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종교가 필요할까요?

믿음이 흔들릴 때, 나를 붙잡아 준 것은 '종교'가 아니라 '평화'였다.

by 마린

‘우리에게 종교가 필요할까요?’

이 질문을 들으면 나는 자연스레 “필요하다”고 답하게 된다.
돌아보면, 실제로 종교는 내게 필요했고, 또 많은 도움을 주었다.


어린 시절, 가야산의 정기를 받으며 자라던 나는 자주 해인사를 찾았다.
할머니의 할머니 때부터 집안 대대로 다니던 절이 있었고, 나는 할머니를 따라가 밥을 먹고 오곤 했다.

조금 더 커서는 엄마를 따라갔고, 지금도 일 년에 두어 번은 그 절을 찾아 주지스님을 뵌다.


나는 ‘종교’라고 해서 특정 종교 하나를 의미하진 않는다.
그저 마음이 끌리는 곳, 가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곳을 찾다 보니 그곳이 절이었다.

절은 언제나 자연 속에 자리하고 있다.
그곳에 있으면 잠시 세상과 멀어지는 기분이 들어 좋고,
느리게 흐르는 시간 속에서 마음이 한결 가라앉는다.
은은한 향 냄새와 종소리가 차분함을 더해준다.
어쩌면 나는 ‘절이 주는 분위기’를 좋아하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한국에서는 절을 가까이했지만, 사실 나는 여러 종교에 손을 내밀었던 사람이다.
러시아에서는 논문 지도교수님을 따라 러시아 정교회를 다녔고,
호주에서는 종종 성당에 갔다.


유학 시절, 불안함과 외로움을 달랠 방법을 몰랐을 때
나는 사람보다 종교를 먼저 찾았다.
낯선 환경만큼이나 낯선 인간관계가 힘들었다.
그들과 어울리기 어려웠고, 어떻게든 버텨낼 ‘힘’이 필요했다.


그러던 어느 날, 혼자 하염없이 걷다 들어간 성당에서 두 손을 모아 기도했다.


“모든 게 다 지나갈 거라는 희망과, 지금을 잘 버텨낼 힘을 주세요.”


그때 나는 ‘내가 믿고 싶은 것을 믿을 수 있게 하는 힘’

종교를 통해 배웠다.

나는 잘 살아갈 거라는 믿음,
내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다는 믿음,
그리고 나는 괜찮다는 믿음.

모든 희망은 믿음에서 시작되었다.
그래야 내가 살아갈 수 있으니까.



물론 종교가 없어도 사람은 살아갈 수 있다.
내 안에 따스한 사랑이 있고, 두근거리는 희망이 있으며,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이 있다면 충분하다.


하지만 살다 보면 이 모든 것이 흔들리거나
사라져버리는 날들이 찾아온다.
그럴 때는 종교를 믿어보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이,
그리고 그 힘을 되찾을 시간이 필요할 때가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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