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0일, 어젯밤에 불닭볶음면을 먹은 막내가 8시 반쯤에 학원에서 집 안으로 들어오며 말했다.
“엄마, 마라탕 사줘!”
막내는 다짜고짜였다.
“어제 불닭볶음면 먹어서 안 돼!”
“그런 게 어딨어? 먹고 싶을 때 먹는 거지. 나, 시험 기간이라고!”
“저번에 얘기된 걸로 아는데, 증거도 있어! 시험 치는 달에만 마라탕 한 번 더 사주는 거잖아! 저녁 차려 놨으니까 먹고 내일 사 먹었던지.”
“싫어, 오늘 사 먹어야 해. 오늘 땅긴단 말이야!”
“그럼, 네 돈으로 사 먹어!”
나는 화가 나서 말했다. 이 말도 막내에게 빌미를 주는 말인데, 하지 말 걸 그랬다.
“알았어, 엄마 핸드폰 빌려줘! 마라탕 주문하게.”
쿠팡이츠 앱이 내 핸드폰에 깔려있어서 마라탕을 주문하고 막내가 내 통장에 금액을 이체하는 식으로 사 먹으려고 했다.
“싫어! 네 핸드폰에 앱 깔아서, 주문해!”
나는 막내가 마라탕을 안 사 먹었으면 하는데, 주문해 줄 때까지 돌림노래를 부르는 것에 지친 나머지 직접 사 먹으라고 한 것이 몹시 후회됐다. 딸의 태클이 들어올 게 뻔했기 때문이다.
"엄마, 치사해! 내 돈으로 사 먹으면 된다며? 전에는 내가 스트레스받아 안 돼 보인다며 그냥 사줬잖아! 그때는 되고 오늘은 왜 안 돼? 엄마는 거짓말쟁이야!"
“그때는 규칙이 없었을 때고, 그 후로 약속했잖아! 한 달에 한 번 마라탕 사주기로.”
막내는 어떻게 하면 마라탕을 사 먹을까 궁리 끝에 정에 치우쳤던 나의 과거를 찾아내 합리화하려 했고, 나는 규칙의 힘을 믿고 화나는 속을 누르고 있었다. 정말 마라탕 전쟁이다!
“마라탕 사주라고, 마라탕 사줘!”
나는 방에 들어가 의자로 문을 막으며 꼼짝도 안 하고 있었다. 여기서 지면 막내가 원할 땐 언제든지 마라탕을 사줘야 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엄습했다. 딸은 딱따구리처럼 문에 대고 “마라탕 먹어야 해, 어서 주문해 줘!”라는 돌림노래를 입으로 줄줄 풀었고, 나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냈다. 막내는 자기 방으로 들어가 내게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11통이나 됐다. 내가 받지 않자, 방에서 3시간째 나오지 않았다.
나는 안정을 찾고 방에서 나와 식탁에 랩을 씌워놨던 반찬을 냉장고에 넣고 주방을 정리하고 있는데, 막내가 나왔다.
“나 배고파, 반찬 뭐 있어?”
나는 못 이긴 척 대꾸했다.
“닭가슴살 덮밥.”
“싫어, 어제 먹어서 질렸어! 참치에 마요네즈!”
“알았어.”
나는 참치캔을 하나 따서 식탁에 놓고 마요네즈와 김치, 반찬을 놓았다.
“뭘 자꾸 내. 참치에 마요네즈만 있으면 되는데.”
“먹기 싫은 건 안 먹으면 되지.”
막내는 큰 공기를 달라고 해서 밥에 참치와 마요네즈를 비여서 싹싹 비워 먹었다. 안 먹겠다던 반찬도 먹었다.
딸은 저녁을 먹고, 서운함을 뱉어냈다.
“난 먹고 싶은 건 꼭 먹어야 하는 사람이야. 그런데 엄마 때문에 깨졌어!”
“안 좋은 습관이니까 깨지길 잘했지. 암튼, 이젠 꼭 약속 지켜! 즉흥적으로 먹고 싶다고 해서 꼭 먹어야 하는 건 아니야.”
서로 정신적으로 힘들었지만, 그동안 막내가 먹고 싶으면 되도록 바로 해줬던 것이 좀 과했다는 것을 알았고, 즉흥적으로 먹어야 하는 막내의 습관을 고쳐나가는데 갈등이 도움이 됐다는 것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막내와 마라탕으로 힘 겨루는 일이 '죽었다 깨어나는 것처럼' 힘들게 느껴졌지만, 이런 경험이 꼭 필요할 때가 있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
‘정말 막내나, 나나 욕봤다!’
딸이 그래도 마음을 풀고 밥 먹으러 나온 게 성숙한 마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막내야, 고마워! 엄마도 네가 저녁을 거를까 봐 미안하고, 마음이 아팠어.’
막내야, 서로 척하면 척하고 마음이 통해서 갈등이 생기지 않게 노력하자,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