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에게 산소 공급기를

평생 고치기 어려운 버릇 – ‘굳이?’

5형제에 둘째 아들인 남편은 다른 형제들보다 까탈스러운 편이라고 들었다. 같이 살아보니 느낀다. 집안이 정리정돈 안 되고 먼지가 있는 걸 못 보는 성격인데, 유전으로 비염에 알레르기가 있어 그 영향이 크지 않았나 싶다.

새엄마와도 사춘기 때는 갈등이 있었던 것 같다. 과거에 대해서는 묻지는 못하지만, 시어머니와 얘기하면서 알게 됐다.

남편은 고등학교 때인가 외지에서 하숙 생활을 했다. 집에 올 때면 남편은 자기 맘에 안 드는 구석을 발견하고 살림 집기 구들을 모조리 와르르 끄집어내 바닥으로 쏟아냈다고 했다. 그것이 버릇 같았는데, 나와 살면서 서로 도를 닦는 법을 터득했는지 속으로는 맘에 안 드는 것도 이제는 눈감아주는 법도 생긴 것 같다.


올 5월에 시댁에 아이들과 내려갔었다. 80대 중반인 시부모님의 살림살이는 먼지가 없으면 이상한 것이었다. 그건 인정하지만 둘째 아들 가족이, 손자·손녀를 데리고 내려온다고 했는데...

나는 시댁에 가면 유독 잠을 못 자서 날을 새고 오기 때문에 며칠이 곤혹스러웠다. 그래서 잠만큼은 호텔이나 펜션을 예약하자고 남편에게 얘기했었다. 남편은 자주 내려가지 못하고 부모님이 같이 자는 걸 원하신다며 한사코 말렸다. 어쩔 수 없이 시댁에서 2박 3일은 묵기로 했는데, 그 이불 사건 때문에 하루를 더 버티지 못하고 새벽 1시쯤에 아이들을 데리고 부산에서 서울 집으로 급히 올라오게 되었다.

“가자, 집으로!”


남편도 전날 잠을 못 자고 아이들 데리고 송도해수욕장이며 이곳저곳을 자차로 운전기사 노릇을 해줬고, 저녁에는 부모님의 기사 노릇도 했다. 그날인 둘째 날 밤에도 잠을 못 이루던 참이었다. 새벽에 집으로 올라오면서 남편이 졸음운전과 시야가 흐려져 중앙선을 몇 번 넘어서려는 모습에, 나는 우리 가족이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가 날지 모른다는 걱정이 들어 계속 남편의 어깨며 팔을 주물러 가며 말을 시키는 등 노력을 해서 겨우 집으로 돌아온 기억이 난다.

남편이 시야가 흐려서 사물이 두 개로 보인다고 했는데, 한쪽 눈을 감으며 한 눈으로 운전하면서 가는 걸 보고 가슴이 아팠다. 내가 대신 운전대를 잡을 수 없는 상황이었고, 아이 셋은 뒷좌석에서 편안히 잠을 자고 있었다. 남편은 운전대를 잡을 상황이 아닌데도 가족을 위해 끝까지 책임지고 가야 한다는 일념으로 힘든 걸 참고 있었다. 그 모습이 가장인 남편의 삶이 아니었는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참 고단했을 것 같았다. 가장으로서 얼마나 힘들었는지도 말로 잘 안 하는 성격이고 칭찬도 그런 편인 남편이 내게 말했다.

“당신이 도와줘서 무사히 왔어.”

남편이 집에 도착할 무렵에 내게 고마움을 표해준 것이었다. 이럴 때 동지애를 느꼈다. 잘 산다기보다 잘 살기 위해 몸부림치며 살고 있다는 생각은 서로 같지 않을까 생각했다.

학창 시절에 남편과 시어머니가 서로 정리 정돈이나 청소 일로 갈등이 있었을 텐데, 아마 남편이 엄청나게 시어머니에게 얘기했을 텐데. 어머님은 잘 바뀌지 않은 것 같다. 그것이 결혼 생활 20년 동안 궁금했었다.

아들이 남편을 닮아 비염에, 아토피에, 먼지 알레르기까지….

그 당시 아들이 운동하고 몸을 챙겨서 비염이 나았다는 말까지 했었는데, 시댁에서 자는 동안 재채기에 콧물이 나와서 잠을 못 이뤘다. 그걸 본 남편이 “모두 일어나, 짐 싸서 집에 가자!”라고 한 것이었다.

이불을 안 빨아서 곰팡이 냄새가 났던 것인데 아들의 상황에 시댁에 있을 수 없었다. 나는 아들에게 이불은 발만 덮고 가슴까지는 도저히 덮을 수 없어서 그렇게 말하고 자라고 한 상태였는데, 곰팡이 냄새와 먼지가 아들에게는 치명적이었던 것 같다.

남편이 그토록 청소와 정리 정돈에 집착하는 걸 그제야 확실히 이해하게 됐다. 그전에 남편과 갈등을 빚을 때는 남편이 이해가 안 됐었다. 극한 환경을 경험해 보면 깨닫게 된다.


나는 시어머님과 같이 있으면서 또 하나 느낀 바가 있다.

신혼 초에 시댁에 내려갔을 때는 시부모님이 네모난 어항에 큰 잉어 두 마리를 키웠었다. 금붕어인 줄 알았는데 잉어더라면서 스스로 키우셨는데, 매일 같이 두 분이 물을 갈아주셨다고 들었다. 잉어 이후로는 한동안 물고기를 안 키우셨는데, 이번에 시댁에 내려갔을 때는 지인에게 받았다며 구피와 작은 물고기를 키우고 계셨다.

남편은 구피 키운 얘기를 늘어놓으며 시어머님에게 당부했다.

“산소 공급기 왜 안 써요? 이걸로 불순물도 걸러내고 얘들 산소도 공급받게 꼭 공기 방울 나오게 틀어놔야 해요!”

시어머님은 예전에 잉어 키울 때도 이런 거 없었고, 틀 필요가 없다고 하시면서 아들의 잔소리에 얼른 물고기에게 산소 공급기를 틀어줬다. 그런데 아들이 거실에서 방으로 자리를 뜨자 얼른 산소 공급기를 껐다. 그것은 누가 달아놔야 한다고 해서 넣어둔 장식이었다.

나는 그것도 청소해야 하고 본인의 생각에는 안 틀어도 되는 ‘굳이?’의 일이라서 그럴까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내게 불필요한 것이면 누가 아무리 얘기를 해줘도 바뀌지 않는 것처럼, 모든 사람이 그런 점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어떤 점이 그럴까 하고 더 생각하게 되었다. 시댁에서 있었던 일은 이런 걸 의식하고 신경 쓰는 길이 열렸다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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