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저녁, 큰딸과 함께 밥을 먹고 있는데 딸이 물었다.
“엄마, 계란 프라이 왜 완숙으로 했어?”
잠깐 당황스러웠다. 남동생과 비교하는 걸까 싶기도 하고, 나는 주로 완숙으로 해줬던 것 같은데 딸은 반숙을 좋아하는 걸까 싶었다.
“응, 균이 있을지 몰라서 완숙으로 한 거야.”
“그렇구나. 나는 동생이 완숙을 좋아하니까 그런 줄 알았지.”
“그런 건 아니야.”
며칠 전, 아들과는 이런 이야기를 나눴다. 막내와 자주 다투게 되는 게 아들은 궁금했던 모양이다.
“엄마, 형제끼리는 잘 안 다투는데 왜 엄마랑은 다툼이 생길까요?”
그 말이 마치 “엄마에게 문제가 있어요.”라고 들리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말했다.
“너희끼리는 다툼이 적지. 하지만 엄마한테 각자 이것저것 요구하고 부딪히는 일이 생기니까 더 다툼이 생기지 않을까?”
그리고 예를 들어 보였다.
“엄마, 오늘 입고 갈 건데 왜 아직 그 옷 안 빨았어?”
“엄마, 먹기 싫다고 했잖아!”
“엄마, 교통비 빨리 넣어줘!”
내 말을 들은 아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 있겠네. 그래도 엄마가 바뀔 필요가 있어.”
“그렇지. 하지만 옷 안 빨아 놓은 건 전날 얘기만 하면 해결될 문제야. 서로 조금씩 바뀔 필요가 있지.”
“그런 경우도 있고 아닌 경우도 있어.”
“그래, 그런 것 같아. 결국은 서로 바뀌어야겠네.”
아들은 이해가 됐는지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늘 엄마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던 아들이었는데, 오늘은 조금 다르게 봐주는 것 같았다.
세 자녀 모두가 엄마 탓을 할 때면 숨이 막힐 듯 힘들었는데, 그날은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었다.
나도, 아이들도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아들뿐 아니라 아이들 모두 그렇게 나를 바라봐 줄 날이 올 거라 믿는다. 특히 막내가 그러면 좋겠다.
오늘도 막내는 학교에 체육복만 입고 나갔다.
나는 말했다.
“수능 때쯤 되면 날이 추워지니까 털 점퍼 입고 가.”
“싫어, 학교 가면 히터 틀어서 더워!”
“학교 가서는 점퍼 벗어놓으면 되잖니?”
“싫다니까!”
“가는 길에 다시 돌아올지 모르는데.”
“절대 안 그래. 나 고집 세잖아!”
“알긴 아는구나.”
막내는 내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급히 현관문을 나섰다. 어제저녁에 감기 기운이 있다며 타이레놀을 먹었던 막내라 조금 걱정이 됐다. 그래도 힘들면 양호실에서 약을 먹겠지, 하며 마음을 다독였다.
사소한 다툼은 서로의 다른 마음을 맞추어 가라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아들과 마음이 통했던 것처럼,
계란프라이가 완숙이든 반숙이든 상관없는 것처럼,
이해라는 사랑 속에서는 다른 마음들도 결국 계란프라이로 하나가 될 것이다.
막내가 학교에서 돌아와 말했다.
"엄마, 콧물 나오고 , 오늘 너무 추웠어."
"이따, 학원 갈 때는 점퍼 입고 가~"
딸은 두 말도 안 하고 점퍼를 입고 학원에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