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의 남자친구
어제 낌새가 있었다.
딸이 밤 10시 반이 넘어서 산책을 나가겠다는 것이다.
전에 한 번은 10시가 넘은 시간에 산책을 나간다고 해서, 나는 살짝 미행을 한 적이 있다. 혹시 남자친구를 만나는 건 아닐까 걱정돼서였다. 하지만 편의점 문 앞에서 눈이 마주치는 바람에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고, 나는 ‘믿을 수 없는 엄마’로 낙인찍히고 말았다.
그 일을 만회하려고 이번에는 그냥 허락했다.
딸은 약속한 대로 20분쯤 지나 돌아왔고, 손에는 과자가 든 비닐봉지가 들려 있었다.
‘자기가 열어놨으면서.’
막내는 여전히 못 말린다.
"몬스터(에너지 음료)"가 사라졌다고, 내가 자기 책장 문을 열었다며 우긴다.
‘자기 방 청소해 주는 사람이 누군데!’
책상을 정리해 주려다 말았다. 딸이 절대 자기 책상은 건드리지 말라고 했기 때문이다.
물론 "몬스터"만큼은 예외다.
막내도 마찬가지다.
고카페인 음료는 안 마시기로 약속했는데, 병원 갈 때나 학원비를 낸다고 내 카드를 가져가서는 편의점에서 과자와 함께 슬쩍 "몬스터"를 사 온다. 몰래 산 것도 얄미운데, 들키면 오히려 발끈한다.
과자만 산 것처럼 비닐봉지를 식탁 위에 올려두고, 마치 “봐도 좋다”는 듯 몇 시간째 그대로 둔다.
하지만 그 와중에 에너지음료는 뒤춤에 슬쩍 숨겨 자기 방 책상 서랍에 넣어둔다.
완전한 비밀은 없다.
책장 문을 열어두었으니 말이다.
딸은 “몬스터”를 몰래 사는 게 미안하니까 겉으로는 안 먹겠다고 약속하지만, 속으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요즘 마라탕을 참는 대신 “몬스터”를 자주 마신다.
그러니까, 그날 늦은 밤 산책을 나간 건 남자친구 때문이 아니라 “몬스터” 때문이었던 거다.
산책은 핑계였던 셈이다.
남자친구를 몰래 만나려고 거짓말하는 것보다야, 에너지음료 하나 사려고 그러는 게 차라리 낫다.
밤에 잠을 설쳐서 아침마다 실랑이를 벌이더라도, 결국 협상을 하면 된다.
예를 들어, 밤에는 “몬스터”를 마시지 않기, 한 달에 한 번만 마시기 같은 조건 말이다.
사춘기 딸은 엄마 말에 반항하고 싶은 청개구리고,
엄마는 그 청개구리가 결국 "개굴개굴" 울어줄 날을 기다리는지도 모른다.
“막내야, 엄마는 ‘굴개굴개’ 하다가도 언젠가 ‘굴 개굴개굴’ 할 날이 올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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