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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다올 Mar 04. 2023

나를 안다는 것

나이가 든다는 것은 선택지가 줄어든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많은 일을 겪어보며 나만의 O, X 답안을 적어 보는 것을 뜻기도 한다.


오늘 눈썹을 그리다 생각했다. '이제 나에게 어울리는 눈썹 펜슬 색과 아이섀도우 색을 고를 줄 알고 어떤 스타일의 옷을 입어야 어울리는지 알게 됐구나.'


중구난방으로 무엇이든 해보는 10대, 20대의 삶보다 재미없고 지루할지 모르지만 작년보다, 몇 년 전보다 내가 나를 더 알고 있다는 사실은 알 수 없는 안도감을 준다. 다른 이는 몰라도 적어도 나는 나를 조금은 잘 아니까 괜찮아, 하는 느낌이랄까.


오늘 만난 절친한 친구는 말했다. "좀 가볍게 살고 싶은데, 난 항상 너무 무거워. 그게 너무 싫어."


이 얘기가 나오기 전 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건강을 잃은 인 얘기를 했다. 그래서 우리도 너무 심오하게 살지 말자고 하는 동시에 저런 고민도 털어놨다. INTJ인 친구는 매일 계획을 세우고 지켜야만 하는 성향을 지녔다. 반면에 난 ENFP이며 나에게도 핸드폰 스케줄러에 일정이 저장되어 있긴 하나 매일 하루를 시작하며 계획표 작성을 하진 않는다. 계획을 세워서 달성하지 못하는 나 자신에 실망하기 싫어 애초에 계획표를 작성하지 않는다. 이런 P라도 정말 괜찮은 건지, 친구는 J이지만 P성향이 부럽다고, 본인도 그렇게 살고 싶다고 했다.


내가 보기엔 남과 비교하는 일 자체가 친구에게 스트레스가 된 것 같았다. 친구에게 계획한 바를 하지 말고 쉬라고 하면 친구의 마음은 더 괴롭다. 목표 달성을 못했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계획은 모두 실천해야 직성이 풀리면 그렇게 하고, 계획보다 본인의 컨디션이 더 중요하면 일정을 취소하고 쉬면 된다. 그게 고유의 성격이다. '난 이게 더 마음 편한 사람'이라고 받아들여야 나 자신을 싫어하지 않게 된다. 내가 나 자신을 받아들이는 일은 괴로움을 수반하기도 하지만 내가 지닌 색깔을 알게 한다. 인간은 완전하지 않기에 단점이 장점이 되고 장점이 단점이 되기도 한다. 최악의 단점이 아니라면 내 단점도 '아, 내가 이렇구나' 하고 넘어가면 어떨까.


뉴진스를 보며 내 나이를 실감한다. 어른들이 닳도록 얘기하던 '엊그제 나도 저 나이였던 거 같은데'를 내 입으로 말하고 있다. 내가 언제 이렇게 대학교 신입생과 10살이 넘게 나이차가 벌어졌는지 속으로 한숨을 쉬곤 한다.


돌아보면 그땐 그 나름대로 아무것도 모르는(그땐 알 거 다 안다고 여겼다) 풋풋함과 무모함이 있었다. 불과 2, 3년 전을 떠올려 봐도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를 일들이 꽤 있다. 지금 보다도 피가 끓었고 고집은 쓸데없이 더 셌다. 후회하는 건 아니다. 아마 난 다시 시간을 돌려준다 해도 그랬을 테니까. 아기는 누워있다가 옆으로 돌다가 뒤집다가 목을 들다가 기어 다니다가 걸음마를 시작한다. 아기가 누워있다가 분유의 힘으로 갑자기 벌떡 일어나 걸을 수 없듯이 나도 그 어이없는 패기와 고집을 지나지 않았다면 지금 내 모습은 골치 아픈 모습이었을지 모른다. 지난 모든 과정을 거쳐야만 했을 것이다. 그것은 마치 바꿀 수 없는 고유한 내 삶의 지문과 같다. 후회하는 기억도 물론 있지만 결국은 20대의 나 자신을 다 끌어안는다. 이전엔 지우고 싶기도 했고 애써 떠올리고 싶지 않은 적도 있었다. 무엇이 나를 바꿔놓았는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담담히 그대로 둔다.


40대가 되면 과거가 되어있을 이 글을 읽으며 어떤 표정을 짓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귀엽고도 기특한 생각이라고 여기면 좋겠다. 과거를 부정하지 않고 끌어안으며 그렇게 자신을 인정하며 걷느라 고마웠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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