전부 예약을 취소한다고 하겠지. 너무 뻔하잖아"
"진상 민원인이 떼를 쓰면 어떻게 해결할 거냐고 물어보세요."
"잘 알아듣게 설득하겠다고 하지 않겠어? 떼쓰는 민원인은 우리도 어떻게 하지 못하는데. 끙."
"세무조사를 하는데 상사가 좀 봐주라고 청탁을 하면 어떻게 할건지 물어보세요"
"오. 그 질문 괜찮네."
이렇게 우리끼리 묻고 답하고 농담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인사혁신처에서 면접 매뉴얼과 예상 질문을 제공하지만 당장 같이 일해야 할 부하 직원을 뽑는 입장에서는 어떤 질문을 해야 좀더 좋은 직원을 골라낼 수 있을까 고민하기 마련이다.
소위 똘아이같은 직원을 골라내지 못하고 뽑을지도 모른다는 걱정.
면접에서 떨어지면 또 1년을 공부해야 하는데 내 손으로 누군가는 떨어뜨려야 한다는 부담감.
이런 복잡한 심정으로 면접시험장에 다녀온 계장님의 소감은 이랬다.
"1조에 3명씩 들어오는데 2개조에서 1,2명은 떨어뜨려야 하잖아. 누구를 탈락시켜야할지 너무 고민이 되는 거야. 그래서 스펙 좋아보이는 애한테 제일 낮은 점수를 줬어. 스펙 좋고 잘난 사람은 공무원 말고도 다른 거 할 수 있으니까. 얘는 공무원 아니면 정말 할 게 없겠다 싶은 느낌이 드는 애랑, 절박하게 보이는 애들은 좋은 점수를 주게 되더라고."
몇 년 전 세정홍보과에서 대학생 홍보단을 운영했는데 실무자로서 홍보단 선발 면접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늘 면접대상자였다가 면접관이 되어 보니 어떻게 면접을 봐야 합격할 수 있는지 깨닫게 되었다.
첫째, 스펙보다는 절박함
요즘은 좀 열기가 덜한데 몇년 전만해도 사기업부터 정부기관까지 각종 서포터즈, 홍보단, 기자단 등등 대학생을 활용한 홍보가 인기였다. 상대적으로 비용이 적게 들면서도 대학생들의 신선한 아이디어를 활용할 수 있어서 좋고, 대학생들로서는 이력서에 한 줄이라도 더 쓰기 위해서 이런 외부활동에 적극적일 수 밖에 없었다.
2010년에 대한민국 세미래 대학생 홍보단(약칭 대세대홍)을 발족하기 위해서 지원자를 모집하고 면접을 봤는데 영상 촬영 및 편집, 각종 그래픽 디자인에 능통한 능력자들이 대거 지원을 했다. 명문대 출신에 자격증은 물론이고 이미 다른 기업 홍보단 활동을 한 이력도 많아서 면접자 중에서는 다른 홍보단에서 같이 활동을 하다 왔는지 구면으로 보이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에 비해 내세울만한 이력은 별로 없지만 지방에서 올라와서는 절박한 표정으로 꼭 뽑아달라는 학생도 있었다. 아무래도 기업들이 수도권에 많다보니 이런 외부활동들이 수도권 학생에 한정해서 지원자를 모집하게 되는데 대세대홍은 전국 대학생을 대상으로 해서 이런 기회 자체가 많지 않다고 했다. 홍보단 활동을 하게 되면 적어도 2주에 한 번 이상은 서울에서 모이게 되는데 너무 멀리서 무리하는 건 아닐까 걱정도 되었지만 절박한 눈빛으로 기회를 달라는 그 학생을 외면할 수가 없었다. 스펙 좋고 다양한 이력이 많은 지원자야 굳이 이 홍보단 아니어도 다른 기회가 많을텐데, 기회가 이번뿐인 그 학생은 꼭 뽑아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 학생은 성실한 활동으로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해냈다.
둘째, 우리 회사에 대해 관심이 많은 사람
면접을 보다보면 자기가 이 홍보단에서 무슨 일을 하게 되는지 잘 모르는 지원자를 종종 만나게 된다. 국세청 블로그에 기사를 쓰는 기자단을 선발하는 면접인데 국세청 블로그도 한 번 읽어보지 않았고 국세청이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고 오면 어쩌라는 걸까.
홈페이지와 블로그 등을 나름대로 분석해서 홍보방안에 대해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면접자도 있었는데 내용의 맞고 틀림은 별론으로 치더라도 그 정성이 기특해서 뽑지 않을 수 없었다.
면접볼 때 튀어야 뽑힌다며 춤을 추거나 퍼포먼스를 하는 친구들이 있는데, 이런 지원자는 우리 회사에 대해서는 잘 모르면서 무조건 튀어서 뽑히겠다는 느낌이어서 낮은 점수를 주게 된다.
공무원 면접에는 이런 질문이 나오고 이렇게 대답하면 합격한다는 내용을 기대하셨다면 실망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면접에는 정답이 없다. 공무원 면접 뿐 아니라 모든 면접을 준비하는 분들께 딱 한마디만 하고 싶다.
역지사지
내가 면접관이라면 어떤 사람을 뽑고 싶을까. 그런 사람을 뽑기 위해 무슨 질문을 할까.
면접관이 듣고 싶어하는 대답이 어떤 것일지 잘 생각해보자.
그리고, 쫄지말고 담대히 면접에 임하자.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