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04
내 생에 가장 화려한 연말을 보냈다.마치 지나온 30대를 축하하듯, 다양한 장소에 초대받았고 많은 사람들과 원 없이 웃고, 또 울었다. 그렇게 한 해가 저물고 새해가 밝았다.
기다렸다는 듯 몸이 먼저 반응했다. 온몸이 아프기 시작했고, 이내 무기력이 찾아왔다. 이미 과부하 상태였던 몸과 마음을 정신력으로 버텨온 지난한 시간들이었다. 무리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후회 없는 시간을 보냈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스스로에게, 그리고 미래의 나에게.
간절히 원했지만 이루지 못한 것들은 마음 한켠에 다시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무엇이든 때가 있다며,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지나왔다.그러다 새해의 시작과 함께 나는 혼자가 되었다.
계획한 것도, 원했던 것도 아니었지만 마치 꼭 필요한 과정처럼 혼자만의 시간이 주어졌다. 약속도 없고, 해야 할 과제도 없는 완벽한 자유. 오랜만에 만난 낯선 여백속에서 밤낮 없이 잠들었다가 깨기를 반복하던 어느 순간, 문득 커피 한 잔이 생각났다.
거실로 나와 오래된 그라인더를 꺼냈다. 회전바를 천천히 돌리자 원두가 갈리는 진동이 손끝에서 시작해 온몸으로 작은 떨림이 되어 퍼져 나갔다. 곧 원두의 향이 코끝에 닿았고, 집 안 가득 번지기 시작했다. 혀에 군침이 돌고, 마음은 이유 없이 조급해졌다.
아직도 가득 남아 있는 원두를 보며 나는 더 빠르게, 더 힘껏 회전바를 돌렸다. 딱 한 잔이면 충분했는데, 욕심을 부린 탓에 지나치게 많은 원두를 부어버렸다. 그만큼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해졌다. 조급함은 늘 본질을 흐리게 만든다. 욕심은 스스로를 잃게 한다. 어쩌면 나 역시 그랬던 건 아닐까.
손끝에 들어가 있던 힘을 풀고, 다시 천천히 그라인더를 돌렸다. 그러자 다시 기분 좋은 떨림과 향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조급함에 느긋함을 더하고, 원하는 것은 하나씩 이뤄가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은 원두를 끝까지 갈아내며 온몸에 퍼지는 떨림과 울림, 그리고 향기 속에서 오랜만에 편안함을 느꼈다.
올해는 더 많이 채우는 대신, 천천히 갈아내며 향을 기다리는 법을 연습해보려 한다.
조급해지면 멈추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속도로 하루를 건네는 연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