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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금나비 Nov 16. 2024

아들 수능 치러 가던 날

“배정학교도 가깝고 여느 수능일보다 따뜻하고, 널 위한 날이네!”     


아침에 6시에 일어난 아들은 쉽게 기상했다. 

난 며칠 전부터 ‘수능 도시락’ 메뉴를 고민했고, 그날 아침과 점심을 머릿속에 되새기면서 국을 통일할까, 말까를 알람 소리에 깨면서부터 쭉 생각하고 있었다. 몸을 일으키며 난 정했다.

‘그냥 통일하자!’

오리훈제볶음, 시금치, 김치, 계란찜, 소고기뭇국을 차려놨다. 아들이 아침을 먹기 직전에 누구에게 보내려고 하는지 모르지만 사진을 찍어 댔다. 난 어제저녁에 주문해서 새벽에 받은 합격 엿을 아들 눈에 띄지 않게 소파로 가져와 상자를 열어 메모지에 짧은 응원 글을 적어 넣었다.


점심 ‘수능 도시락’으론 돼지불고기, 시금치나물, 김치, 소고기뭇국, 새벽에 온 하루 과일 팩을 챙겨서 도시락 지퍼를 닫았다.     


아들은 평소에는 말이 없는 편인데, 자기 방으로 가서는 친구들과 깔깔거리며 몇 시간이고 통화를 한다. 늘 아침에 일어나면 밥 먹고 책가방 챙겨서 헐레벌떡 나가기 바빴다. 그런데 그날은, 일어나 내게 자꾸 말을 붙였다.

눈에는 화가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고, 

'걸리기만 해? 폭발해 버릴 테니까!' 하는 예민함이었다.

아들이 일어나서 제일 먼저 찾은 건 빨간 팬티였다. 청심환을 사준다고 해도 싫다고 했는데 빨간 팬티는 찾았다. 

"엄마, 이상하게 빨간 팬티만 없어?"     

왜 찾는지는 알지만, 아들이 화부터 내서 마음이 불안했다. 시험 못 치면 내 탓을 할 것 같았다. 나는 아들 기분이 나빠지지 않게 신경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럴 리가, 어디 있을 거야.”

나는 속옷이 들어있는 아들 서랍장을 길게 빼서 보았다.

"여기 있네, 와서 봐봐!"

"어, 있네!"

나는 팬티를 꺼내 후련한 마음으로 건넸다.      


아들의 두 번째 태클은 바지였다. ‘내 인생에 태클을 걸지 마!’ 진성 가수의 노래가 자꾸 밟혔다. 

"엄마, 바지에서 냄새 나!"

'빨라고 내놓지 않은 바지 아니야? 그러니 냄새나지!, 다 그런 건 아닐 텐데?'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나는 정신을 차리며 말했다.

"그래?"

"바지마다 다! 왜 그래?"

"아침부터 컨디션이 좋아야 하지 않을까? 바지는 탈취제 뿌리면 냄새 안 나."

나의 기분은 생각 안 하고 낮은 목소리로 나는 연기를 하고 있었다. 아들은 화를 낼 수도 없고 뭔가 기분이 풀리지 않는지 구시렁 구시렁댔는데, 나는 모른 척했다. 아들은 식탁 의자에 바지를 걸쳐놓고는 씻으러 화장실로 갔다.


나는 혹시 의자에 걸쳐놓은 바지를 입고 갈 수도 있겠다 싶어, 얼른 페브리즈를 뿌려 놓았다.

화장실 다녀온 아들이 바지에 냄새를 맡아보더니, 괜찮은지 발을 껴입었다.

'휴, 다행이다!'     

"엄마, 잠은 잤어?"

'오늘따라, 갑자기? 왜 자꾸 말을 붙여, 긴장되게. 네 기분 건드리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거 몰라!'

"잠은 잤지."

넌? 하고 물어보려고 하다가 말았다. 


식사를 마친 아들이 화장실에서 또 부른다. 

'뭐지? 화장실에서 부를 일은…. 많지 않은데? 침착하게 낮고 이쁜 목소리로 말해야지.'

"엄마?"

"응?"

"휴지?"

나는 재빨리 휴지를 가져갔다.

"여기!"     

아들은 볼일을 보고 자기 방에 들어가서 이것저것 챙기더니 또 부른다.


“엄마, 수정테이프?”

“글쎄, 누나나 동생한테 있을 것 같은데…. 깨워서 물어볼게.”

나는 큰딸 방에 들어가려다 말고, 막내 책상 서랍에서 수정테이프를 찾아주었다.

"시험장에서 수정테이프 써도 되는지 물어보고."

나는 꼭 시험관 선생님에게 물어보고 사용하라고 당부하고 싶었지만 말았다. 두 번 말하거나 당부하면 잔소리가 될 것 같아서였다. 


아들이 현관에서 신발을 신고 나가려고 할 때 불러서 엿을 주어야지, 나는 머릿속으로 아들의 동선을 살폈다.

“자, 받아!”

"이게 뭐예요?"

"합격 엿!"

아들은 초콜릿과 엿이 섞인 상자를 받아 들고는 웃으며 나갔다.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파이팅!"


그날도 아들의 기분을 살피느라 애썼다.  

엄마들의 마음은 다 그럴 것이다. 


"수고했어, 저녁 먹으라고 돈 붙였어."

"감사해요, 엄마!"

나는 시험 마칠 때쯤 전화대신 문자를 보냈다. 

7시 반에 집을 나서서 5시까지, 

하루 종일 시험만 치고 힘이 빠진 아들. 

아무 일 없이 돌아온 것에 감사했다. 


그날 싸 준 도시락도 아들이 싹싹 비웠고,

초콜릿과 엿도 맛있게 먹어준 아들이 예쁘게 보였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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