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는 두 개가 걸쳐있는 걸 보았는데 이튿날도 모과가 있길래 아무나 가져가라고 거기 놓은 건가 싶었다. 그런데 다음날 가져간 걸 보면, 어떤 분이 깜박하고 안 가져간 게 틀림없었다. 다람쥐가 도토리를 모아놓듯. 엘리베이터가 쉼터인가 보다.
어제는 분리수거와 산책을 위해서 엘리베이터를 세 번 탔는데, 두 번은 담배 냄새로 가득 차 있었다. 마스크를 써도 냄새가 스며들어왔다. 늘 있는 일이라 1층까지 내려가는 동안 숨 한번 참으면 됐다.
엘리베이터 안은 어떤 기억이나 기대가 머무는 곳이 아니다. 방문을 지나듯 오르락내리락 대는 문틈의 1초라고 생각했었다. 두 번째 엘리베이터를 탈 때만 해도 그랬다. 하지만 세 번째 타는 순간은 달랐다. 며칠 전에 봤던 의문의 모과가 두 배로 걸쳐있었는데, 담배 냄새는 사라지고 상쾌한 모과 향이 났다. 모과가 두 개에서 네 개가 되니까 엘리베이터 안이 모과향으로 넘쳐났다.
엘리베이터가 모과나무인 기분! 이 안이 쉼터가 됐다. 모과 향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을 깨웠고, 이곳에서 나오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들긴 처음이었다. 엘리베이터 안이 자연 속으로 들락날락할 수 있는 상상의 낙원이 된 것이다.
모과나무의 노랗게 매끄러운 열매를 만져본다. 향을 흠씬 맡으면 이파리가 바람에 나부낀다. 열매가 똑 떨어지고 바닥에 뒹구는 상상. 나는 동화에서 갓 나온 앨리스가 돼 본다. 이 안은 모과나무로 만발하다.
이곳에 들어오면, 온종일 자연이 오르락내리락한다. 그분이 자연을 놓고 갔다. 깜박하고 놓고 간 그분의 건망증이 지금까지도 감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