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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복의 날

선거 공보물 작업 후기

주민자치회 간사 일을 한지도 3개월이 넘었다. 선거 일로부터 22일 전까지는 주민자치회 활동도 안 되고 회의도 할 수 없다. 일은 적어져도 6월부터 다시 시작될 활동을 준비하는 기간이기도 하다.

오늘은 주민센터에서 대통령 선거 공보물 작업을 하는 날이다. 선거 후보와 선거 일과 장소를 주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우편 작업을 한다. 봉투를 받아만 보다가 간사 일을 하니 이런 우연한 작업을 하게됐다.

또 다른 경험을 하러 나는 주민센터 2층 기쁨홀로 들어갔다.

자리는 세팅되어 있었다. 조가 나뉘어있고 나는 7조에 앉았다. 맞은편은 8조, 책상이 붙어있어 마주 보며 일을 했다.


4명이 한 조를 이뤄 작업을 하는데, 후보 브로셔를 모으는 사람, 선거 안내지와 합쳐 봉투에 넣는 사람, 봉투 끝에 접착된 부분의 띠를 떼고 마감을 하는 사람, 마지막으로 봉투를 모아서 끈으로 묶는 사람이 한 조를 이뤄 책상에 나란히 놓인 공보물을 정리해 작업을 시작했다.

대부분 안면이 있는 분이라 짧은 담소를 나누며 일을 하니 힘든 일도 즐겁게 할 수 있었는데, 늘 삶은 순탄하지 않은지, 아니 나만 왜 더 혹독한 경험을 해야 할까? 내가 더 예민하게 받아들여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짧은 시간의 일인데도 마음은 요동치기 시작했다. 봉투를 모아서 끈을 묶는 남성분이 마음에 걸렸다. 나는 말없이 일만하는 사람으로 표정은 굳어있었다.


이 일을 하러 오신 분은 대부분 여성이었다. 부녀회에서도 오셨다고 들었다. 남성 분이 간간이 보이는 데, 그분들은 세팅 작업을 해주셨거나 봉인한 봉투를 모아 끈으로 묶어서 한 장소에 갖다가 놓는 분이다. 그래서

제일 위에 서서 우리를 감독하는 듯 보였다. 처음에는 그분은 봉투 끝을 접어서 한웅큼 주었다. 배려라고 생각했다. 살짝 접힌 상태로 공보물을 넣어보니까 봉투에 공보물이 잘 들어갔다. 감사한 일이었다.


문제는 여기에 있었다.

8조 남성분은 우리 7조보다 훨씬 젊어서 그런지 간섭을 하지 않았다. 지켜보다가 봉투가 어느 정도 쌓이면 가져가서 우리 조 그분과 비교가 됐다.

나는 열심히 한다고 하는데 그분이 볼 때는 못마땅한 것 같았다. 내가 하는 일을 침범하기 시작했다. 건네받은 브로셔를 안내지와 합쳐서 봉투에 넣으려고 했는데,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가로채며 자신이 넣는 것이다. 순간 내 일이 없어져 당황했고, 내가 일을 멈추는 바람에 오히려 우리 조의 작업이 늦어졌다. 무엇보다 나는 자존심이 몹시 상했다. 나도 행동이 느린 편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일면식도 없었던 남성분이 짜증을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일이 경쟁할 일도 아니고 다른 조와 속도를 맞춰서 하면 되는 일인데, 이 일을 하러 온 게 후회됐다.

'대신 오는 게 아니었어!'

사실 다른 분의 일이었는데 그분이 예전에 이 일을 해보고선 안 하고 싶어 하길래(허리가 아픈 단점) 대신하겠다고 한 일이었다.


오전 7시 50분에 집합해서 주민센터 2,3층으로 나뉘어 사람들은 두 공간에서 작업을 하고, 11시까지 이 일을 마치는 게 목표였다.

한 시간의 작업이 끝날 무렵, 주민센터 행정팀장님이 앞으로 나와서 점심 먹고 다시 일하지 않게 오전 중으로 작업을 마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분발하라고 했다.

7조 남성분은 마음이 더 급해졌는지, 8조 남성분과 다르게 옆으로 와서 우리가 작업하는 걸 가까이에서 지켜봤다. 봉투가 두세 개 밖에 없는데도 자꾸 가져가며 몸을 빠르게 움직였다.

행정팀장님이 다시 나와서 이번에는 11시까지가 목표였던 일을 10시 반까지 맞춰보자며 재촉을 했다.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는데, 5조는 벌써 다했다고 했다.

7조 남성분은 급기야는 아까 했던 행동을 반복했다. 나는 몇 번 겪은 터라 적응이 돼서 뚱한 표정을 바꾸고 그분의 일을 열심히 도왔다. 봉투에 넣는 작업은 안 하고 그분이 잘할 수 있게 후보 브로셔에 안내지만 올려서 그분보다 빠르게 드렸다.

그분도 몇 번은 속도를 못 붙이고 낯설어하더니 요령을 익힌 후에는 곧잘 넣었다. 봉투를 나보다 크게 벌리는 노련함으로 쏙쏙 8조보다 빠르게 넣기 시작했다.

봉투에 접착띠를 떼서 붙이는 지인도 내가 얼굴이 펴졌다고 한 마디 했고, 나는 7조 남성분을 연신 칭찬하며 감사하다고 했다. 내 일이 반 이상으로 줄었고 예상보다 빨리 작업을 마쳤다. 10시 20분도 안 된 시간이었고 8조보다 빨리 끝마치고 도와주기까지 했다. 우리 조보다 늦은 조도 서넛 있어 보였다.

미워했던 7조 남성분도 내 마음이 밝아지니 예뻐보였다.

그리고 나보다 휠씬 민첩한 사람이 볼때 내가 답답해 보일 수도 있다는 걸 알았다.


순탄하게, 인생을 남보다 편하게 살고 싶지만

나는 남들보다 더 빌런을 만나고 힘든 일이 생기는 것 같지만

이런 경험이 독이 되는 게 아니라

깨달음이 돼서

기쁨이 되고, 복을 가져오는 걸 느낀다

좀 더 힘들게 맞는 인생의 경험들이

순탄한 경험보다 더 빠른 인생의 지름길이라는 걸.


나는 좀 더 일찍 집에 와서 아이들 식사도 챙겨줄 수 있고, 좋은 경험도 했고, 아르바이트비도 받는다!

오늘 하루는 복 중의 복, 쌍복의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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