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는 아파서 들어간 게 아니라 마라탕에 중독돼서 격리된 게 틀림없어! 하늘에서 내린 벌이지.'
딸은 마라탕 사달라 조르다가 내 증거자료에 포기하고, 자기 돈으로 사 먹겠다고 했다. 그런데 이른 시간이라 가게 문은 안 열어서 주문을 할 수 없었다. 급한 막내는 배가 고팠다. 아침을 남기고 생떼를 내는 중이다. 그리고 만사천 원도 아까웠나 보다.
"엄마, 라면 끓여줘! 어제 먹어야 했는데 못 먹었잖아!"
"마라탕 사 먹는다며?"
"그냥 라면 먹을래!"
나는 기선을 잡은 김에 더 세게 나갔다.
"아침에 남긴 음식 먹으면 라면 끓여줄게."
"싫어, 안 먹어!"
"그럼, 엄마도 못 끓여줘!"
"그래? 나 쫄쫄 굶을 거야!"
나는 어제 먹다 남긴 목살콩나물볶음에 김치를 넣고 볶았다. 김을 뿌리고 계란을 얹어 언니와 오빠를 챙겨주고, 막내는 계란 대신 치즈를 잔뜩 올려 미역국과 함께 책상에 놓고 나왔다.
마이코 플라즈마폐렴은 나아도 내성이 있다고 4일 치 약을 어제 받아 온 상태라 아직 막내는 격리 중이다. 이렇게 놓고 오면 막내는 분명 먹을 거다. 앞에선 싫다 해도 삐쳐서 그렇지 금세 마음이 바뀌는 성격이란 걸 알고 있다.
'치즈를 잔뜩 넣었으니 자기가 안 먹고 배겨!
김치볶음밥에 모짜렐라 치즈를 녹려 주면 마라탕처럼 사족을 못쓰면서.'
나는 막내가 부스럭거리며 침대에서 일어나는 소리를 들은 것 같다.
20분 후면 아마 다 먹고 라면 끓여달라고 하겠지...
딸은 친구 전화를 받고 있다.
"왜 울어! 아니야.
나 내일 학교 간다!"
위로해 주는 친구에게 위로해 주는 말이 들린다!
내 마음도 엄청 위로가 된다.
"학교 가고 싶어!" 란 딸의 마음 소리를 내 마음속에 돌림노래로 저장한다.
막내가 폐렴으로 아팠던 게 의미 있는 기억이 될 것 같다. 학교에 가고 싶게 손꼽는 새로운 기억, 나도 딸이 늘 그렇게만 말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으니...
'항상 그렇지.' 하고 생각하는 관념이 꼭 그런 건만은 아닐 때가 있다.
내가 설거지하기 싫은 날만 있는 게 아니듯 딸도 학교 가기 싫은 날만 있는 게 아니다.
가고 싶어서 기다리는 날도 있다!
치즈김치볶음밥을 먹으며, 내일 학교 가서 빼빼로 나눠줄 친구를 상상하고 있을 딸이 사랑스럽다.
마라탕 사달라고 생떼를 부려도, 귀여울 때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