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저널 publish 때 저작권 윤리규정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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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단독]해외 저널에 ‘공저자 끼워넣기’ 들통…논문 게재 취소된 교수 (서울신문, 2021-01-15)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210115500156
2- [단독] 해외 저널이 게재 취소한 논문…연세대 “연구윤리 문제 없다” (서울신문, 2021-06-04)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210604500166
본문으로 들어가기 전 부연설명을 위해 긴 서론을 시작해야 할 것 같다.
학부시절 나는 유독 연구 (research)를 좋아했다. 학부 수준에서 뭔가 대단한 연구를 한 건 아니고, 그저 수업시간에 배운 설문조사나 인터뷰 등의 연구방법론을 토대로 냄비받침 정도로 쓰기에도 부족한 하찮은 수준의 논문이나 보고서 따위를 쓴 게 전부이지만, 그래도 그 과정 자체를 즐겼다. 연구에 대한 이러한 '순수한' 열정과 즐거움은, 자연스럽게 학부 졸업 후 석사과정이라는 진로로 이어졌다. 내가 좋아하는 연구주제로 마음껏 연구를 해보면서 논문의 제1저자로 작업해보기도 했고, 아니면 선배들의 석사 학위논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뜯어고치는 revision을 통해서 공동저자로 참여하기도 했다.
여기서 잠깐!
논문 저자의 의미에 대해 생소하신 분들이 있을 수도 있기에 관례적인 표현을 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구글링을 통해서 내가 가장 마음에 드는 해석을 가져와봤다.
- First author = did most of the work, usually the one who wrote the paper
(제1저자 = 연구에 가장 많이 기여한 해당 논문의 원작자)
- Last author = usually the PI whose grant paid for the work
(마지막 저자 (혹은, 교신저자) = Principal Investigator (PI)라고 해서, 해당 연구 자체가 가능하도록 grant를 제공한 사람으로서 보통은 지도교수가 배치됨)
- Everyone in-between = other people who worked on the paper, often in descending order of contribution
(그 사이에 배치된 모든 사람 = "공동저자"를 의미하는데, (적어도 내가 경험한 사회과학 학계에서는) 결코, 죽었다 깨어나도 제1저자만큼의 의미를 갖지는 않고, 그냥 "나머지 기타 등등" 정도로 보면 됨)
상기 관례적인 개념에 따르자면, 나는 석사과정 때 절반 정도는 제1저자로서 작업을 했고, 나머지 절반 정도는 그냥 "나머지 기타 등등"으로 참여해서 논문을 publish 한 것으로 보면 된다. 내 석사 시절 2년은, 내가 그토록 순수하게 좋아했던 연구라는 것을 제1저자로서 밤낮없이 미친 듯이 작업하며 (그러나 그런 열정과 노력이 무색하게 망해보기도 하는!) 지적 호기심을 최대한으로 발휘해 본 시간들이었으며, 한편으로는 적어도 내가 선택한 연구실 문화와 학계는 내가 원하는 게 아니었음을 뼈저리게 깨달은 시간들이기도 했다. 그래서 나름 깊은 고심과 방황 끝에 석사과정을 끝으로 더 이상 제도권 내에서 연구는 하고 싶지도 않고, 할 자신도 없다는 마음이 들어서 취직의 길로 들어섰다. 학부를 칼 졸업하고 쉼 없이 6년을 달려온 터라, 이제는 그만 학교 울타리를 빠져나와 한 조직에 신입으로 일해보는 경험도 내 인생에 필요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결정을 한 게 벌써 4~5년 전이다. 그 짧지 않은 시간 동안에도 좋은 해외대학으로 phd를 떠나는 학부 동기나 선후배를 볼 때, 내 마음속에는 부러움이 샘솟기도 했고, 그런 마음이 짙어질 때면 괜히 내일이라도 당장 phd에 apply를 할 것처럼 단단한 마음을 품고 이미 해외에서 phd를 밟고 있는 선배들에게 메일을 보내서 궁금한 것을 묻기도 했고, 또는 다른 전공으로 phd를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타 전공 교수님을 찾아가 RA로 들어가겠다고 근거 없는 야심을 보이기도 했다. 학계에서는 학계를 떠나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좋아하지 않을 것이란 한 선배의 조언을 듣고, 직장을 다니면서 한국사회과학자료원 같은 기관에서 열리는 연구방법론 세미나들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나는 phd에 지원조차 하지 않았던 것을 보면, 영화 <김종욱 찾기>에서 공유가 첫사랑을 떠올리며 결국 고백은 하지 않았던 것에 대해 "절실하지 않았고 끝까지 사랑하지 않았던 거예요. 끝까지 사랑할 만큼 절실하지 않은. 딱 그 정도 가치였을 뿐"이라고 말하는 scene이 있는데, 나름 변명을 하자면 그 대사가 내가 연구에 대해 갖고 있던 마음과 똑같았다. 결국, 내게 연구는 쉽사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첫사랑" 비슷한 게 아니었을까.
이 정도로 연구에 대한 감정을 정리하고, 나도 점점 직장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다지고 있던 어느 날, 메일 한통을 받았다. 정확히 2019년 11월 19일에 온 메일이었다.
Dear First Author A; Second Author B (=내 이름); Corresponding Author C
It is a pleasure to accept your manuscript entitled "XXX" in its current form for publication in ***. Please note, no further changes can be made to your manuscript.
Please go to your Author Centre at AAA to complete the Copyright Transfer Agreement form (CTA). We cannot publish your paper without this. (...)
거의 자정쯤에 '이게 무슨 (개)소리지?' 하는 생각으로 해당 메일을 전부 읽었다. 내가 석사 시절에 제1저자로 쓴, 심지어 온 마음과 열정을 쏟아부었지만 결국에는 망했다는 씁쓸함을 안겨준 연구, 그래서 해외용은커녕 국내용으로도 생각조차 하지 않은 그런 습작이었던 연구를 내가 졸업하고 5년 뒤에, 내가 졸업한 이후 publish 된 관련 최신 문헌 정리만 추가된 채, 그 외 모든 것은 그대로인 채의 글이 해외저널에서 게재 확정을 받은 것이다. 여기까지는 좋다. 그래 뭐, 더 이상 학계에 돌아갈 생각도 없고, 망했다고 생각한 논문이 국내도 아닌 해외저널에 실린다면 뭐,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하고 넘어가자.
그런데 다시 보니 이건 안 되겠구나 싶었다. 내 이름이 제1저자 위치가 아니라, "Everyone in-between"인 제2저자 혹은 공동저자 자리에 배치된 채로 게재 확정을 받은 것이다. 에이 설마 아니겠지, 생각하며 연구실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해당 논문은 이미 "accepted for publication"으로 실적화 되어 있었는데, 역시나 내 이름은 두 번째에 있었다. 너무나도 분노스러웠다. 정말 말 그대로 내 '피땀 눈물'이 배어 있는 연구를 이렇게 스틸하고 제1저자로서의 저작권 위치까지 한마디의 상의도 없이 무너뜨리며 본인의 현재 박사과정 학생에게 제1저자를 내어 주었다는 사실이 나를 너무나도 분노하게 만들었다. 상기 메일에 기재한 대로, 해당 저널은 모든 저자가 특정 Copyright Form에 내용을 기입하도록 강권하고 있었다. 나는 분노했지만 한편으로는 지난 4~5년 간 얼마나 연구를 안 했으면 지금에 와서 내가 석사 시절 망했다고 생각한 것을 논문이랍시고 게재 확정을 받는 걸까 하는 불쌍한 마음도 들어서 괜히 피곤하게 따지기보다는 그냥 무대응 노선을 취하기로 했다. 그다음 날 석사 때 지도교수, 즉 상기 메일의 Corresponding Author C로부터 "축하합니다!"와 같은 무양심의 전체 회신 메일을 받을 때에도 그냥 넘어가기로 한 내 마음을 단단히 지켰다.
그런데 해당 저널의 Editorial Office에서는 Copyright Form을 작성하라는 메일을 계속 보냈다. 그래서 결국은 답장을 했다. 대략 이렇게.
안녕하세요. 메일 고맙습니다. 그런데, 제 이름은 그냥 빼주세요.
그랬더니 Editorial Office에서는 바로 다음과 같이 답장이 왔다. 대략 이렇게.
안녕하세요. 회신 고맙습니다. 확인차 다시 한번 물어볼게요- 진짜로 귀하의 이름이 이 저널에서 완전히 제거되는 것을 원하는 건가요?
나는 귀찮은 마음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렇게 정확하게 짚고 넘어가고자 하는 Editorial Office의 직업정신이 고마웠다. 그렇지만 나는 사실을 말하기보다는 다시 한번 처음 마음먹은 대로 다음과 같이 답했다.
네, 말씀드린 대로 제 이름을 완전히 제거해 주세요. 다른 두 저자 이름만 남기시고요. 만약에 왜 그랬냐고 그들이 물어보면, 그냥 제가 그렇게 결정했다고 하세요. 번거롭게 해 드려서 죄송합니다.
이제 마무리가 되나 싶었다. 그런데 그 Editorial Office 직원은 강력했다. 최대한 원문 그대로, 그 직원의 마지막 답변 메일을 보여주고 싶다.
Dear Ms. XXX
As part of the submission process, you are asked to warrant that all individuals who could be considered authors have been listed as authors on your submission. Anyone who has not made a substantive contribution to the authorship of the article should be included in the acknowledgements, rather than as an author. Our journals are members of the Committee on Publication Ethics (COPE, www.publicationethics.org) and act in accordance with the principles outlined by COPE.
The attached document details the criteria expected to qualify an author’s contribution. For authors to be added or removed from a paper, all authors on the paper must confirm this change, and confirm whether they have made substantial contributions to the paper, using the attached document for reference.
Unfortunately we will not be able to proceed with the paper, until the matter has been resolved.
Editorial Office 측에서는 저자로 나열된 사람들이 정말 COPE 라는 윤리규정에 맞게 진정 "저자"라고 정의되고 상호 합의 하에 저자라고 기재되어 있는 것인지를 소명하라는 입장이었다. 저널 측에서 보내준 COPE 라는 저작권 윤리규정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Our journal subscribes to the authorship principles outlined by the International Council of Medical Journal Editors (http://www.icmje.org/recommendations/browse/roles-and-responsibilities/defining-the-role-of-authors-and-contributors.html). Within this, for someone to be considered an author, they must meet all of the following four criteria:
· Made Substantial contributions to the conception or design of the work; or the acquisition, analysis, or interpretation of data for the work; AND
· Drafting the work or revising it critically for important intellectual content; AND
· Final approval of the version to be published; AND
· Agreement to be accountable for all aspects of the work in ensuring that questions related to the accuracy or integrity of any part of the work are appropriately investigated and resolved.
간단하게 말하면, COPE에 따르면 저자 (author)란 1) 해당 연구의 개념과 모델 설정 또는 데이터의 취합, 분석과 해석 등에 상당한 기여를 했고, 2) 해당 연구를 중요한 지적 콘텐츠로 만들어 내는 데 있어 초안을 작성했거나 수정을 가했고, 3) 해당 연구가 publish 되는 데 최종 동의를 했고, 4) 연구의 모든 면에서 책임이 있음을 동의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이러한 기준에 따라 저자가 복수명이라면 그 기여도에 따라 논문에 어떻게 저자 순서를 기재할지 결정하라는 것이다.
갑자기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아, 결국은 진실을 말해야 하는 것인가!'
나는 결국 진실을 말했다. 그 게재 확정된 논문은 내 영문 Conference paper 와 국문 paper 그리고 그 외 여러 가지 자료들을 있는 그대로 취합하여 정말 많이 양보해도 90% 이상은 그냥 다 내 거 복사+붙여 넣기 한 거라고. 그런데 왜 내가 제1저자가 아니고 공동저자냐고. 난 내 거가 투고되는지도 사전에 알지 못했다고.
이후 내 사건(!)은 해당 저널의 윤리위원회 팀의 Rights Executive에게 포워딩되어 편집장으로부터 상기 열거한 COPE 규정에 따라 윤리심사를 받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의 요청하에 그 논문이 거의 다 내 거임을 증명하기 위해 모든 메일과 백업 파일들을 다 뒤져서 증거가 될만한 모든 것을 긁어모아 보내주었다. 그리고, 최초 문제제기 이후 약 8개월이란 시간 동안 끊임없이 "Gentle reminder" 메일을 수차례 보낸 뒤에서야, 정확히 2020년 7월 15일에 다음과 같은 최종 컨펌 메일이 왔다.
Dear XXX
Thank you for your email.
After carefully reviewing all the material to hand, the Editor has recommended the journal rescinds the acceptance of the manuscript.
This matter has been investigated in line with the principles outlined by the Committee on Publication Ethics (COPE, www.publicationethics.org).
I can confirm the other authors of the paper have been informed of this decision, and the paper was been withdrawn in our systems.
Thank you again for bringing this to my attention.
다시 한번 강조하면, 최종 판결은 다음과 같다.
After carefully reviewing all the material to hand, the Editor has recommended the journal rescinds the acceptance of the manuscript.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rescind"다. "법률/ 계약/ 결정 등을 폐지하다" 라는 뜻이다. 그렇다. 내 문제제기에 대해서 저널 측은 기꺼이 귀를 열어주었고, 결국 해당 논문을 publish 하지 않기로 최종 결정한 것이다.
최종 결과가 나오기까지 나름대로 기대 반, 걱정 반의 심정이었는데 저널 측의 최종 결정은 참 반가웠다. 그래, 아직도 세상은 진실이 통하는구나. 아직은 살만한 세상일 수도 있겠구나. 개인의 기쁨보다는 이런 "안도감"을 느꼈고, 다시 학계로 돌아갈 생각은 없지만 잠시나마 연구에 모든 열정을 불태웠던 사람으로서, 앞으로 학계에서 양질의 논문이 "저작권의 권리침해 없이" publish 되려면 도대체 어떠한 제도와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하는가에 대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준 경험이었다.
물론, 이후에 지도교수 (Corresponding Author C)나 First Author로 들어간 박사과정생 모두에게서 미안하다는 메일 따위는 받지도 못했다.
찾아보니 우리나라도 다음과 같은 저작권법이 있었다.
저작권법 [시행 2020. 8. 5.] [법률 제16933호, 2020. 2. 4., 일부개정]
제137조(벌칙) ①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개정 2009. 4. 22., 2011. 12. 2., 2020. 2. 4.>
1. 저작자 아닌 자를 저작자로 하여 실명ㆍ이명을 표시하여 저작물을 공표한 자
(Source: 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그렇다. 저작권법 제137조 제1항 제1호가 있는 한, 프로 연구자는 물론이고, 나와 같은 Ex-석사연구생의 졸작도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게 아닐까 기대해 본다. 해당 법령에 대한 보다 자세한 해설은 법률신문에 실린 박종명 변호사님 (사시 45회)의 글을 빌리고자 한다. (여담이지만, 현재는 독일계 글로벌 푸드테크 기업 딜리버리히어로 코리아 법무팀에서 Legal Councel로 재직 중이신 것 같다.)
저작권법 제137조 제1항 제1호는 저작자 아닌 자를 저작자로 하여 실명·이명을 표시하여 저작물을 공표한 자를 형사 처벌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대법원은 위 규정이 실제 저작자(혹은 비저작자)의 인격적 권리뿐만 아니라 저작자 명의에 관한 사회 일반의 신뢰도 보호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기 때문에, 저작자 명의를 허위로 표시하여 저작물을 공표한 이상 사회 통념에 비추어 사회 일반의 신뢰가 손상되지 않는다고 인정되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실제 저작자의 동의가 있었다 하더라도 범죄는 성립한다고 판시한다(대법원 2017. 10. 26. 선고 2016도16031 판결).
Source: [판례해설] 저작자 아닌 자를 저작자로 표시할 경우의 형사책임 (2018.03.13)
이제 슬슬 글을 마무리해야 할 것 같다.
내가 지난 2013년 학부 4학년 때 졸업 후 석사 진학을 목표로 한 후 석사 지도교수 밑에서 소위 "연구실 인턴" 생활을 하며 당시 박사과정생의 데이터 취합을 도와주고 세미나를 참석할 때만 해도, 내 석사 시절의 마무리가 이렇게 될 줄은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누가 이러한 파국을 예상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런데도 인생은 이렇게 저렇게 흘렀고, 지금 검색해 보면 내가 석사 때 publish 한 논문 하나가 30개의 citation 을 기록할 정도로 소정의 성과도 얻었다. 화분에 물 주기 같은 잡일부터 나름 고도의 논문 publish 작업까지 쉴 틈 없이 일했던 내 석사 2년 과정은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내 거는 물론이고 타인의 저작물에 대해서도 최대한 권리를 지켜주는 것", 즉 저작권 (authorship)에 대한 기본적인 마인드를 직접 부딪치며 체화한 시간들이 아니었나 회고해 본다.
상기와 같은 내 경험이 특히 현재 연구를 업으로 삼고자 하거나, 업으로 삼고 계신 분들께 소소한 참조가 되기를 바란다. 건투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