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 건드리면 퍽! 쓰러져서 꺼이꺼이…

추억의 빅데이터

by 아이얼

오늘은 현대무용계의 거장 '피나 바우쉬'를 기념하는 3D 다큐 영화 <피나>를 보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 집을 나섰다.

한팩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하니까 이렇게 연이어서 좋은 작품들과 접하는 기회를 갖게 된다. 새로운 문화 세계를 향한 발걸음은 늘 설레는 호기심을 자아낸다. 아직도 이런 느낌을 가질 수 있다는 것! 새삼 그 상큼한 축복에 에너지가 솟는다.

정말 수십 년 만에 이화여자대학 교정을 거닐었다. 새로 지은 현대식 지하건물이 주변과 멋지게 어우러져있었다. 그곳 지하 4층에 위치한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3D 관람용 안경을 쓰고 드디어 영화 감상 시작!

실제 무대에서의 공연을 보는 듯한 환상적인 씬이 펼쳐졌다. 어찌 보면 단순한 동작일 수 있는 무용수의 반복되는 몸짓엔 알 수 없는 간절함이 배어있었다. 무용수 스스로 본인의 내면과 신체 각 부위를 탐구하도록 유도하여 절실한 표현을 이끌어내는 피나의 연출력이 느껴졌다. 특별히 자연에서 얻어지는 순수한 영감이 몸짓을 통해 재창조되는 듯했다. 애써 아름다워 보이려고 'showing'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과 더불어 호흡하고 느끼고 발산하는 인간의 몸짓! 그것은 경외 로운 아름다움이었다. 100여분 동안 피나와 그녀와 수십 년간 함께 했던 댄서들의 영혼이 깃든 강렬한 몸짓에 취해있었다. 그것은 충격이었다.

"나는 움직인다. 고로 존재한다."

피나의 이 외침은 '생각하기에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존재론 사상을 한 걸음 뛰어넘는 것이다. 인간의 생각은 몸짓을 통해 구체화되는 것이다. 그것이 그저 안구의 움직임과 미세한 근육의 떨림뿐이라 할지라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은 강렬한 생명력의 발산인 것이다.

나와 동행한 동반자는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고 극장 내부가 너무 춥기만 하다며 투덜댄다. 굳이 저들의 몸짓에서 구체화된 의미를 찾을 이유가 있을까? 그냥 전해지는 대로 느끼기만 하면 될 텐데... 생각이 많은 어른은 어린아이처럼 단순하게 빠져들기가 어렵다...



춥다는 동반자로 인해 영화 관람을 마치고 교정을 거닐며 풋풋한 젊음의 향기에 취하고 싶은 바램을 접고 곧바로 점심식사를 위해 자리를 옮겼다. 서대문 영천시장 건너편에 있는 도가니탕 전문점 '대성집'을 찾았다. 작고 허름한 구식 주택 몇 채를 이어서 운영하는 음식점의 풍경은 40년여의 시간을 되돌려놓은 듯했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대부분의 주택은 이런 모습이었다.

큰 무쇠 가마솥에서 탕이 보글보글 끓고 있고, 60은 넘어 보이는 아주머니가 바닥에 앉아 대파를 종종 썰고 있다. 한 방에 자리 잡고 앉는데 가슴이 울컥하다. 지난겨울 세상을 뜬 언니와 함께 이곳에 앉아서 탕을 맛있게 먹었었다. 언니의 예쁘고 환한 얼굴, 발랄한 음성이 지금도 귓가에 쟁쟁한데... 산다는 것은 이렇게 그리움을 가슴에 차곡차곡 쌓아나가는 것인가 보다. 그것이 사람이든 풍경이든... 오늘 이 순간도 먼 훗날 그리움으로 가슴을 흔들겠지...

문득 이런 곰국을 좋아하시는 친정 부모님이 떠올라 2인분 포장을 추가 주문했다. 예정엔 없었지만 이촌동에 들렀다 갈 시간은 있으니까..

버스를 타러 나오는데 상점 밖 길가에서 따뜻해 보이는 슬림형 기모바지가 눈에 띈다. 치매로 인해 요양원에 계시는 시어머니 생각에 한벌 샀다. 어머님의 앙상한 다리를 포근하게 감싸줄 바지... 내가 해드릴 수 있는 일이 고작 이런 것 사입혀 드리고 맛있는 것 갖다 드리는 일뿐이라니.. 또 한 번 가슴이 울컥하다. 오직 먹는 것이 유일한 욕구이자 몸짓이신 어머님! 만일 피나가 어머님을 보면 어떤 몸짓을 창조해낼까 엉뚱한 상상을 한다.



친정엔 아버지만 혼자 계셨다. 아버지도 치매 초기이시다. 무능해지신 아버지 또한 음식 드시는 것이 유일한 낙이시다. 가지고 간 도가니탕 데워드리고 냉장고를 열어 남은 음식물을 살펴보았다. 오빠가 몇 달 전에 캐나다로부터 가져온 치즈 덩어리에 곰팡이가 서려있다. 가장자리를 도려내고 먹기 좋게 썰어서 봉지에 담아두었다. 냉동실에 있는 떡도 찌고 과일도 깎아놓았다. 없어서 못 드시는 것이 아니라 미처 손이 못 가서 못 드시는 것이다. 늙는다는 것은 이렇게 누군가의 손길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그 손길이 손쉽게 되어드리지 못하는 자식들.. 6남매 중 한 분은 가고 남은 다섯의 손길은 이렇게 늘 따뜻해지기 힘들다...



이렇게 하루가 갔다. 집에 와서 체력단련을 위해 헬스장으로 습관을 좇아 향한다. 건강한 육신을 유지하는 것이 오늘 내가 할 최선의 일인 양...

현대무용계의 거장 피나도, 살가왔던 언니도, 치매 걸리신 시어머니도, 친정아버지도, 조울 증세로 자식에게 호령하시는 친정엄마도 다아 그렇게 세상을 떠났고, 떠날 것이다. 건강하게 살려고 악착같이 운동하는 나도...

어쩌면 오늘이 나를 포함해 누군가의 마지막 날이 될지 모른다. 그렇다면 누굴 미워할 틈이 어디 있을까? 이렇게 사랑의 몸짓하기에도 시간이 없는데...

이제 또 다른 새로운 하루를 위해 움직여야지.. 오늘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절절한 심정으로...

(2012.10.30)




8 썼던 글이 페북추억의 떴다.

모닝커피를 마시며 신문기사를 두루 훑어보고 페북을 클릭했더니 이렇게 까마득한 과거를 소환해준다.

나에 관한 빅데이터를 소장하고 있는 sns - 고맙기도 두렵기도 하다.

아침부터 가슴이 저릿저릿 머리가 찌르르 어질어질...

예견했던대로 8 동안 세분의 부모님은 차례로 세상을 떠나셨고...

요사이의 딱히 정해진 방문 장소 없어, 찾아갈 곳을 궁리해 이곳저곳 자유롭게 다니고 있다...

오늘 누군가 ! 나를 건드리면

! 쓰러져 그대로 주저앉아

어린애처럼 꺼이꺼이~~~ 엉엉~~~ 울고야 것이다.

허참! 이렇게 먼저 내가 나를 치고 있네!

아니 벌써 징조가 나타나잖아.

이제 그만....