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쉬워지지 않는다. 단지 더 강해질 뿐이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상사를 직접 선택할 수 없다는 것만큼 큰 비극은 없다. 나는 소위 자격지심으로 똘똘 뭉친 상사와 일하는 것이 참 힘들었다. 업무지식은 제한적인데 언제나 지적을 하고 혼을 내야만 직성이 풀리는 타입이었다. 89년도에 입사해서 같은 직장에서만 30년 근무했으니 당연히 나보다는 아는 게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숫자를 다루는 게 필수인 부서에서 VLOOKUP도 할 줄을 모르니 나중에는 말문이 막혔다. 연말에 연봉 관련해서 궁금한 점을 물었는데 급발진하며 하는 소리가 "지금 내가 매니저 역량이 없다는 거야? 그럼 다른 팀으로 가던지! 자꾸 이렇게 삐딱하게 굴래? 나한테 불만이 아주 많구나?" 등의 논점 이탈과 비난이었다. 건설적인 대화 따위는 애초에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도둑이 제 발 저린냥 노발대발하길래 감정싸움만 되어 버렸다. 그래도 상사니까 잘못했다고 해야지 생각해서 당일 밤 10시 반에 사과 메일을 보냈는데 읽고 나서도 다음날 다른 동료에게 내 뒷담화를 하기 바빴다. 작정하고 나를 미워하니 그럼에도 호의를 베풀려는 내 노력은 그저 그 상사의 갑질을 심화시킬 뿐이었다. 그래서 그 상사와의 사회생활을 포기했다. 즉, 더는 친절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이다. 일만 했다. 내가 강하게 나가니, 그 상사도 내 눈치를 봤다. 그렇게 1년 반 정도를 더 지내다, 나는 퇴사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내게 남은 건 "자유"라는 선물이었다. 이러한 경험을 토대로, 다음과 같은 단상을 정리해 본다.
1. 악연 앞에 장사 없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은 당신에게 조언할 것이다. "사회생활 해야지, 그래도 상사니까." 억울해도 사실 이건 맞는 말이다. 나도 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다. 하지만 선택은 본인에게 있다. 이건 이성적이기보다는, 누가 가르쳐서 될 문제라기보다는, 온전히 내 마음과 직감의 문제다. 나의 경우에는 이미 임계점을 넘었다는 느낌이 강했고, 조직생활이 맞지 않았고, 다른 진로에 대한 동경이 있었기 때문에 사회생활을 포기함으로써 나 자신을 보호하고자 했다. 분명히 우리 모두는 각자의 방법이 있을 것이다.
2. 인생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내 마음"에 드는 게 중요하다. 네임밸류가 없지 않은 직장이었지만, 나는 상사의 반복되는 갑질에 지쳐, 끝내 애사심을 빌드업하지 못하고 여러 번 심리 상담과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말 그대로 행복하지 않았다. 한 직장에서 35년을 일하시고 정년 퇴임하신 아버지께서는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여러 인간 유형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추후 높은 자리에 올라갔을 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라며 말씀하셨지만, 나는 남들만큼 커리어 욕심이 없어서인지 그 말을 듣고도 마음이 다잡아 지지 않았다. 결국 사람은 "생긴 대로" 사는 것이고, 본인이 행복하려면 본인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아내는 게 중요하다. 그 과정에서 많은 오지라퍼들이 있겠지만, 그중에 옥석을 가려내고 진심만을 골라내면 그만이다.
3. 최고의 복수는 무관심이다. 나를 괴롭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리고 그 괴롭힘의 빈도가 잦고, 그 강도가 나날이 심화되며 상대방과 말이 통하지 않아 갈등 해결이 쉽지 않다면, 그 사람이 미워지고 복수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런데 무슨 수로 복수할 것인가? 어떻게 복수할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복수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는 쉽지만, 막상 복수를 하려니 그 "방법"을 찾는 건 어렵다. 복수심과 복수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그래서 나는 그냥 복수심 선에서 만족하기로 했다. 그랬더니 곧 복수심이 무관심으로 변했다. 이따금씩 기억날 때면 그냥 불쌍하다 생각하고 무시해 버린다. 무관심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로써 내가 내 인생에서 행복할 수 있는 기회와 순간이 더욱더 늘어나는 셈이다.
인생은 쉬워지지 않는다. 단지 더 강해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