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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금나비 Oct 26. 2024

걸으며 걸으며

걸으며 걸으며 한 여인을 생각한다

살아생전 입술을 무덤처럼 닫고

남편에게 듣고 싶은 말 한마디는 무얼까     


두 홀씨가 붙어서 고층 창문 밖으로,

지나가는 사람들과 가로수를 보며 지난다

며칠 뒤에 흰나비 한 마리가 그 홀씨를 찾아 떠다니는 걸 본다    

 

여인은 젖은 입술을 닫고 마른 잎의 바스락 거리는 귀를 열었다

창문 밖으로 축축한 가랑잎의 소리가 바람결에 스치고

파르르 떨던 흰나비가 날개를 띄우며 여인의 눈가에 머문다


걸으며 또 걸으며 그 여인을 생각한다

검은 새가 산등성이를 타고 고개를 넘는다

티끌 같던 상처마저 눈물로 한평생 씻어 보내고

꼭 다문 입술에 홀씨가 보인다    


인연의 굴레는 여인의 눈빛에서 낙엽 되어 떨어진다

겨울바람을 맨 몸으로 맞는 한 그루의 나무가

듣고 싶은 말 한마디도 그럴까     


스르르 닫히는 귀에 흰나비가 앉아 있다가

남편 곁으로 다가와 젖은 입술에 앉았다

나비를 흔들며 스치는 바람 소리

미안하고, 고마워.     


앉은 나비가 입술 위에 뜨며 바람결에

빛이 든 창문 밖으로 홀씨를 따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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