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은 왜 하는걸까요?

버티는 일이 아니라, 살아내는 일

by 마린


나는 왜 일을 하고 있을까,

돈을 위해서일까, 삶의 방향성을 찾기 위해서일까,

아니면 그저 살아 있기 위해서일까.


답을 찾지 못하더라도,
내일도, 내년에도,
아마 호호할머니가 되어서도 나는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일의 의미’를 꼭 찾아야만 했다.


생각해보면, 첫 회사를 그만둔 이유도 이 질문에서 비롯되었다.
“나는 살아가고 있는가, 살아지는 대로 살아가는가?”


대학을 졸업하며 취업에 성공했다.
2년간의 유학과 졸업논문이 큰 힘이 되었다.
첫 직장은 전공을 살릴 수 있는 무역회사였다.
시간대가 11개나 되는 러시아 시차에 맞춰 일했고,
주 6일 근무와 이른 출근, 늦은 퇴근은 당연했다.
2~3시간씩 이어지는 회의, 바이어 접대, 해외출장까지…
쉼 없는 날들이 이어졌다.


신경성 위염과 위경련으로 병원을 자주 다녔지만, 퇴사는 생각하지 않았다.
집안이 어려운 시기였고, 몸이 아파도 출근하는 부모님을 보고 자랐기 때문이다.
게다가 인센티브의 달콤함은 20대의 나에게 큰 유혹이었다.
덕분에 동생들의 학비를 도울 수 있었고, 따뜻한 겨울을 보낼 수 있었다.


20대의 나에게 ‘일’은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이자,
가족을 향한 사랑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삶은 나를 시험했다.
순리처럼 찾아오는 죽음도 있었지만,
예기치 않은 죽음,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죽음도 있었다.


나 역시 갑자기 죽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밀려왔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사랑하는 이들을 두고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는 절박함.
일의 의미는 물론, 살아 있음 자체가 허무하게 느껴졌다.


조금은 충동적으로, 할머니가 생전에 늘 좋다고 말씀하시던 ‘호주’로 떠났다.
살아가며 “정말 좋았다”고 말할 수 있는 날들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그 생의 첫 일탈은, ‘내 삶의 의미, 살아 있음’을 발견하는 경험이 되었고,
이후 모든 선택에서 중요한 지침이 되어주었다.


그 후, 직장을 선택할 때 나는 더 이상 ‘돈’을 좇지 않았다.
30대의 나에게 일은 삶의 방향성이었다.
인생 선배들은 말했다.
“지금 하는 일을 10년 하면, 길이 보인다.”


나는 그 ‘길’을 발견하고 싶었다.
그걸 알고 싶어서, 내 자리에서 버텨왔다.


문득 의문이 들었다.
나는 정말 버티고 있었던 걸까,
아니면 회사가 조금씩 내 삶의 길을 만들어준 걸까.


철없던 나에게 세상의 이치를 알려주고,
사회인으로서 갖춰야 할 덕목을 가르쳐주고,
인간관계와 사회가 돌아가는 근본 원리를 일하며 배웠다.


때로는 자기 수양을 하는 기분으로,
가끔은 전쟁에 임하는 비장한 마음으로 다녔다.
하지만 그 모든 시간은 단순한 ‘버팀’이 아니라,
지금의 나를 만들어온 시간이었다.


아직 ‘길’을 발견하지 못한 건
내가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시간은 필요했다.
지금은 더 배우고 성장해야 하는 때였다.


돌이켜보니, 30대의 나에게 ‘일’은
배우고 성장하는 시간,
그리고 적당한 때를 기다리는 인내였다.


각 나이마다 일의 의미는 다른 이름으로 찾아온다.
20대에게 일은 가족에 대한 사랑이었고,
30대에게 일은 삶의 방향성이었다.
40대의 일은 또 다른 이름으로 다가올 것이다.


생각의 끝에서, 나는 어느 정도 답에 다가선 것 같다.
“일은 왜 하는 걸까?”
여전히 그 답을 찾아가며,
내 삶이 펼쳐질 다음을 기다리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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