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식 첫째 날은 참을 만했지만 마음 한쪽이 불안했다. 모르고 뭔가를 먹어버리면 어쩌나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둘째 날 오전에도 비슷했다. 그래도 계속 신경을 쓰다 보니 금식이 이어졌다. 집 안에 보이는 모든 음식의 맛이 상상으로 느껴졌고, 늘 먹던 음식도 더 맛있어 보였다. 한두 번 속이 쓰리기도 했다.
셋째 날이 되자 오히려 입맛이 떨어졌다. 음식이 그다지 먹고 싶지 않았다. 아이들 점심을 차려주고 설거지를 한 뒤 낮잠을 잤는데, 눈을 떠 보니 저녁 여덟 시였다. 아홉 시부터는 시간이 유난히 더디게 갔다. 자정이 넘으면 죽을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그 시간만 기다렸기 때문이다.
12시 6분이 지났을 때 소고기죽을 데워 먹으려는데, 아들이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들어왔다.
“밖에 눈 와요!”
창밖을 보니 정말 눈이 소복이 쌓이고 있었다. 나는 눈을 좋아한다. 함박눈보다 잔잔히 내리는 눈을 더 좋아한다.
남편은 비 오는 날 우산도 쓰지 않고 정처 없이 걷는 걸 좋아한다고 했다. 나와는 반대다. 우리는 눈과 비처럼 다른 사람들이다. 하지만 서로를 향한 믿음과 신앙만큼은 같다. 결혼이라는 구슬이 굴러가는 가정 안에서, 믿음은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시간을 버티게 하는 윤활유였다.
하지만 아이들까지 그 믿음으로 하나 되게 하는 일은 또 다른 문제다. 신앙도 그렇고 자녀 양육도 그렇다. 단거리 달리기처럼 빨리 지나가길 바라지만, 아이를 키우는 일은 결국 마라톤 같다.
큰딸은 내가 금식하는 동안 독감에 걸려 아직도 기침을 심하게 한다. 그런데도 내일 친구들과 떠나는 일본 여행은 꼭 가겠다고 한다. 어제 병원에서 수액까지 맞고 왔다.
“엄마, 열만 안 오르면 갈 수 있어.”
속으로는 참 고집이 세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아이의 선택이다. 숙소에서 누워 있더라도 가겠다는 마음을 꺾을 수는 없었다.
아들은 재수를 했지만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지 못했다. 군대를 다녀온 뒤 다시 도전하겠다고 한다.
막내는 아침에 꼭 시리얼을 먹겠다고 한다. 방학이라 점심 무렵에 일어나면서도 그걸 ‘아침’이라 부른다. 시리얼을 먹고 다시 자다가 학원 다녀와 저녁에도 또 시리얼을 먹는다. 하루에 한 끼 먹을까 말까 하는 날도 있다.
“엄만 밥에 미쳤어! 먹기 싫다는데 자꾸 먹으라 해!”
막내도, 아들도 종종 그렇게 말한다.
세끼를 먹어야 하루를 버틸 힘이 난다는 내 생각과는 다르다. 아이들은 배고플 때 먹고, 아니면 안 먹는 게 원칙이다.
내가 옳다고 믿는 방향으로 아이들을 이끌고 싶지만, 사춘기를 지나면서 아이들은 부모의 이끌림대로 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 부모 말이 맞을 때도 있는데, 선택의 순간이 오면 늘 부모의 말이 1순위가 되지 않는다. 부모와 자식이 한마음이면 좋겠지만, 그건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나 역시 친정부모님과 안 맞는 부분이 많았다. 그래도 돌이켜 보면 부모님의 잔소리는 내 안에 남아 있었다. 결국 나도 아이들에게 같은 말을 하게 된다. 지금은 모를지라도, 아이들도 언젠가 부모가 되면 그 마음을 알게 되리라 믿는다. 잔소리 속에도 사랑이 있었다는 걸.
나는 막내를 떠올리며 세 가지를 생각하며 금식했다.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마라톤이라 여기며.
아이들을 더 이해하고, 더 사랑하고, 한 사람의 인격으로 존중하고, 필요할 때 돕는 부모가 되기 위해 오늘도 삶의 마라톤을 뛴다.
금식이 끝나고 죽을 먹었는데 생각만큼 맛있지 않았다. 죽만 먹을 때는 괜찮았지만, 김치와 두부를 곁들이니 쓴맛이 올라왔다. 하루 금식과 삼일 금식은 달랐다. 젊을 때는 7일 금식도 했는데, 그때는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다.
어제는 다시 평소처럼 밥과 간식을 먹었다. 삼일 금식 뒤에는 커피를 마시지 않는 게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참지 못하고 마셨더니 배가 아팠다.
오늘은 금식이 끝난 지 이틀째 되는 날이다. 아침 수영을 갔다가 탈의실 체중계에 올라섰는데 2kg이 줄어 있었다. 바라던 일이 금식으로 이루어진 셈이다. 이대로 유지되면 좋겠다. 평소에 덜 먹어야 가능할 것이다. 그래도 금식을 해보니 조금 적게 먹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자녀를 위한 금식이었는데, 가장 큰 변화를 얻은 건 나였다. 몸무게가 줄었고, 막내가 조금 더 밥을 먹으려는 모습도 보인다. 더디더라도 기다려주며 아이의 마음이 열리길 기도한다.
아이를 키우는 일도, 아이의 인생도 마라톤이다. 아이가 힘들어 눈물 지을 때 수건이 되고, 목마를 때 물을 건네는 부모가 되기를 다짐한다.
“넌 할 수 있어.”
“네 생각을 존중해.”
“힘들 땐 쉬어가도 돼.”
“무엇보다 널 사랑해. 나보다 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