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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 Feb 24. 2024

콜린 패럴의 동성결혼 합법화 지지

By Colin Farrell (Nov, 2014)

[저자 소개] ; 콜린 패럴 (Colin Farrell)은 1976년 아일랜드 태생의 배우입니다. 굉장히 유명한 배우이면서도 메이저 규모의 영화나 블록버스터 급의 영화에만 치중하지 않고, 오히려 다양한 장르와 다채로운 스펙트럼의 독립 영화에도 골고루 참여해 왔습니다. 현재 시점 기준으로 (2024년 2월) 위키피디아에 기록된 작품 수만 50여 편입니다. 그 중 몇 가지만 소개하자면 :


톰 크루즈와 함께한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 (Minority Report, 2002), 알파치노와 함께한 영화 리크루트 (The Recruit, 2003), 히스 레저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공백이 된 역할에 조니 뎁, 주드 로와 함께 참여해 완성한 영화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 (The Imaginarium of Doctor Parnassus, 2009), 제이슨 베이트먼, 제니퍼 애니스턴, 케빈 스페이시, 제이미 폭스 등 유명 배우들과 총출동한 코미디 영화 스트레스를 부르는 그 이름 직장상사 (Horrible Bosses, 2011), 아놀드 슈워제네거의 1990년 영화를 리메이크한 영화 토탈 리콜 (Total Recall, 2012), 드라마 파친코의 코고나다 (Kogonada) 감독이 두 번째로 만든 영화 애프터 양 (After Yang, 2021), 콜린 패럴이 첫 번째로 오스카 남우주연상 노미네이션을 받았던 영화 이니셰린의 밴시 (The Banshees of Inisherin, 2022) 등이 있습니다.



[본 글에 대하여] ; 콜린 패럴에게는 큰 형이 있습니다. 이름은 에이먼 (Eamon)이고, 동성애자입니다. 에이먼은 2009년 캐나다에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당시 조국 아일랜드에서는 동성결혼이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이후 아일랜드는 2010년 동성 커플에게 결혼한 부부와 동등한 권리를 부여하는 시민 결합 (civil partnership)을 인정하였고, 2015년 의회 입법이나 법원 판결이 아닌, 국민투표 (referendum)로 동성결혼을 합법화한 첫 국가가 되었습니다. 당시 국민투표는 “결혼은 성별과 상관없이 법에 따라 두 사람에 의해 계약될 수 있다”는 문구를 헌법에 삽입할지를 물었습니다. 이에 약 450만 아일랜드 전체 인구 중 300만 명 이상이 참여해 찬성 62.1%, 반대 37.9%를 기록했습니다. 찬성이 압도적이었습니다. 이러한 결과는 아일랜드가 유럽에서 가장 보수적인 가톨릭 국가였기 때문에 더욱 고무적이었습니다. 얼마나 아일랜드가 보수적인 국가였냐 하면, 이혼조차 1995년 합법화되기 전까지는 불법이었다고 합니다. 아일랜드에서 동성결혼이 합법화되기 전, 2014년 11월에 콜린 패럴은 아일랜드의 한 신문에 동성결혼 합법화를 지지하는 글을 기고했습니다. 이를 번역하여 다음과 같이 소개합니다.


원문 :

https://www.vanityfair.com/hollywood/2014/11/colin-farrell-marriage-equality-ireland



저의 형 에이먼은 동성애자가 되기를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는 눈에 아이라이너를 칠하고 등교하는 것을 선택하기는 했죠. 이렇게 눈화장을 하는 것은 그가 매일 겪고 있었던 학교 폭력에 대한 실용적인 (pragmatic) 대응책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학교 폭력을 피하기 위해 굳이 눈화장을 하지 않는 게 더 실용적인 대응책일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그는 늘 자기 자신에 대해서 자랑스러워했습니다. 스스로 자랑스러워했고, 반항적이기도 했고, 물론 도발적이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이 그를 주먹질로, 조롱으로, 혐오스러운 비웃음으로 괴롭힐 때에도, 그는 그 잔인한 사람들의 얼굴을 마주하고도 진실성 (integrity)과 존엄성 (dignity)을 유지했습니다.


저는 현재 제 형을 주기적으로 때렸던 그 학교 폭력 가해자들이 어디에 있는지 모릅니다. 어쩌면 그 중 몇 명은 성가신 과거 따위는 잊어버리고 마음의 평화를 찾았을 수 있습니다. 어쩌면 그들은 여전히 술집에서 동성애자에 대한 비방과 공격을 안줏거리 삼아 떠들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현재 제 형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는 더블린 (Dublin)에 있는 그의 집에서 그의 남편 스티븐과 몇 년째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들은 제가 아는 가장 건강하고 행복한 커플입니다. 그들은 결혼 서약을 위해 아일랜드에 있는 결혼식장이 아닌, 조금 먼 캐나다까지 이동해야 했습니다. 캐나다는 그들이 결혼한 곳입니다.


이러한 배경 때문에 아일랜드의 동성결혼 합법화에 관한 국민투표는 제 개인적인 일이기도 합니다. 제 형이 꿈에 그리던 결혼을 현실화하기 위해 그의 조국인 아일랜드를 떠나야만 했다는 사실은 말도 안 되는 (insane) 것입니다. 정말 말도 안 됩니다.


이제 정의의 저울을 바로잡을 때입니다. 각 개인의 목소리가 들리도록 내년에 투표해 주십시오. 우리는 인생에서 얼마나 자주 역사를 바꿀 수 있습니까? 심지어 그저 개인의 사적인 역사에 국한되지 않는, 가족을 위한, 사회를 위한, 공동체를 위한, 전 세계를 위한 역사를 말이죠. 우리의 투표를 전 세계가 지켜볼 것입니다. 우리는 모범을 보일 것입니다. 희망의 빛을 향해 나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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