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ho Feb 22. 2024

인종 차별에 대한 젠데이아의 소론

By Zendaya (2016)

[저자 소개] ; 젠데이아 (Zendaya)는 영화 스파이더맨 (Spider-Man), 듄 (Dune) 시리즈로 이미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습니다. 현재 시점 기준 (2024년 2월), 영화 듄: 파트 2 홍보를 위해 첫 내한 중이기도 합니다. 작년에는 HBO 틴 드라마 시리즈 유포리아 (Euphoria)로 첫 Golden Globe Awards를 받았습니다. 이 외에도 영화 테넷 (Tenet)의 주인공이자, 덴젤 워싱턴 (Denzel Washington)의 아들인 존 데이비드 워싱턴 (John David Washington)과 함께 연인으로 출연한 영화 맬컴과 마리 (Malcolm & Marie) 역시 그녀의 필모그래피 중 하나입니다.


[본 글에 대하여] ; 젠데이아는 1996년생입니다. 현재 미국 나이로는 27세인데, 그녀가 19세였을 때 패션지 GRAZIA에 보낸 아름다운 에세이가 있습니다. 바로 인종 차별주의 반대, 즉 Racial Justice에 관한 글입니다. 젠데이아는 스스로를 "밝은 피부를 가진 흑인 여성 (a light-skinned black woman)"으로 규정합니다. 이런 피부색이 할리우드에서 "특권"으로 작용되었고,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현재 위치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참고로 그녀의 아버지는 나이지리아계 흑인이고, 어머니는 독일계 백인입니다.


원문:

https://graziamagazine.com/us/articles/zendaya-essay-on-dealing-with-racism/



당신은 우리 사회가 유색인종 여성 문제 (women of color)를 다루는 데 있어서 진보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우리가 이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우리가 진보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그런 질문을 아예 하지 않거나 (didn’t even ask), 할 생각조차 없었던 (didn’t even care to ask) 시절이 있었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달라졌다.


흑인 여성들에 대한 비판과 모욕은 여전히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 분명 여전히 발생하고 있다 (definitely still happening) - 적어도 우리는 지금 이 대화를 나누고 있고, 이야기하고 있고, 뭔가를 시도하고 있다.


누군가가 인종 차별적인 모욕을 당했을 때 어떻게 반응하고 행동할지는 알 수 없겠지만, 사실 그 반응과 행동을 예측하는 것보다도 중요한 것은, 먼저 그 누군가가 스스로를 사랑하고 존중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왜? 스스로 내적으로 자신감이 충만하다면, 그것이야말로 온갖 공격들이 사적으로 영향을 미치지 않을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살다 보면, 사람들이 무식한 - 혹은, 배우지 않아 모르는 - 얘기들을 하고, 당신은 그에 대해 배웠기 때문에 그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는 상황들에 맞닥뜨리게 된다.


그때 당신은 그냥 모른 채 하고, 무례한 코멘트를 날리고, 상대방과 왔다 갔다 디스전을 펼칠 수도 있을 것이다. 혹은, 당신은 상대방의 언행이 잘못되었음을 알려주고, 잘못을 깨닫게 하고,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공격적인 자세를 보이고, 필터링 없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을 말하는 것 - 나는 그 느낌을 알고 있다. 나는 마음을 상하게 하는 말들을 내뱉고 나서 그냥 자리를 떠버리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다. 그러나, 일단은 그에 대해 생각해 보고, 뇌를 충분히 활용하는 것이 언제나 더 영향력 있다.


왜냐하면, 궁극적으로 우리는 모두 같은 처지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인간애 (humanity)라는 점에서 그렇다.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는 오직 한 개뿐이고, 우리가 벗어나고 싶을 때 언제든지 벗어날 수 있는 게 아니다. 우리는 모두 여기에 갇혀 있고, 서로에게 감사하며, 서로를 사랑해야만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과거의 특정 상황들로 인해서, 혹은 인종 차별에 대한 무감각 (racial insensitivity)이나 신체 공격 (body bashing)과 관련해서, 다른 사람들이 문제 해결을 위해 내 목소리를 필요로 한다고 생각한다. 행운스럽게도 나 자신은 내 몸과 관련해서, 혹은 내가 남들에게 어떻게 보이는지와 관련해서 크게 고민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몸과 관련해서 고민하고 있는 너무 많은 사람들을 알고 있다. 나는 말 그대로 매일매일, 만족스럽지 않은 자신들의 피부에 대해서 고민하는, 지나치게 많은 가족 구성원들과 친구들을 갖고 있다. 이것은 심각한 문제이고, 농담할 사안이 아니다. 이것은 가볍지 않고, 웃기지 않으며, 코미디가 아니다. 이건 현실이다.


그리고 그것이 내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해서, 나는 그 문제를 겪고 있지 않다고 해서, 내가 다른 사람의 신체 공격 (body bashing)이나 신체 조롱 (body shaming)을 그저 방관하고 지켜봐야 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내가 그러한 문제들에 대해 개선을 촉구하기를 바라고, 아직 스스로의 목소리를 찾지 못한,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있다. 여기 내 목소리가 있다: 때때로 침묵은 최고의 옵션이다. 그러나 때때로 그렇지 않다. 목소리를 내야 할 때가 있다. 그리고 그것은 괜찮다.

매거진의 이전글 할시 (Halsey); 낙태는 내 삶을 구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